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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May 30. 2024

배경이 될 때 슬픔도 아름답다

- 음악으로 쓰는 에세이(18)

  예전에 ‘아마데우스’라는 영화가 있었다. 고전주의 시대의 대 작곡가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였다. 영화에서는 모차르트를 지나치게 철없는 사람,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유아기의 모습조차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처럼 묘사하고 있어 영화를 보기에 심히 불편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천재를 평범한 사람들과는 상당한 괴리가 느껴지는 괴물쯤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천부의 재능에 반비례하여 인격적 결함을 가진 존재로 묘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한지,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모차르트라는 천재를 많이 별스러운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는지도. 그러나 모차르트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는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물론 모차르트는 서로 융합될 수 없는 성격적 모순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도 복잡한 내면을 가진 사람은 많다. 나도 그런 범주에 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 상이한 요소들을 적절하게 결합, 그런대로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간다. 그 대부분에 속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우리는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모차르트도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의 음악이 들려주는 평온한 아름다움과 균형감(고전주의 음악으로 당연한 사실이지만)을 생각할 때 음악과 인격의 상이를 상상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의 활달한 성격과 창작 방법에 있어 즉흥적인 태도에서 기인한 에너지가 그를 좀 별스러운 괴짜로 포장하기에 용이하지 않았을까 싶다.


 모차르트의 창작 방법은 즉흥적(적절한 용어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이었다. 베토벤의 경우 오랫동안 심사숙고하고 수정을 거친 후에 작곡을 완성했던 반면, 모차르트는 마음에 떠오르는 발상을 그대로 악보로 옮긴 후 다시 수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모차르트의 능력이 모차르트를 ‘타고난 천재’라는 이미지로 인식시키고, 이에 더하여 괴짜라는 이미지를 덧입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영향 아래 장기간 순회 연주 여행을 다녔던 모차르트이기에 독립성이 결여된, 유아기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 존재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그의 순수하고도 애매함이 없는 음악이 이런 이미지의 형성에 일조를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천진난만한 면모가 모차르트에게 있었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면모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모차르트라는 한 인격을 왜곡한 측면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에 의해 어린 나이에 무리한 연주 여행을 다녀야 했던(음악적으로는 유럽 각 지역의 음악 스타일을 익히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던), 그러면서도 한 번도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던 모차르트이지만 콘스탄쩨와의 결혼을 음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아버지와 절연할 정도로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모차르트, 그리고 궁핍한 경제 여건 속에서 오스트리아의 궁정 악장이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던(음악가의 신분이 높지 않았던 당시에 궁정에 예속된 악장이 된다는 것은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모차르트에게서 그에게 덧입혀진 이미지, 즉 정신적인 미성숙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모차르트의 오페라에는 모차르트의 쾌활하고도 긍정적인 면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오페라 부파에는 인간으로서 겪는 삶의 국면들이 위트 넘치는 감각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차르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의 오페라를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차르트의 외향적인 성격을 생각할 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겪었던 경제적 궁핍 속에서 그의 음악과 같이 천진난만하기만 했을까, 과연 그의 영혼은 그의 음악처럼 순진무구한 것이었을까. 모차르트의 삶과 음악에서 발견하는 괴리가 순수한 영혼을 가진 천재라는 모차르트의 환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모차르트의 이상은 그의 음악과 같이 순수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이상을 표현하고 있으나 현실이 이상을 따라가지 못할 때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서 느끼는 괴리는 고독함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고독은 슬픔을 동반하게 된다. 모차르트의 기악곡에서 모차르트라는 사람이 지닌 내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 군데군데에서 슬픔의 그림자를 언뜻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전혀 과하지도 않게 아름다운 선율에 섞여 스치는 슬픔의 그림자에 모차르트 음악의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할 것이다. 낭만주의 음악에서와 같이 슬픈 감정을 아낌없이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음악의 배경이 될 때 더욱 아름답게 들리는 것이다. 어떤 평자는 이를 두고 “인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모차르트를 말하기도 했지만,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 당연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고전주의 시대에 로코코의 ‘우아한 양식(엘리건트 스타일)‘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모차르트이기에 감정의 과도한 표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아한 모차르트의 음악에 내재된 슬픔은 모차르트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의 삶이 그랬기 때문에.

 모차르트 음악의 열렬한 애호가였던 신학자 칼 바르트가 했던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작곡된 바흐의 음악을 듣겠지만, 천사들은 하나님 몰래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차르트의 음악에 배경으로 얼핏 등장하는 슬픔조차 아름답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 중 2악장 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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