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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Sep 10. 2024

빛바랜 가족사진이 말하는 것

 내가 유아기를 보낸 한옥에서 찍은 한 장의 흑백 사진을 가지고 있다.

내 유아기의 모습을 확인할 유일한 사진으로 육십 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어도 약간 빛이 바랬다는 것 이외에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그 시절을 말하고 있다.

사진에서 오 남매의 막둥이인 나는 아버지에게 안겨 손가락을 빨고 있다.

화분이 놓인 조형석과 그 사이사이에 심어놓은 키 낮은 나무들 앞으로는 사진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아담하게 조성된 연못이 있었다.

훗날 듣기로는 아버지께서 조형석으로 쓸 바위를 남해 금산에서 직접 날라 연못을 조성하셨단다.

새로 을 지으면서 그 집에 대한 아버지께서 쏟은 사랑과 정성이 대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후일담이다.

사진의 오른쪽으로 뒷배경이 되는 집은 아마도 남에게 세를 놓은 아래채일 것이다.

세든 집 아들이 놈팡이라서 동네에서 못된 짓을 도맡아 했다는데 어린 큰형에게 해수욕장에서 바닷물에 담가 놓은 수박을 훔치라고 시키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세든 가족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사실은 우리 가족이라도 인상적인 몇몇 기억 만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만큼 내가 어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몇몇 기억 만으로도 한옥이 자리한 유년의 뜨락에서 보낸 유년기가 봄빛처럼 부드럽고 찬란하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빛바랜 가족사진을 보고 또 본다.

그것이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와 같이 많이 허망한 일일지라도 내 일생 중 가장 미명으로 남겨진 시절을 돌이켜 지나온 생을 복기하고픈 열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서는 가족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사진을 찍을 일이 많지 않았던 시절, 우선 사진기라는 문명의 이기가 가정에 보급되지 않았던 시대에 사진사를 집으로 불러 가족사진을 찍을 만큼 특별한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 중 한 분의 생신이었을지도 모르고, 말끔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큰형이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일 수도 있다.

어쨌든  시절에 사진사를 불러 가족사진을 찍었을 만큼 다른 날과는 달리 특별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 부모님 모두 양복 정장과 한복을 차려입으신 모습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까.

기념사진(가족사진이라면 대부분 어떤 기념일에 남기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에 부합할 것이다) 특유의 억제된 표정에도 행복한 분위기는 감지가 된다.

 이 사진을 바라보는 한편으로는 아픈 마음이 있다.

흘러가는 세월을 막지 못하듯 더불어 곁을 떠나는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인연이 가족이라는 혈연과 끈끈한 정서적 유대로 맺어진 것이라면 아픔은 오래 치유가 되지 않는 상처가 된다.

 이제 사진에서 세 개의 빈자리가 생겼다.

먼저 아버지께서 너무 일찍 자리를 떠나셨다.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이후로 가장의 부재가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나타나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팔순을 넘기시고 오래 우리의 곁을 지키셨다.

그러나 칠 년을 중증의 뇌졸중으로 요양병원에서 지내셨으니 결코 평안한 삶을 사셨다고 할 수는 없다.

그나마 위안을 받기로는, 어머니에게는 모진 시간이었을 칠 년동안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곁에서 함께 했다는 보람과 행복감을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셨다는 사실이다.

 작은 형의 급작스러운 빈자리는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겼다.

형이 사십 줄의 초입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이 바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길을 향한 발걸음이 되리라고 누가 생각을 했을까.

이처럼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그래서 인생을 일컬어 불가해하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예상하지 못한 슬픔이 인생의 여정에 장애물처럼 불쑥 나타나더라도 멈출 수 없는 길이기에 이를 극복하고 나아갈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빛바랜 가족사진에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행복과 불행이 얼룩져 있다.

그리고 이 한 장의 사진은 그리움과 같이 아련한 소리로  속삭이듯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있다.

행불행이 함께 하는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그래서 오히려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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