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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Apr 30. 2024

슬픔은 인생의 보석이다

- 음악으로 쓰는 에세이(16)

 ‘슬픔 많은 인생길’이라고 흔히 말한다. 한 사람의 평생에 비단 슬픈 일만 있을 리는 만무하다. 슬픔의 무게만큼 이를 상쇄할 만큼의 기쁨 또한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픈 일이 기쁜 일보다는 우리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쉽게 잊히지 않을 기억으로 남는다. 그 까닭이라면 당연히 슬픔이 마음에 상처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기쁨은 날아가다 흔적이 사라지는 비눗방울처럼 우리 마음에 잠시 머물다 잊히는 편린과 같은 것이다. 인생사가 마냥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는 법. 기쁨이 함께 했던 좋은 날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마음에 깊게 아로새겨진 슬픈 시간의 쓰라린 기억만큼 지속적이고도 강렬할 수는 없다.


 슬픔이 타인에 의해 주어지는 경우 슬픔에 대한 반응은 분노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슬픔의 근원이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기에 그 상처가 더 깊고 아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볼 때 사람의 감정에 타인이 연관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 모든 감정이 자기가 아닌 대상에 대한 반응이며 대부분 타인이라는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감정이 대상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라는 점에서 감정의 발생 요인으로 자신이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게 본다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분노의 의미도 퇴색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사람끼리 얽힌 관계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사랑과 미움이 복합적으로 형성된 것이 인간관계일 것이다. 이 상반된 두 감정이 뒤섞여 온전한 사랑을 방해한다.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가족관계에서도 애증이 교차하는 상황을 경험한다. 우리의 사랑이 왜곡된 것일 수밖에 없다.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 성서에서 말하는 사랑에서 궤도를 벗어난 모습일 것이다. 마태복음에 기록되기를, 예수는 사람이 지켜야 할 계명으로 먼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다음으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언급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혹은 하느님으로 부르고 성서에서 여호와, 야훼 등의 이름으로 지칭하는 주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신비로운(미스테리오소) 것이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 부를 인격적인 존재도 아니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는 존재가 하나님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 또한 신비라고 하겠다. 신비로운 그 사랑을 하나님과 타인(이웃)에게 적용하라는 것, 즉 올바른 사랑으로 연결된 관계의 회복이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천국의 요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신비로 다가오는 사랑을 명확하게 인식하기에는 우리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다.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이 불확실한 현실을 만들고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은 모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호한 만큼 어려운 것이 사랑이다. 그러나 모호하지만 우리가 슬픔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 우리는 사랑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분노를 동반한 슬픔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 속에서 우리는 사랑과 접속한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성서는 기록한다. “애통해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브람스는 자신의 스승 슈만의 죽음을 맞아 ‘독일 레퀴엠‘을 작곡했다. 레퀴엠은 가톨릭의 전례 중 장례에 해당하는 진혼미사를 일컫는다. 당연히 라틴어 가사로 이루어져야겠지만 브람스는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을 텍스트로 사용하고 음악의 구성도 기존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난 음악을 작곡했다. 그 첫 번째 곡이 ‘애통해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감동적인 합창이다.

 애통, 즉 슬픔 중에 위로를 받고 사랑에 속할 것이니 이는 곧 받을 복이다. 따라서 슬픔은 인생에 있어 빛나는 보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중에서 제1곡 ‘애통해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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