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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나지행 Nov 16. 2019

#9. 국제 미아가 된 떠돌이 삶

나의 순간의 선택이 나를 범죄자와 같은 죄인으로 만들고 있었다.


사람의 일정이 참 계획대로 안되는구나...


자신 있게 며칠간의 오버 스테이를 결심하고 대사관을 찾은 나.

대사관에 있던 직원의 말에 다시 살짝 겁이 난다.


"일주일 정도 걸릴 거예요. 그런데 갱신 후에는 바로 한국 들어가셔야 해요. 위험해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그다음엔... 음... 그 친구.. 파트너한테 다시 연락해야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연락을 안 받는다...

너무 많은 일들을 겪으니 판단도 잘 안 선다. 혼란스럽다.

하지만 한 가지 당시 내가 하고 있던 생각은 이러했다.


내가 무슨 일을 겪든 자료도 일도 아이디어도 너무 멋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그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분명히 그 친구보다 일을 잘하고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외딴 나라에서 계속 로컬 파트너들을 만나온 것처럼..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외국까지 갔다 실패하고 돌아온 실패자로 낙인찍힐 바엔 나는 여기서 모험을 하고 멋진 일들을 진행 반드시 하고 돌아가겠다 라는 마음이 무엇보다 컸다.

내가 고생한 시간들을 나는 결코 버릴 수가 없다.

그 당시 마음을 누구 이해 못할 것이다. 현재의 나도 그때 했던 선택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하지만 당시는 간절함과 처절함의 몸부림이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느낌이라면 나는 해보고 죽겠다 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한 달까지는 벌금이 얼마 되지 않는 다기에...


'자! 정신을 차려보자.

일을 같이하던 그 친구는 연락이 안 된다... 하지만 그동안 그 친구와 만들었던 이 아이디어들과 자료들로 말레이시아에서 일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럼 나는 그때 한국에서 일을 보면서 말레이시아를 오가면 되는 거야!

그럼 비자 문제는 음... 미국인인 오스틴 보다는 말레이계 친구들이 자기 나라니까 더 잘 알겠지?

말레이시안 말레이계 친구 아피에게 전화를 했다.


”너희 아버지 경찰과 관련되어 있다고 했지? 나 좀 도와줄 수 있니? “

아피의 아버지는 다톡(Datuk 왕이 주는 훈장, 다톡 배지가 있으면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위치라고 한다)이었다.

나의 자초지종을 조심스럽게 얘길 꺼냈고 그 친구는 문제없다며

한 달까지는 벌금도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아피에게 부탁을 해놓고 다시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얼마 후에 아피는 연락이 왔다. 나에게 한국돈 400만 원 이상을 불렀다.

한 달이면 100만 원도 안 한다고 들었는데 이상했다.

"야~얘기 듣기보다 너무 비싸. 조율 좀 해달라고 얘기 좀 해주겠어?"

그 이후로 아피는 연락이 없었다. 

얼마 뒤에 난 문자를 남겼고 한참 후에 그의 답이 왔다.


"미안해~나 요즘 너무 바빠서 너를 도와줄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래... 맞아... 말레이시아의 문화는 모두 언더테이블(뒷돈 찔러주는 것)이라고 했어. 친구가 수고비를 원했던 거구나... 그래서 거부한 거구나... 그렇다면... 난 중개인을 직접 찾아야겠다.'

그때부터 난 새로운 현지 사업 파트너와 오버 스테이를 지워줄 중개인을 동시에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다시 좌절... 범죄자가 된 기분



내가 몰랐던 영역인데 말이야...

한국에 살 때는 생각조차 못했던 세계인데 말이야... 여행으로 해외를 다닐 때는 전혀 알 수가 없었던 문제였는데 말이지... 그래서 나는 오버 스테이를 결정하면서도 내 인생 자폭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찾아보니 생각보다 오버 스테이를 지워준다는 로컬 중개인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와... 불법 체류자들이 많구나... 그런데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쫓겨 나와서가 아닐까?

나 같은 사람도 있을까? 내 인생의 오점일까?'

당시에도 약간은 순진했던 나의 마음은 마치 전과가 생긴 범죄자로 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겁이 많은 나는 중개인을 만나기도 무섭다.

지난 로컬 파트너가 내가 워크퍼밋이 없는데 사업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경찰을 부르겠다고 한 것처럼... 내가 만약 중개인과 미팅을 했는데 그를 고용하지 않으면 그 중개인이 나를 신고하지 않을까?

온갖 두려움이 뒤엉켜 긴장인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no choice~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버 스테이를 지워주겠다던 사람들은 모두 사기였다.





당시 나의 철칙이 있었다.

내가 말레이시아로 넘어가자마자 한국인에게 된통 당했기 때문 일까?

한국인들과 교류도 피했지만 한국인에게 절대로 내 상황에 대해서 하소연하지도 말하지도 들키지도 말자.

소문이 이상하게 돌 수도 있으니까... 였다.

내 삶이 절망의 연속이구나. 믿을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힘들다고 한국에 연락해 하소연할 사람도 없다.

모든 건 내 선택이고 내 선택에 의해 이런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니까...


오버 스테이를 지워주겠다고 돈을 받아간 첫 로컬 중개인은 일을 처리해주기는 커녕 잠수를 탔다.

'나는... 한국에 돌아갈 수나 있을까?'

며칠 동안 누워서 일어나지 않은 적도 있다.

'아... 이렇게 인생은 끝난 거다...'


계속 넘어지고 계속 부딪쳤고 그때마다 계속 일어났지만 이제 정신을 차릴 힘조차 없다. 혼미하다.

가족들에게 연락한지는 오래됐고, 이 상황을 말할 수도 없다.

한국의 친구들과도 연락할 수가 없다.

그냥 철저하게 혼자가 됨을 느꼈다.


범죄자들은 어떤 마인드로 살까?

만약 경제사범이라던가 살인을 저지르고 쫓겨 다니는 사람들은 경찰을 보면 피해 다닐까? 당당할까?

나는 한국인들만 보면 피해 다녔고 polise (그곳에는 경찰의 옷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옷을 입은 사람들만 보면 심장이 요동쳐 터져 나갈 듯했다.


나의 순간의 선택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범죄자와 같은 죄인으로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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