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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May 09. 2024

폴 오스터의 부음, 그리고 뉴욕

 지난 4월 30일 미국의 작가 폴 오스터가 향년 77세를 일기로 작고했다는 소식을 며칠을 지나 뒤늦게 들었다. 폴 오스터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지명도가 있는 작가이기에 그의 사망 소식을 제때에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의외였다. 사실 최근에 뉴스에 눈과 귀를 닫고 살았다는 사정이 폴 오스터의 사망 사실을 늦게 안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지극히 비이성적인 행태를 지속하고 있기에 정치권에 대한 혐오가 극심한 까닭이다. 총선도 외면했던 터였다. 그러다 음악 검색을 위해 유튜브에 들렀다 그 소식을 접했으니 그만큼 마음에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폴 오스터에게 필생의 역작이라는 소설 ‘4 3 2 1‘이 국내에서 출간된 것이 오래지 않아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폴 오스터의 소설 중 가장 인상적으로 생각되는 소설을 하나 꼽으라면 ‘뉴욕 3부작’을 선택하겠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의 세 소설로 구성된 ‘뉴욕 3부작’이 폴 오스터에게 작가로서의 성공을 가져다준 초기의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처음 접한 폴 오스터의 작품이기에 폴 오스터라는 작가가 마음에 각인되는데 이 소설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이후에 여러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었어도 ‘뉴욕 3부작’에서 받은 인상을 능가하는 소설은 없었다. 물론 순전히 개인적인 기호에 근거한 판단이다. 그보다는 이 소설(정확히는 이 소설들)에는 폴 오스터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요소, 말하자면 해체된 서사와 소설 속 인물의 분열된 정체성과 같은 포스트모던한 요소가 오히려 완성도에 아쉬움이 있더라도 신선한 이들 초기작에서 잘 구현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폴 오스터 소설의 특징은 대도시를 배경으로 했을 때, 대도시민을 캐릭터로 설정했을 때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도시적이다. 실제로 그의 소설 대부분이 뉴욕이라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뉴욕 인근의 뉴저지에서 태어나 뉴욕에 소재한 콜롬비아 대학을 나오고,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창작 활동을 지속해 온 작가의 이력으로 볼 때 당연한 사실이다.

 이 글의 목적이 폴 오스터의 문학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재다능했던(폴 오스터는 소설 이외에도 시와 영화 대본을 쓸 만큼 창작의 스펙트럼이 넓었다) 한 작가의 부음과 함께 작품의 배경이 된 뉴욕이라는 도시에 마음이 머물렀기 때문이다. 작가로서의 경력을 지속한 내내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아 폴 오스터는 뉴욕을 사랑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을 거쳐 사랑한 도시라면 그 사랑은 애증이 교차하는 것일 터, 그 지점이 폴 오스터가 작품 활동을 하는 동력의 근원이 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폴 오스터는 ‘뉴욕 3부작’ 중 ‘유리의 도시’에서 뉴욕을 이렇게 말한다. “뉴욕은 무진장한 공간, 끝없이 걸을 수 있는 미궁이었다”라고.


 대도시가 가진 매력이 이런 것이리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생산하는 다양한 삶의 서사, 이것이 뉴욕을 배경으로 한 우디 앨런의 영화를 탄생시켰고, 폴 오스터의 소설로 그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부음에 즈음하여 해보는 생각이다. 나도 뉴욕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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