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남구 / 오륙도해맞이공원~부산역 / 18.8km / 7시간 / 보통
시점 : 오륙도해맞이공원 (해파랑길 관광안내소 옆)
종점 : 부산역 (KTX 1번 출구)
두루누비 사이트에서 가져온 코스의 기본 정보입니다. 저의 남파랑길 걷기는 구간별로 경로 중심으로 정리를 하면서 주요 포인트에 대한 간단한 느낌을 적습니다. 지나온 경로를 기억하기 위한 용도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도시는 번잡하다.
특히나 부산은 그런 느낌을 더 많이 안겨주는 도시이다.
부산은 우리나라의 남쪽 관문이다 보니 항구를 통해서 물자의 왕래도 많지만, 사람들의 왕래도 많은 곳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 많은 곳이 점점 싫어지는 마음이 더 커지고 있는 것도 한몫을 하지만, 부산은 길을 헤매게 하기에 딱 좋은 도시여서 한창 이 도시에 갈 일이 많았던 시절에도 나를 당혹게 했던 기억이 많았던 도시였다. 나는 분지였던 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역시 분지인 경주에서 계속 살았다. 경주에서는 그나마도 살았던 세월의 절반을 보낸 곳은 외진 어촌마을에서였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한 번씩 가게 되는 부산은 몸도 마음도 번잡하게 만드는 도시였다.
해파랑길로 부산을 통과한 구간은 그나마 여유로웠던 것 같다. 여름에는 그리 인파가 많이 몰려드는 해운대를 통과하던 시점이 봄날이었으니 적어도 해파랑길의 부산에서는 사람 때문에 번잡했던 기억도 없다. 하늘을 뚫을 듯 솟아오르는 고층 아파트들이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부산 도심의 경계를 빠져나가 기장으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번잡한 느낌은 거의 느끼질 못했었다. 한데, 부산의 핵심을 통과하는 남파랑길은 달랐다. 1 코스는 부산의 가장 번잡한 곳을 통과해 가는 느낌이다. 부두의 담벼락을 따라 이어지는 대로변 구간에서는 컨테이너 트럭들이 질주를 하고, 도심의 여기저기에 솟아난 작은 산들이 많아서 계단들이 어찌나 많던지, 도심 구간에서도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는 길들이 이어졌다. 그런 것들이 마음을 번잡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파랑길을 시작하면서 부산을 통과하는 구간들은 나름 매력이 있다. 부산이 큰 도시이면서도 산등성이에 자리한 마을들이 많다. 서민들의 삶들이 그대로 보이는 곳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근대사의 수많은 흔적들이 잘 챙겨져 있는 모습들은 쏠쏠하게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래서 걸음의 속도를 빨리 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길을 걷는 중에 들르고 싶은 곳이 불쑥불쑥 나타날 정도로 지천에 널려 있지만 그 많은 것들을 다 보고 지나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이런 구간은 걸으면서 보는 것이 더 효과가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차로 이동하면서 다니는 여행은 마음을 더 조급하고 번잡하게 만들 것 같다. 그런 점이 좋은 구간이 1구간이다.
결혼 30주년을 맞이하는 날이 이번 일정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에 맞춰 남프랑스를 가고 싶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당분간은 멀리 여행 가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마침 남파랑길 걷기를 올초부터 시작하려고 날을 잡고 있던 차에 아내의 제의로 남파랑길 걷기를 함께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5년 전에 해파랑길 걷기를 시작하던 첫 날도 아내는 부산에 수업을 들으러 가던 차에 동행했고 첫 구간의 일부를 함께 걸었었다. 남파랑길도 시작이나마 함께 하게 되니 30주년 여행을 제때에 못 가게 되는 아쉬움이 덜어진다.
조금은 느긋하게 집에서 출발했다. 집 떠나는 여행은 짐을 챙기는 순간에 항상 무언가를 챙기게 하고, 빠진 것이 없나를 생각하며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목록을 만들어서 치밀하게 챙기지 않고 대충 챙겼더니, 역시나… 출발하고 보니 사진 자료를 백업하기 위해서 가지고 갈 노트북을 빠뜨렸다. 그것도 현관 앞의 의자 위에 두고서…
혼자서 가는 여행길은 아침도 대충 챙겨 먹고 새벽에도 출발을 할 때가 많다.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가니 집에 갈무리할 것들도 있고 해서 일찍 출발하는 것은 마음만 더 급하게 만든다. 그래서 아침식사를 평소보다 조금 일찍 챙겨 먹고 8시 전에는 출발하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사무실에 들러 빠진 것 몇 가지를 챙기고 나니 8:50이 되어서야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어제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미리 챙긴 노트북을 의자 위에 두고 왔는데, 그 노트북 때문에 사무실에 들렀다. 다른 것들을 추가로 챙기느라 결국 그것만 또 빠뜨리고 왔다.
부산에 도착해서는 주차장을 찾느라 헤매다가 결국 자갈치공영주차장에 주차했다. 숙소를 1구간의 종점 바로 앞에 있는 '토요코인'으로 하려다 주차 여건이 애매해서 게스트하우스로 바꾸었다. 여기도 주차는 알아서 해결해야 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연계한 유료주차장으로 가려고 유턴을 하려다가 눈앞에 자갈치공영주차장이 보여서 그곳에 일단 주차하기로 했다. 부산의 도로에서는 운전하는 거리를 최대한 줄이고 싶은 생각이 항상 든다. 주차장 입구를 못 찾아서 다시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이번엔 눈을 크게 뜨고 입구를 찾았다. 입구가 보이는데... 그런데 저리로 가려면 도대체 어떻게 가야 되나 싶다. 그냥 좌회전해서 주차장 앞에서 약간 역주행하는 느낌으로 입구로 진입했다. 공영주차장은 전시장통에 자리한 주차장이어서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주차를 하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차분히 짐을 챙겨서 시내버스를 탔다.
오늘 코스의 출발지인 오륙도까지는 환승 없이 한방에 가는 버스가 있다. 오륙도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렸다. 해파랑길을 처음 걸으러 왔던 것이 5년 전이고 그때도 시내버스로 이곳에 도착했었다. 그 후에 청소년 멘티들과 해파랑길 1~2구간을 걷기 위해 이곳에 다시 왔을 때는 내 차로 왔었고, 선착장의 공용주차장 신세를 졌다. 그때 해운대에서 회차를 하러 택시를 타고 왔는데 택시로도 시간이 30분 이상 걸렸던 기억에 이번에는 아예 숙소 근처에 주차하고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회차를 할 필요가 없으면 아무래도 마음이 편해진다.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인근의 산들이 윤곽만 보일 정도로 대기가 불투명하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먼바다가 흐리게 보인다. 파란 쪽빛의 바다와 하늘이 보여야 기분도 상쾌할 텐데 그게 좀 아쉬운 날이다. 오륙도는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되는 부산의 상징이라고 하는데 아직 확인을 못했다. 각 구간의 시점에 있는 구간 안내판은 어디에 있는지... 일단 동해와 남해의 분기점을 알리는 표지판을 시점으로 보고 출발한다. 두루누비 사이트에는 해파랑길 안내소 옆에 있는 걸로 되어 있는데, 그냥 통과했다. 와, 여기까지 오느라 오전시간을 다 보내고 출발을 하면서 시간을 보니 12시 10분이다.
* 관계자님들, 안내판과 지도상의 출발점을 일치시켜 주세요. 도보여행자들은 안내판을 출발과 도착의 기준으로 삼는답니다. 이런 미세한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 주시길!!!
시작부터 완만하게 오르는 구간이 이어진다. 1km 정도 올라가다 보면 왼쪽 아래로 신선대 부두가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가면 오륙도중학교(1.2km 지점)가 있다. 이런 풍광이 좋은 곳에 있는 학교, 학교 건물도 깔끔해서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요즘의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생각은 어떨는지... 외곽지여서 안 좋아할까?
대략 1.4km 지점에서 정점을 찍고 살짝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면 역시 왼쪽에 백운포로 내려가는 위치에 안내판(1.7km)이 보인다. 여기를 통과하면 잠시 평지를 직진한다.
그러다가 2.0km 지점에서 다시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되지만 2.3km 지점에서 정점을 찍고 다시 내려간다. 내리막길의 중간에 신선대로 가는 갈림길(2.5km)이 있는데 그 옆에 보이는 것이 무제등소공원이다. 무제등소공원은 신선대를 중심으로 주변에 만들어진 소공원인데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 이용되는 아기자기한 소공원이다. 무제등이란 이름이 낯설어 찾아보니 신선대에 '무제등'이라는 큰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공원은 아주 작아서 한 바퀴 산책하는 데에 10여 분이면 충분하고 한영첫만남기념비와 아덴만여명작전전적비도 있다.
신선대 갈림김을 통과한 후 2.7km 지점부터는 또다시 평지길이 나오는데 3.4km 지점부터는 내리막, 4km 지점에서 산길 도로는 끝이 나고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잠시 나오고 동명대학교(4.4km)가 우측에 보인다.
4.5km 지점에서 큰 사거리를 만나고 동명공고 입구가 보이면 걷는 길이 차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진다.
잠시만 더 가면 UN기념공원이 나오는데 직전에 식당들이 보여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무얼 먹을까 잠시 둘러보다가 갈비탕으로 결정하고 눈앞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식사 (솥밥갈비탕 / 고메밀면 / 13:30~14:20)
점심식사를 하면서 휴식을 하고 나서니 UN공원이 보인다. 길은 이 공원 안을 둘러보고 UN묘지를 통과해서 나오는 경로로 이어진다.
UN공원 안에는 동네의 어르신들이 산책을 하는 모습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공원에 심긴 나무들과 일찍 꽃을 피운 몇 가지 화목들을 보면서 천천히 공원을 둘러보았다. 나무들의 이름이 걸린 팻말들이 잘 걸려 있어서 나무 구경을 하기에는 좋게 되어 있다.
길은 다시 UN공원 안에 조각들이 설치된 조각공원으로 이어졌다가 UN묘지로 연결이 된다. 잘 정돈된 묘지 안에는 이국 땅에서 싸우다가 희생이 된 젊은 영혼들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우리에게는 잊히지 않아야 될 엄숙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 구역의 마지막에서는 위병들이 있는 UN묘지 정문으로 나가게 된다. UN공원은 평화공원으로 진입해서 대연수목전시원을 횡단하면서 나무들을 찬찬히 둘러보노라면 조각공원으로 이어진다. 조각공원의 중간에서 UN묘지의 뒤편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묘지의 중간에 나있는 소로로 묘역을 관통해서 정문으로 나가도록 길이 이어진다. 정문으로 나가기 전에 기념관과 추모관이 있다. 길만 따라가면 다른 기념비들은 대부분 통과하도록 되어 있으니, 관심이 있는 분은 경로와 상관없이 찬찬히 공원과 묘지의 전체를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UN묘지 정문을 나서면 부산문화회관(6.5km)이 앞에 보인다.
부산문화회관의 대극장과 중극장 사이를 지나서 뒤로 나가면 길은 대연동과 감만동을 잇는 차도로 이어진다 (7km). 이 지점에 부산박물관이 있는데 걷는 방향의 뒤편에 있다 보니 그냥 지나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살짝 오르막인 인도를 따라 걷다가 다시 살짝 내리막으로 걷다 보면 부산외대의 옛 캠퍼스 정문이 우측에 보인다. 아주 오랜 옛날의 일이지만, 대학 1학년 시절에 부산외대에 다니던 친구를 찾아서 한번 온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대학방송국에 있었고, 그 친구는 학보사에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학보사 사무실에서 같이 하룻밤을 보낸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엔 동아리룸에서 밤을 보내기도 했던 시절이었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걷는 길의 오른편은 우암동이다. 부산에 올 일이 있어도 우암동은 항상 차를 타고 옆으로 지나치던 곳이어서 지리가 익숙하지 않은 곳인데, 이 캠퍼스가 여기에 있었구나 싶다.
여기서 몇 발짝만 더 걸으면 홈플러스가 있는 감만교차로가 나오고 여기서 우회전하면 7~8 부두의 높은 담장을 따라가는 넓은 대로로 이어진다(8.3km). 약 300m 걷다가 우회전을 해서 성지고 방향으로 오르막을 올라야 되는데, 잠시 걷다 보니 경로가 바뀌어 있다. 원래의 경로는 성지고-신연초-우암도시숲-문현동숲길-문현동곱창골목으로 이어지는데, 산 방향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있어서 조금 힘이 들어도 나름 운치가 있는 길이다. 하지만 아파트단지 공사 때문에 경로가 우암로의 차도를 따라가는 지루한 길로 바뀌어 있었다. 걷다 보면 가장 안 좋은 길이 차도를 따라가는 길이다. 특히나 교통량이 많으면 차가 지나가면서 내는 소음이 상당히 거슬리는데, 우암로는 부두를 오가는 대형트럭들이 많아서 소음이 많이 심한 편이다. 게다가 인도를 오랫동안 걸으면 발바닥에 무리가 가기도 하고, 매연 때문에 마땅히 쉴만한 곳도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여튼 변경된 경로 때문에 1구간에서 가장 안 좋았던 구간이 되었다.
하여튼 바뀐 경로를 따라 자동차의 소음을 견디면서 약 2.7km를 걸어서 문현동곱창골목에 이르러 원래의 경로로 다시 합류했다(11.0km). 문현동곱창골목도 낮시간에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얼매나 맛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현동교차로를 지나기 전에 문현교통공원에서 잠시 쉬었다(11.4km). 여기까지 오는 데에 약 3시간이 걸린 셈이다.
문현교차로를 지나 대로변을 잠시 걷다가 육교를 하나 건너면 재봉틀거리가 나온다(12.0km). 재봉틀거리를 통과하면 바로 왼편에 부산진성 입구가 보인다(12.3km). 부산진성에는 장군의 지휘소였던 진남대, 임진왜란 때에 싸운 명나라 장수 천장군의 기념비, 최영장군비각, 서문성곽우주석, 조선통신사역사관과 조선통신사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제를 지냈던 영가대가 있다. 부산진성은 자성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부산을 함락시킨 후 현재의 증산공원 자리의 외곽에 있던 부산진성을 허물고 증산 정상에 증산왜성을 쌓았는데, 현재의 부산진성 자리에 자성을 쌓은 것이 자성대왜성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 우리나라에서는 자성대왜성을 수리해서 부산진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성대라는 이름보다는 부산진성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관점에서는 옳다고 보는 시각이다.
부산진성 입구를 지나면 한복거리가 이어진다. 한복거리 입구를 지나치면 눈앞에 부산진시장 건물이 나타난다. 부산진시장 건물은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출입구의 번호가 정연하게 표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지나갔는데, 그 거리가 걸어가는 길에 다시 나타났다. 부산진시장은 조선시대에 개설된 유서 깊은 시장이고, 개항 후에는 부산의 중심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한복, 포목, 폐백 등이 특화된 전국 3대 혼수시장 중의 하나이라고 한다. 근처에 재봉틀거리와 한복거리 그리고 가구거리가 있는 것은 혼수와 관련된 상권이 하나로 연결된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부산진시장 옆을 지나쳐 계속 대로를 걷다가 좌회전하면 좌천동 가구거리가 시작된다. 길은 가구거리 입구에서 지나쳐서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부산의 근대 역사와 관련된 유서 깊은 장소들이 이어진다.
임진왜란 때 전사한 부산첨사 정발(鄭發)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공단, 항일무장독립운동을 도모하다가 열일곱의 나이인 1945년에 옥사한 독립유공자 정오연의 생가, 왕길지기념관이 보이는 거리를 지나(13.2km), 우측으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부산진교회가 나온다(13.4km). 교회의 벽에는 부산진일신여학교의 설립자인 선교사 맥켄지 일가의 봉사 정신을 설명하는 벽부착물들을 볼 수 있다. 교회 위쪽의 앞편에는 부산진일신여학교 기념관이 있고, 그 위로 부산 동구의 독립운동에 관한 벽부착물들이 있다.
이제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13.6km). 계단의 도시 부산,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증산공원이 나온다(14.0km). 나중에 보니까 이 구간에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우리는 왜 그걸 못 봤을까 싶다.
왜 못 봤을까?
부산진성에서 증산공원까지로 연결되는, 이바구길의 '부산항 개항 가도' 코스는 남파랑길의 경로와는 일부가 다르지만 많은 부분이 겹친다. 미리 참고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심 구간을 걸을 때는 확인하고 들러야 될 포인트들이 많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 아쉬웠다. 길을 걸을 때도 경로의 사전 정보를 미리 숙지하는 것은 참 중요하다.
증산공원에 도착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반대편의 출입구로 나선다. 동구도서관이 앞에 있다. 왼쪽 편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가면서 오른쪽 아래로 보이는 범일동을 조망하면서 내려갔다. 그 길의 끝에서 성북웹툰이바구길을 만난다. (14.5km)
웹툰이바구길에는 상가들의 모든 간판에 그림이 그려져 있고, 건물의 외벽들도 만화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정도의 밀도로 빽빽이 그려진 수준 높은 그림들이 보기가 좋은 구간이다. 좀 더 머무르면서 만화체험관에도 들어가 보고 그림들을 하나하나 담아가고 싶었는데, 오늘은 시점에서부터 출발 시간이 너무 늦었고, 도중에 볼거리들이 많아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음으로 기약하고 눈으로만 훑고 지나쳤다. 그러기에는 참 아쉬운 거리이다.
이바구길을 포함해서 약 500m 정도를 동네 골목길을 따라서 걷다 보면 이제부터는 수정동으로 넘어간다. 길은 수정동의 북편에 있는 수정산 기슭으로 올라간다. 이제부터 약 3km 정도를 주택가의 가장 뒤편에 있는 수정산 기슭을 따라서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게 된다(15.0km).
마을의 가장 뒤쪽, 산방향으로 윗부분과 산이 만나는 접경을 따라서 마을 뒷길이 조성되어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산등성이로 이어지는 산책로로 길이 이어진다. 1.2km를 더 걸어서 수정가족체육공원 입구를 지나친다(16.2km). 이제 시간은 6시를 넘어섰고 잠시후면 해가 저물 것 같다. 산책로와 마을 뒷길이 번갈아 이어지면서 구봉산 치유숲길 입구에 도착했다(17.0km). 1km 정도를 숲길을 걸어가는 동안 해가 저물어 버렸다. 편백나무로 보이는 키 큰 나무들이 빛을 가려서 숲길이 어둡다.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음에도 길은 어둡다. 간간이 가로등이 있어서 걷는 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지만 짧은 산길이나마 이 어둑한 시간에 혼자서 걷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다. 산길의 끝에서 좁은 동네 골목길이 시작되지만(18.0km), 300m 정도를 걸어가니 큰길이 나온다. 산복도로와 만나는 지점이다(18.3km). 유치환의 우체통이 있는 전망대 아래로 초량동의 밝은 야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미 구봉산 치유숲길 입구를 지나면서 초량동에 들어섰지만 이 지점에 와서야 비로소 초량동임을 실감하게 된다.
유치환의 우체통 전망대에서 잠시 쉬면서 사진을 찍다가 다시 산복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길을 계속 걸었다. 1.2km를 산복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초량동의 아래 동네로 내려가는 168 계단과 전망대가 나온다(19.5km). 여기서는 아래로 내려가는 모노레일이 있지만 운행을 하지 않는 상태여서 가파른 168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갔다. 경사가 굉장히 심한 계단이어서 낮시간에도 조심해서 다녀야 될 것 같다. 역시 부산은 계단의 도시이다. 1구간에서는 계단의 존재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168 계단을 모두 내려오니 전면 파사드가 멋진 모노레일 탑승장이 있지만, 현재 안전에 적합지 않아서 휴업 중이고 경사형 엘리베이터로 교체 후 올해 6월에 개장한다고 안내되어 있다. 와, 이 모노레일에 대한 리뷰들이 참 좋았는데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마는구나...
이제 마지막으로 초량동 상가를 통과해서 부산역으로 가는 길만 남겨두고 있다. 초량교회와 초량초등학교 사이 골목을 나오면서 초량초등학교 벽에는 커다란 이바구길 안내판이 있다(19.9km). 가는 길에 '창비부산 문화공간'이라는 간판이 있는, 오래되어 보이는 붉은 벽돌의 근대 건물이 눈에 띈다. 옛, 백제병원 건물이라고 한다. 근대풍의 붉은 벽돌 건물은 요즘에는 그 느낌을 재현하기가 쉽지 않다.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건물이다.
종점인 부산역 광장에 도착했다(20.8km). 시간은 7시 30분. 1구간은 소요시간이 7시간으로 잡혀 있지만, 길을 걸으면 대개는 그 시간보다 단축되는 경우가 많았다. 도심의 명소가 많은 구간이다 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다. 점심을 먹은 시간 50분을 제외하면 6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나름 부산의 알찬 명소를 많이 알게 되었지만 충분히 보지는 못했다. 출발이 늦었던 점 때문에 포인트마다 여유롭게 즐길 수 있을 여유가 없었다.
부산역에 와서도 종점을 찾느라 잠깐 헤맸다. 자료에는 KTX 1번 출구라고만 되어 있는데, 남파랑길 안내판이 아직 눈에 익지 않아서인지 찾는데 한참을 걸렸다. 결국 두리발 전용 승강장 앞에 있는 안내판을 찾아내고 1구간을 종료했다. 남파랑길의 구간 안내판은 가시성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구간 안내판은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한 디자인으로 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관계자님들, 이 안내판에도 코스 정보가 잘못되어 있네요. 앞판만 갈면 비용도 얼마 들지 않는데, 최신판으로 갈아 주시면 어떨까요?
구간 걷기를 모두 마치고 부산역 안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우리가 들어간 후에 식당은 주문을 종료한다. 아슬아슬한 순간...
긴 걸음을 마친 후여서 저녁식사도 맛있게 뚝딱 해치웠다.
일시
2024년 3월 4일(월)
시점 출발
오후 12시 10분
종점 도착
오후 7시 30분 (중식 50분)
주요 경로
오륙도 스카이워커 - 백운포/신선대/무제등소공원 - 동명대학교/동명공고 - UN공원/UN묘지 - 부산문화회관 - (부산박물관) - 대연동 - 감만동 - 우암로 - 문현동곱창골목 - 재봉틀거리 - 부산진성 - 한복거리 - 부산진시장 - 정공단 - 부산진교회 - 부산진일신여학교 - 증산공원 - (동구도서관) - 성북웹툰이바구길 - 수정산 산책로 - 수정가족체육공원 - 구봉산 치유숲길 - 유치환의 우체통/전망대 - 산복도로 - 168 계단 - 초량교회/초량초등학교 - 초량동 외국인거리 - 부산역
도보 거리 20.7km
난이도 해파랑길 기준으로는 '보통'의 수준보다는 조금은 높은 듯 하지만, 남파랑길을 더 걸어 봐야 판단이 가능할 것 같다. 판단 보류!
주차
주차비는 제법 들었지만, 대신에 시내권은 시점으로 혹은 숙소로 회귀하기에 편리하다. 외곽지에서 주차한 곳으로 회차할 때는 대부분 택시비를 들이게 되는데, 그것보다는 주차비가 싸다. 그러니 주차비가 드는 것에 별로 아쉬움은 없다.
숙소
K게스트하우스 남포 1호점 (지하철 남포역 4번 출구)
아주 좋았다. 게스트하우스 치고는 객실이 독립되어 있기도 하고, 모텔보다 더 깔끔한 느낌이다. 방이 조금 좁기는 하지만 아내와 함께 숙박만 하기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 화장실도 방마다 있어서 불편함이 없고, 간단하나마 조식도 무료로 제공된다. 평소의 내 아침식사 패턴과는 맞지 않지만 여행 중에 일시적으로는 충분히 감당이 되는 수준이다. 걷다 보면 허기가 많이 져서 점심을 충분히 챙겨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침은 요기 거리만 있어도 충분하니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토스트와 커피 정도면 충분하다. 위치도 아주 좋았다. 몇 발짝만 걸으면 자갈치시장도, BIFF거리도, 국제시장도 모두 접근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