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soh Jan 28. 2020

꼰대를 피하는 방법

월급 갖다 주며 생색 좀 내지 마라

전형적인 한국 남자인 남편은 한국 남자 특유의 전형적인 꼰대 기질을 갖고 있다. 하기 싫은 직장 생활을 하며 종종 찾아드는 권태가 밀려올 때마다 엉뚱하게도 내게 화풀이를 한다.

‘남편 잘 만나서 복 받았다.’
‘엥?’

남편이 말하는 남편 잘 만나서 복 받았다는 말의 이면에는 좋은 직장을 다니며 고액 연봉을 벌어다 주는 남편 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는 것과 그런 남편과 결혼해서 순전히 남편이 보기에 편하게 결혼 생활을 한다는 속내가 깔려 있다. 나는 남편이 저런 투의 말을 할 때마다 화가 난다.

남편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의 주된 양육자로 내가 지정되었다. 지정되었다는 표현이 맞는 표현인지 애매하긴 하나 남편의 월급이 나보다 높다는 이유에서 암묵적인 동의로 내가 주된 양육자로 결정된 것이다. 한국은 여성에 비해 남성의 월급이 월등히 높은 국가이다. 아이를 낳고 대부분의 주양육자가 여자로 결정되는 것은 월급과도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꼰대 같은 얘기를 할 때마다 나는 얘기한다.

‘회사 힘들면 그만둬요.’
‘그만두면? 나만큼 벌어올 수 있어?’
‘아니, 나는 당신만큼 벌어올 수는 없어.’
‘으이그, 그러면서 뭘 그만두라 그러냐?’

‘당신만큼 벌 수는 없지만, 나도 적은 임금을 받지는 않아. 내가 버는 한도 내에서 생활하면 되지.’

이런 대화를 할 때마다 남편은 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기분이 나쁘다. 기분은 나쁘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냥 넘어가곤 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 가만히 있는 사람은 제발 좀 건드리지 말자. 얼마가 지나지 않아 남편의 입에서 또다시 비슷한 류의 얘기가 흘러나온다. 으~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연지 아빠!’
‘응?’
‘당신이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을 돌보고, 당신이 직장 생활만 할 수 있도록 당신을 서포트하고 있어. 당신 그거 알고 있나요?’
‘......’
‘당신은 직장에 나가서 오로지 회사 일. 그거 한 가지만 신경 쓰면 되지만 난 그렇지가 않아요. 당신이 다른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직장 일만 신경 쓸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의 직장 생활 외에 다른 모든 일을 내가 도맡아 하고 있기 때문인데 당신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나요?’
‘......’

잠시 생각에 머물러 있던 남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듣고 보니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런데 회사 다니는 게 힘들긴 힘들어.’
‘당신이 회사 다니는걸 힘들어한다는 건 누구보다 나도 잘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생색내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얘기하지 않았도 당신이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한 번도 그 방향으로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 같아서 얘기하는 거예요.’

‘그려, 근데 너무 힘들단 말 이양~.’
‘씻고 와요. 맥주 준비해줄게.’


남편이 샤워를 하고 씻고 나오는 동안 간단한 술안주를 준비해서 맥주와 함께 남편 앞에 내어놓는다.

‘다른 거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요.’
‘없어.’

우리 집에만 국한된 얘기일까? 남성이 직장 생활을 하고 여성이 집안일을 하는 것이 정해진 순리는 아니다. 결혼을 하고 부부가 암묵적인 동의하에 안과 밖의 일을 결정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집안일 하는 여성을 하등의 이유로 깎아내릴 명분이 남성들에게는 없다. 어제  tvN에서 법륜 스님이 한 즉문즉설을 보며 지난 일화가 떠올라 적어본다.

남자도 우아하게 늙을 수 있다.
버릴 건 제발 좀 버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