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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싹지기 Mar 02. 2024

한없이 펼쳐질 남쪽 바닷길을 기대한다

프롤로그 : 남파랑길 1,470km 걷기를 시작하면서


이른 회사 퇴직 후에 곧바로 시작한 해파랑길 걷기를 5년 만에 끝냈다.

2년 정도를 예상했던 걸음이었지만, 새로 시작한 일을 정착시키는 것이 만만치는 않아서 밀리고 밀렸다.


그 중간에 코로나 팬데믹을 3년 정도 겪었다. 그 시기에는 해파랑길 걷기를 거의 못 했는데 그건 사실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라도 혼자서 걷는 길을 택했어야 했다. 코로나 시기에 해파랑길을 계속 걷지 못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고, 우연하게 그 시기와 겹친 것뿐이다. 나는 타의에 의해서 움직이는 일을 해야 하는 회사를 벗어나 내 의지로 선택한 일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나가고 싶어서 퇴직을 선택했다. 새로이 시작한 일을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나는 일에만 너무 집중하는 버릇을 여전히 떨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내가 해보고 싶은 일들이 생각보다 많고 그 일들에 투입되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전혀 예상을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눈앞에 펼쳐놓고 보니 새삼 당혹스러웠다. 해파랑길을 걷는 그 5년 동안에도 그 일 중의 절반도 펼쳐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여전히 스스로를 얽어매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꼭 해야 되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던 일들에 나를 집중시키고 있고, 그 일을 하는 것에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예상보다는 기간이 많이 길어졌지만, 해파랑길을 모두 걷고 난 후에 실제로 걸었던 날들의 기록을 개관해 보니 2년 안에 충분히 완보를 할 수 있는 길이었다. 처음의 계획이 옳았다. 하지만 3년 정도의 공백이 있었던 것은 결국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예상을 하지 못했던, 일의 무게였다. 아직도 나는 일에 우선적으로 나를 집중시키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남파랑길을 새로 시작한다고 그 상황이 달라질까 하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엄밀히 말하자면 8개월의 기간 동안에 걸었던 해파랑길은 전체 여정의 절반이 넘는다. 나를 얽어매었던 일들을 의도적으로 접어두고서 매달 한 번의 도보 일정을 작정하고 챙기니, 다른 일의 틈새를 이용해서 걸어도 그 일정에 충분히 도보가 가능한 여정이었다. 앞으로 내가 해야 될 일들을 다시 재편해 보면서 내가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우선순위에 올려놓았다. 해파랑길의 후반기 여정에서 그것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했으니 남파랑길을 걷는 동안은 그것들을 좀 더 정착을 시키면 가능할 일이다.


두루누비 사이트에 들어가서 남파랑길의 개요를 읽어 보았다.

남파랑길은 ‘남쪽(南)의 쪽빛(藍) 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으로,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남해안을 따라 총 90개 코스로 이루어진 1,470km의 걷기 여행길입니다. 남파랑길을 걷다 보면 남해의 수려한 해안경관과 대도시의 화려함, 농산어촌마을의 소박함을 모두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1,470km면 하루 평균 25km를 잡아도 60일 정도면 충분하고, 한 달에 한 번, 최소 3일의 여정으로 잡는다면 20개월이 걸리는 셈이다. 그럼 2년 내에 끝낼 수 있는 여정이다.


바닷길 여정의 많은 부분을 함께 하는 것은 쪽빛 바다와 이어지는 하늘, 그 사이에서 쉬고 있는 갈매기들이다.



그럼에도 두 가지 숙제는 남아 있다.


남파랑길은 전라도로 넘어가는 구간부터는 매번 집에서 구간의 시점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상당히 길어진다. 해파랑길에서는 강원도로 넘어가는 구간부터는 집에서 시점까지 가는 데에만 편도 3시간을 넘어서는 이동 시간이 필요했다. 남파랑길에서는 그 부담이 더 커진다. 대략 전체 구간의 절반을 넘어서는 순간부터는 이동 시간 부담이 커지고, 섬의 둘레를 도는 구간으로 이어질 경우에는 이동 시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그 섬을 완주해서 돌아 나오는 정도의 일정으로 가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또 한 가지 숙제는 해파랑길을 걸었던 기간이 길어서 초기의 구간에서 가졌던 느낌들이 머릿속에서 날아간 것이다. 게다가 처음 길을 걸으면서 주요 포인트의 기록을 치밀하게 챙기지 못한 탓에 놓쳐버린 포인트도 있고, 지자체가 이정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부실한 구간에서는 다른 길로 접어들기도 했던 탓에 기록을 남기기에 부족한 부분이 제법 생겼다. 그래서 당초에 해파랑길을 한번 더 걷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남파랑길로 가서 새로운 구간을 걷는 것이 좋을지를 나름 고민했었다. 결론은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해파랑길에서의 기록이 부족한 구간은 틈틈이 다시 걸어보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어쩌면 해파랑길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더 걸어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이다. 아울러, 사람들과 어울려서 함께 걸어 볼까, 아니면 혼자서 차분히 걸어 볼까, 이것도 잠시 고민했다.




하여튼...

남파랑길 걷기를 시작한다. 혼자서...

틈틈이 해파랑길을 다시 한번 더 걷는 것은 덤이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그게 결론이다.




혼자 걸으면 외롭지 않냐고 누군가가 내게 물어온 적이 있었다. 혼자 걸으면 더 자유롭다. 그리고, 걷는다는 것은 어차피 혼자서 하는 외로운 여정일 수밖에 없다.




도보여행자에게 친절한 이정표는 그 자체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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