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싹지기 Feb 05. 2024

내게 찾아온 함께 걷는 즐거움

머플리와 나는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이병우)


나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지독히 싫어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나는 지금도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가끔은 난 왜 운동이 그리 싫을까 하는 의문을 스스로도 가져보지만 별로 뾰족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원래 운동을 못해서 싫어했는가, 아니면 운동이 싫어서 잘 못하게 된 건가… 어느 것이 맞는 답인지는 잘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방 안에서 보내던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내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막 글을 깨치던 즈음부터 들락거리기 시작한 동네 만화방에서의 시간 죽이기였다. 어쩌다 바깥에서 놀더라도 운동을 하며 놀았던 기억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체육시간이 공포스럽기까지 했고 대학입시를 위해 치렀던 체력장 준비 기간은 거의 악몽 수준이었다.


그런 내가 언제부터인가 걷기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청소년기에 대구의 앞산 자락에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 아마 중학교 2학년쯤부터 고등학교 2학년의 어느 날까지 대략 3년 정도를 살았던 것 같다. 그 시절엔 친구와 함께 가까운 앞산을 자주 다니기도 했지만 그때도 등산이라는 느낌으로 산에 올랐다기보다는 산길 트레킹하는 기분으로 다녔던 것 같다. 게다가,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았던 학생시절에 차비를 아끼느라 자주 학교와 집 사이를 자주 걸어 다니기도 했다. 친구들과 좀 멀리 원정을 간다고 할라치면 다운타운인 동성로까지나, 집에서는 꽤 먼 거리였던 산격동의 학생과학관까지도 걸어 다녔던 기억이 선한 걸 보면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게도 ‘걷기’ 만큼은 꽤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막연히 ‘걷기’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담아두기 시작했다. 그 생각이 실행이 되기 시작한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아이들과 함께 걷기 위해 백리길희망원정대를 시작했다


2007년, 회사의 봉사대가 만들어지면서 창단하고 운영하던 일을 시작했던 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나 기획했다. 그리고 그 해 8월에 백리길희망원정대라는 이름을 달고서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 스물일곱 명을 데리고 이틀 동안 약 40Km를 걸었다. 햇살이 뜨거운 여름날의 1박 2일 동안을 뙤약볕 아래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참 힘들긴 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백리길을 모두 걷고 난 뒤의 느낌은 개운한 기분이었다. 그 개운함의 밑에는 뿌듯함도 깔려 들었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오랜만의 긴 걸음이어서 몸이 많이 힘들었음에도 다른 운동을 할 때 느끼던 그 고역스러움, 거부감 이런 감정들이 걷는 동안의 고됨 속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삶이라는 것도 같은 것이겠지만 무언가를 할 때에 고통이 느껴지는 양과 만족감 내지는 보람이 느껴지는 양의 크기가 어느 것이 더 많은가에 따라서 그것이 나의 것인지 혹은 아닌지가 결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걷기’는 내 마음을 뿌듯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걷기에 대한 생각만 가졌을 뿐 한동안은 다른 기회로 연결되질 않았다.


그다음 해, 회사에서의 내 보직이 바뀌고 하던 일이 바뀌게 되면서 내가 시작했던 백리길희망원정대는 지속되지 못했다. 내가 기획해서 처음 만들었던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후임자가 이어가지를 못했다. 공기업의 직원들은 이런 프로그램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서 이어서 진행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내가 만들었던 '특별한' 프로그램들은 단 하나도 남겨지질 않았다. 그 이후로 내게 걸을 수 있는 기회라고는 오로지 서울생활 1년 동안 숙소인 오피스텔에서 회사까지 출퇴근 시간에 매일 5Km 정도를 왕복해서 걷는 정도였다. 


도심의 빌딩 사이로, 그 무수한 술집들이 있는 유흥가 사이로 이어지는 딱딱한 콘크리트 보도 위를 걷는 일상적인 출퇴근길이었지만 그 구간 중에 내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곳이 한 군데 있어 그나마 즐거운 걷기가 되었다. 그 유쾌했던 구간은 선릉의 담장 옆으로 난 길을 걷는 짧은 구간이었다. 아침 7시 무렵, 선릉의 담장 옆을 지날 때면 콘크리트 바닥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상쾌한 흙내음과 풀내음이 코를 자극했다. 그 내음들은 딱딱한 아침 출근길에 잊을 수 없는 즐거움이 되었다. 어쩌다 비라도 온 다음 날이면 더욱 짙어지는 풀내음이 머리까지 상쾌하게 만들어 주곤 했다.



걷기의 진정한 행복감을 맛보게 해 준 지리산 둘레길


일 년간의 서울생활을 마치고 다시 경주로 내려온 후의 또다시 일 년간은 다시 바뀐 일에 적응하느라 몸도 마음도 정신이 없는 시기가 이어졌다. 근무지를 바꾸면서 또다시 내 일이 바뀐 지 두 번째 해가 되어서야 겨우 여유를 찾으면서 걷기에 대한 본격적인 계획을 이번엔 가족들과 세웠다. 언제나 나의 생각을 함께 해주는 이들은 가족이었으니까...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제주 올레'를 걸어보는 것이었지만 해외인 제주도의 올레를 모두 걷는 것은 당장은 실행이 어려운 계획이어서 우선은 상대적으로 가까운 '지리산 둘레길'을 먼저 선택했다.


그 첫 번째 시도로 그 해 여름에 우리 가족 모두가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는 계획을 세웠고 여름휴가를 포함해서 주말을 이용한 세 번의 1박 2일 여행을 통해서 그때까지 개설된 약 65Km의 둘레길 5코스를 모두 걸었다. 백리길희망원정대에서도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 참가했던 기억을 생각해서 초등 4학년이었던 둘째까지 함께 한 즐거운 걷기였다. 


중학생이었던 큰아들 규범이는 어려서부터 시골에서만 살아서인지 가장 생생한 체력으로 완주했다. 둘째 규민이는 중간중간 힘들어하기 했지만 밖에서 뛰노는 시간이 가장 많았던 아이여서 역시 큰 탈없이 완주했다. 오히려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몸이 삭아가는 나 자신과 아내였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가족들과 여행도 함께 안 다니려는 나이에 접어든다는데 우리 아이들과 함께 걷다 보니 힘든 걷기를 불평 없이 함께 해준 아이들에게서 대견스러움을 느끼게 된 것은 덤이었다. 


그 이후에도 지리산 둘레길은 추가로 개설되었고, 그 길을 틈틈이 걸었지만 결국 전체를 다 완주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리산 둘레길은 참 좋은 길이어서 언젠가는 다시 그 길 걷기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극기훈련 같았던 신라의 달밤 33km


두 번째 시도는 본의 아니게 '신라의 달밤 165리 걷기'에 참가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원래 계획한 두 번째 시도는 '제주 올레길 걷기'였고, 신라의 달밤 걷기는 처음부터 계획했던 순서가 아니었다. 사실 예전부터 이 행사를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는 참가하고 싶다는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었다. 경주 일원을 둘러오는 66Km의 구간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오후까지 밤을 새워 이어지는 걷기는 마치 끝을 향해서만 가는 군대에서의 행군이나 혹은 극기훈련의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6시간 코스로 잡혀있는 하프코스인 33Km 걷기에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 도전에는 두 아이가 함께 했고, 아내는 빠졌다. 아내의 무릎이 아파서 아무래도 한꺼번에 많은 거리를 걸으면 무릎에 무리가 올 것 같다는 염려에서였다.


그날 우리는 저녁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33Km를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8시간 걸려서 완주했다. 걷는 도중에 비가 오고 신발이 젖기 시작하면서 내 발에는 다소 무리가 가긴 했지만 역시 이번에도 규범이는 생생한 체력을 자랑했고 늘 앞장서서 갔다. 규민이는 중간중간 힘들어는 했지만 완주를 하고 나서는 다시 생생한 상태로 돌아갔다. 나는 완주를 하고 나서 발바닥에 거대한 물집 2개가 남겨졌다. 완주를 한 직후에는 거의 뻣뻣한 통나무처럼 되어버린 허벅지 때문에 회사 일에 절어서 낡아빠진 몸 상태를 실감해야 했다.


33Km를 다 걷고 나서 내게 든 생각은 우리 아이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었다. 완주증을 배부하던 행사 스탶도 규민이에게 '최연소 완주자'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하지만, 약 15Km 안팎의 거리를 6시간 동안 걸으면서 여유롭게 세상과 주변 풍광을 체험할 수 있는 '지리산 둘레길 걷기'에 비교하자면, 날이 저물어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 33Km를 8시간 만에 걷는다는 것은 오로지 끝을 향해서만 나아가는 걷기였다. 다음에도 다시 이 행사에 가게 된다면 또 한 번의 극기체험을 하는 정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그 이후로는 다시 참가를 하지 않았다. 나의 걷기는 극기체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걷기와 세상을 보는 것, 두 가지가 모두 충족이 되는 것이어야 했다. 



제주 올레길, 시작은 했으나 아직까지 완주는 못하다.


그 해 겨울방학을 이용해 약 3박 4일 동안 제주도 올레길 베스트코스를 걷는다는 계획은 두 번째에서 세 번째로 순서가 밀렸다. 제주도 올레길에 대한 자료와 제주도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이사장의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리산에서보다는 좀 더 여유로운 걷기를 해볼 기회가 제주 올레에서는 주어질 것 같다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제주 올레길 베스트 코스'를 끝내고 규범이가 중학교를 졸업하는 이듬해 겨울에는 유럽 배낭여행을 통해서 외국의 시골길을 걸어보는 기회를 가지자는 다음 목표도 세워 두었다. 목표를 가지니까 아이들도 좋아했었다.


제주 올레길 걷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완주를 목표로 가족 4명의 올레 패스포트도 모두 샀다. 아직 아무도 그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모두 채우지 못했다. 2년 정도는 몇 차례를 가족 모두가 함께 다니다 회사에서의 내 직급이 높아지면서 회사일에 더 매이게 되었다. 규범이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학교생활에 매이게 되었다. 주말만큼은 비교적 자유로웠던 우리 가족들은 다른 일정에 얽매이는 상태가 되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은 가족여행도 자주 가지 못했다. 규범이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는 가족여행을 작정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유럽 배낭여행은 함께 하지 못한 상태로 적절한 시기를 넘겨버렸다. 이젠 각자의 패턴대로 여행을 가는 걸로 자연스럽게 넘어간 상태가 되었다. 


 

또 다른 계획, 백리길희망원정대의 부활과 여전히 진행 중인 계획 하나!


경주로 돌아오고 2년을 보내고서야 새로 맡았던 보직에 적응을 하고 한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은 여전히 바빴지만 그 틈새로 다른 일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긴 것이었다. 서울에서 돌아오면서 곧바로 백리길희망원정대를 계속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작정했다. 그 이듬해부터 백리길희망원정대를 부활해서 경주의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1박 2일의 걷기를 시작했다. 이미 기본적인 계획은 틈틈이 구상을 해놓았기에 2011년에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이젠 회사일로서가 아니고 운영에 함께 참여한 이들이 '우리'가 되어서, '우리'끼리 만드는 시도였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백리길희망원정대는 작년까지 13년 동안을 꾸준히 이어 왔다.


그리고, 아직은 머릿속에서만 진행 중인 계획이 하나 있다. 

남산의 북쪽 자락 끝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의 마을에 있는 농가주택을 마련해 살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17년이 지났다. 처음으로 내 집을, 그것도 주택으로, 그것도 시골마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 주변의 논길을 산책할 때면 세상이 활짝 열리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자연은 나에게 활짝 열린 느낌을 받았다. 걷는다는 것은 나를 더 열린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마을에서 남산을 올려다보는 것이 일상이 된 어느 날, 문득 저 남산의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직은 막연한 느낌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이지만, 언젠가는 남산 둘레를 완주하는 둘레길 코스를 만들어 보려 한다. 말하자면 남산 둘레를 걸어서 한 바퀴 돌 수 있는 경로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 음악을 들으면 바닷가를 걷고 싶어 진다. 


내가 구상하는 모든 걷기에는 많은 즐거움이 함께 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길 속에 펼쳐지는 자연을 즐기는 즐거움과 마을들을 지나면서 차로 대충 훑고 지나가는 여행에서는 맛볼 수 없는 즐거움, 말하자면 천천히 세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그것들을 마주하는 즐거움이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걷는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들떠온다.

하던 일이 잘 안 풀리고 세상이 내 맘대로 안된다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배낭에 몇 가지만 챙겨서 어디론가 걸어가고 싶어 진다. 그런데, 평소에는 음악을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들여 들으면서도 길을 걸을 때는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길을 걸으면서의 무념무상에는 음악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간혹 어떤 생각에 몰두해서  길을 걸을 때도 있다. 그 순간에도 음악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길을 걸으면서 갑자기 떠오른 멜로디가 하나 있었다. 그게 바로 이병우가 연주하던 일렉기타 멜로디였다. '머플리와 나는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라는 곡의 진한 일렉기타 연주...


기타리스트 이병우


길을 걷던 중에 그 음악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걸었던 이후로는 도보여행 중에 자주 그 음악의 연주를 머릿속에 기억해내곤 한다. 그러다 보니 이 음악을 들으면 자꾸 걸으러 가고 싶어지기도 해서 요즘은 아껴서 듣는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제목에서 오는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제목이 재미있다. 

머플리는 누구일까? 

아마도 털이 북실한 커다란 애견이 아닐까...  

그런 상상을 머릿속에 올려본다. 


기타리스트 이병우는 대중음악을 하는 기타리스트로서는 참으로 다양하고 폭이 넓으면서도 깊은 음악을 들려준다. 그야말로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고, 걸출한 느낌을 주는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날'에서 조동익과 함께 어우러진 그의 감성도 좋고, 차분하게 클래시컬한 음악을 들려주는 어쿠스틱 기타곡들도 좋다. 


그에게서 정통 클래식 기타리스트의 명맥을 이어가던 존 윌리암스가 어느 순간 기타 그룹 'SKY'를 결성하고서 우리에게 들려주던 클래시컬한 일렉기타 연주에서 받았던 신선하고 의외스러운 일렉기타 연주의 느낌이 재현된다. 세계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인 존 윌리암스에게서 받았던 가벼운 충격이 이병우에게 와서는 자연스러워진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 곡은 오랫동안 나에게 일렉기타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감상곡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근데, '머플리'는 과연 누구인가?




[음악 듣기] 이병우 : 머플리와 나는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