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성장/결혼 바로 세우기_김여환, 하나의학사, 2018
결혼 적령기(내 나이로 28세)가 되자 엄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로 결혼을 종용했다. 같은 동네 누구는 결혼을 했는데 너는 뭐가 부족해서 결혼을 안 하는 것이냐는 핀잔을 매일 같이 들어야 했다. 나도 결혼을 해야 하는 건 알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어 서두를 수가 없었다. 이런 내 심정을 알 수가 없는 엄마는 꼬박 2년을 한결같이 나를 다그쳤다.
2년이 흐르고 서른이 되면서 올해는 넘기지 말고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보다 자주 소개팅을 하고 만남을 가지면서 정말 나와 맞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매일 매 순간 고민을 했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소개팅을 하고 정말 아니다 싶으면 자주 보던 친구와 결혼하려고 했다. 인륜지대사인 결혼을 뭐 그런 식으로 결정하냐는 우려 섞인 얘기를 듣기도 했다. 결혼하고 사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살면서 노력하면 누구와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똥 철학이 작용이었으리라.
마지막 소개팅에서 현재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내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던 내 친구의 결혼식에서 나를 처음 봤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 만남에서 나를 만나게 된다면 결혼을 하리라 마음을 먹고 나온 자리라고 했다. 첫 만남에서 헤어질 때 그가 건네던 작은 상자 속 ‘초콜릿’이 내 마음을 움직였을까? 비를 맞으며 창문 밖으로 나를 배웅하던 그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 결혼이었다.
선택은 전적으로 내 몫이었지만 엄마의 성화가 아니었으면 서둘러 결혼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꼬리표를 달아 따라다니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이 사람이라는 느낌이 와서 결혼을 했다’는 표현을 하듯이 내가 좋아하는 대상은 내 안에 있는 어떤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특별한 것이 없는데도 그저 좋은 사람이 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임에도 그저 싫은 사람이 있는 것은 내 인생의 역사가 만들어낸 내면화된 무의식 때문이며 그러한 무의식적 움직임으로 배우자는 선택된다. (중략) 현실을 살아가는 현 상황들의 움직임들은 의식만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과도 같은 것일 뿐 실상 우리를 이끄는 힘은 무의식(unconsciousness)에 있다.(p.45)
그의 무의식과 나의 무의식으로 서로의 배우자를 찾게 되었다. 속된 말로 ‘운명적’으로 결혼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서로의 무의식으로 찾게 되었으나 성장 과정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다 보니 결혼 초기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나는 그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고 그 또한 나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네 탓’을 하며 자주 부딪히고 자주 다퉜다.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프로이트의 남근기 분석은 광범위하다. 개인의 삶을 하나하나 분석해 나가다 보면 최종 지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엄마를 차지했던 아들은 세상으로부터의 가혹한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p.162)
남편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였다면 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로 인해 우리 둘은 잦은 마찰을 빚었던 것일까? 프로이트가 말하는 남근기(4세~6세) 때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고착화된 현상으로 우리의 문제를 쉽게 해결해 나갈 수 없었던 것일까? 결혼 초기 이런 내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우리의 가벼운 문제들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의식이 없었다. 나는 맞고 그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가 맞고 나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내가 옳기 때문에 상대가 내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지식이 없었다. 프로이트의 학문을 결혼 전에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나는 나를, 그를 좀 더 이해하며 다툼을 줄일 수 있었을까?
결혼 후에도 원 가족과 분리되지 못한 삶을 살던 남편은 나를 그들 속으로 편입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그것이 맞는 것인지 따져 볼 여유가 없었고 그런 거겠거니 하며 맞춰 살아가려고 애를 썼다. 가끔 남편과 결혼을 한 것인지 남편의 가족과 결혼을 한 것인지 아이러니할 때가 많았다.
나는 결혼을 지속하고 싶었다. 잘 꾸려가고 싶었다. 타자의 개입으로 인해 내 결혼을 끝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기다렸다. 그가 나를 바라보기를 기다렸고, 그가 내 아이 아버지의 자리에서 중심을 잡기를 기다렸다. 결혼을 하고 8~9년이 지나도 그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삐딱했다. 삐딱하게 서서 삐딱한 시선으로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지속하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내 거취에 대한 고민을 깊이 했다. 의식했다.
이 상태로 결혼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방법을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그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방법을 고민했다.
나는 이 상태로는 더 살아가기 힘들다고 얘기했다. 더는 기다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당신이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함께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이쯤에서 그만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는 내가 잠시 그러다 말겠거니 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내 입장을 고수했다. 번복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남편은 결혼 생활의 존속여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말들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나의 고충을 들여다보려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다. 남편은 본인의 잘못에 대해 하나씩 얘기하며 용서를 구했다. 나는 겉으론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남편의 선택에 더없이 감사한 순간이었다. 만약 남편이 원 가족을 선택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애착관계 형성이 잘 안된 부부는 믿음과 신뢰가 약한 탓에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려 배우자로부터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서로가 피곤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오랜 시간 고운 정을 들이며 살아가다 보면 안정된 심리 상태로 균형 잡힌 부부관계를 지속하며 건강한 가정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게 된다.(p.89)
남편과 결혼을 한지 10년이 되었지만 그와 가족으로 살게 된 건 이제 겨우 5개월이 되었다. 남들이 결혼을 하고 둘만의 신혼을 보내며 아이가 태어나서 오붓하게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가정을 늘 꿈꾸었다. 10년을 꾸준히 노력했더니 남편의 삐딱한 모습이 똑바로 설 수 있었던 것일까?
내가 새로운 일을 도모할 때마다 원 가족과의 생활로 회귀하려는 그의 무의식이 아직 나를 짓누르고 있기는 하다. 내 불안이 모조리 다 잦아들지 못하는 원인은 아마 거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의식하고 있다.
지금이 좋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대상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페어베언은 인간의 리비도가 대상을 향하여 있다고 말한다. 정신분석에서 리비도는 자신의 본능적 요소를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대상을 향해 나아간다. 대상관계 이론가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은 대상을 지향하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즉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할 때는 대부분 통합된 감정상태가 아니므로 분열적 자아는 그 사람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며 이유를 불문하고 그 대상과 함께 하기를 거부하게 된다. 혼자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게 작용을 하여 이혼을 선택하고 싱글로 살아가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혼자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다는 것인가를 깨닫게 되며 외롭고 쓸쓸한 마음으로 과거를 돌아본다. 대화를 나눌 대상이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둘이 걷던 그 길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를 회상하게 된다. 누군가 내 곁에 있어준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서야 그때를 그리워하게 된다.(p.112)
외로움은 인간의 본성인 것일까? 속된 말로 같이 있으면 힘들고 떨어지면 아쉬운 것이 배우자의 자리인 것일까? 내가 만약 이별의 수순을 밟게 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픈 경험을 했던지라 두 번 반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용한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 실패를 경험했을 뿐 같은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기혼자에 아이까지 있는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미혼 여성이 혼자 살아가는 것과는 결이 다를 것이다.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덤덤하게 감당하며 견딜 수 있을까? 내 아이가 한 부모 가정의 아이로 살며 분투하는 시간까지 온전히 다 감당할 수 있을까? 힘든 순간에는 의식하기 힘들다. 후일까지 생각하며 자각할 여유가 없다. 아이 때문에 참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신이 없어서 참고 살았다.’ 아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내 선택으로 인해 아이까지 고통받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내가 감내하니 아이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이성적으로 사고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문장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서로 성적 매력을 느껴야 하고 돈, 자녀 교육, 종교, 인척 등등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에 필요한 이 중요한 요소들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긋난다면 그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총 균 쇠_ p.244)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 사소한 문제부터 중대한 문제까지 두 사람의 합의가 도출되지 않으면 행복한 결혼을 영위할 수 없다. 아이가 있는 사람과 재혼을 하게 되면 원 가정과 새로운 가정으로 3가정의 합의가 필요하다. 두 사람이 합의하지 못한 일을 세 사람은 합의할 수 있을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은 어렵다.
파즈딕(Fosdick)은 “실패를 하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 사람이며, 결혼 생활은 사람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남겼다. 자신을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사실 상대방에게 할 말이 없어진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모든 것들은 내부에 있으며 그것을 의식화할 때 비로소 눈뜨고 깨달아지는 지혜가 생겨난다. 프로이트는 자유연상을 통한 무의식 의식화의 상담 기법으로 과거를 떠올리고 재해석하여 상처를 치유하는 놀라운 선물을 인류에게 허락했다. 인간은 무의식에 의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저갱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나 자신의 역사는 물론 부모 조상들의 역사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들로 인해 움직이는 내 존재는 또 자녀에게 대물림된다. 좋은 것은 물려주면 좋겠지만 나쁜 것을 물려주는 반복은 그만하자. 가정사역자 찰스 셀은 “오늘의 가정 문제는 내일의 가정에서 반복된다”고 말하고 있다.(p.104~p.105)
빅터 프랭클은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치 있는 일들을 염두에 두고 삶에 의미를 주는 어떤 것을 찾아야만 한다고 말한다. 인생에 있어서 삶의 의미가 없다면 계속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일 수 있다. 동물에게는 본능적인 욕망만이 존재한다. 쟁취해서 삼켜버리는 자신만을 위한 본능을 넘어 인간은 이웃을 생각할 수 있는 숭고함이 있어야 한다.(P.43)
아우슈비츠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랑클은 2차 대전 당시 600만 유대인의 학살을 지켜봤던 사람으로 그에게 닥친 가혹한 고통을 현 세대는 짐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꺼져 가는 등불 속에서 그는 인간에 대한 의미와 목적을 찾아내었던 것으로 시련을 견디는 힘은 목적 있는 삶에서 나온다. 의미를 찾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힘이 되는 것은 함께 더불어 살아갈 때 비로소 의미가 의미되게 하는 것으로 인생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의미를 통해 포기하지 않는 것이 되며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게 된다.(p.139)
프랑클은 우리를 절벽으로 내모는 것이 상황이 아니라 바로 우리 스스로라고 말한다. 인생길에 있어서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한 좋은 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인간은 어떠한 상황이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매 상황마다 선택하고 판단하는 자신의 태도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만 한다. 인간은 늘 무언가를 결정하며 간다. 무수히 많은 길을 선택하며 나아감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갈등으로 밤을 지새워도 바른길을 찾을 수 없어 또 갈등한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기 신뢰가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용기를 낸다. 믿음의 희망이 이미 자신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p.171)
인간은 95% 이상 무의식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모든 것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어떤 것들 때문이고 “내 탓”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깊은 무의식으로 들어가 진정한 자기를 찾아 들어가다 보면 자기 실체를 만나게 되고 “너 때문이다”라고 말하던 입을 다물게 된다.(p.143)
관계는 두 사람의 노력에 의해 지속할 수 있다. 한쪽의 일방적인 노력은 시간이 지나면 지치기 마련이다. 결혼을 하고 결혼을 지속한다는 일은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행복한 가정을 꿈꾸지만 결혼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결혼해서 살다 보면 나를 종종 잃을 때가 있다. 내가 나를 놓은 것이지 상대가 나를 놓게 한 것이 아님을 자각해야 한다. 결혼을 통해 외로움은 줄었지만 전적으로 상대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게 해서도 안 된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 결혼은 두 사람이 관계를 맺는 일이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는 선택을 했다면 아이를 낳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아이가 원해서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님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 사실을 종종 잊는 부모가 있다. 나와 남편이 원해서 낳은 아이이니 우리 마음대로 휘둘러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아이는 원하지 않았다. 우리가 원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해서 낳은 아이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할 것이다.
관계의 초점을 ‘나’로부터 시작하면 대부분의 관계는 개선이 된다. 허나 배우지 않으면 어렵다. 결혼 초기 나는 관계의 초점을 ‘너’에게 두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분석학을 배우며 나는 내면의 나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공부했다. 그들의 학문을 배우며 관계의 출발을 ‘나’로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만남과 결혼, 이혼, 재혼 그리고 회복에 관한 성장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정신 성장과 회복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내담자와의 상담 사례를 통해 관계에 대한 고민을 프로이트의 ‘무의식’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저자는 결혼 선배로, 인생 선배로 그리고 관계에 대한 깊숙한 고민을 한 선배로서 삶의 이정표를 제시해주었다.
외로울 때 혼자 고민하기 보다는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육체적 건강보다 영적 건강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신적 건강과 성장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현재 동탄 가정 심리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여환소장님의 책이다. 저자는 다각도에서 정신분석학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승화’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이 책과 함께 하는 동기를 만들어 준 분이 떠올랐다. 이 책은 저자의 아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이 책을 읽고 쓴 글을 모아 그의 어머님께 생일 선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보였다. 나는 제 부모를 섬기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래서 기꺼이 그의 바람에 동조했다. 내 부족한 글이 그의 생일 선물로 마땅했으면 좋겠다. 여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였음을 강조하며 그와 더불어 그의 어머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