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여왕이라 불리는 흑인 여가수, 빌리 홀리데이가 1939년 첫 선을 보인 Strange fruit(이상한 열매)라는 노래다. 뉴욕의 한 클럽에서, 그리 많지 않은 관객들을 앞에 두고 불려진 이 곡은 얼마 가지 않아 미국 내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특히 흑인들이 유독 이 노래를 좋아했다. 왜일까?
이 곡이 만들어졌던 20세기 초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 내 흑인 인권이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돈이 많다 한들 흑인은 사회적으로 큰 지위를 얻을 수 없었다. 많은 흑인들은 백인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온갖 학대와 수모를 당했고, 백인과는 말을 섞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범죄에 연루되는 일도 많았는데 특히 백인 남성들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흑인들에게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씌우곤 했다. 졸지에 강간범으로 몰리게 된 흑인 남성들은 맞아 죽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성기를 비롯한 사지가 절단돼 죽어서까지 백인들의 구경거리로 전략하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백인들의 이러한 인종차별적 악행이 흑인의 큰 성기를 질투하고 혐오하는 시기심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세기 초반에 발표된 의학논문만 보더라도 백인 의사와 학자들은 흑인의 성기는 비정상적으로 크고 위험하니 흑인으로부터 백인 여성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당시 백인 남성들은 흑인들이 거대하고 흉물스러운 자신들의 물건을 백인 여성들에게 삽입하고 싶어 침을 줄줄 흘린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그로 인해 아무런 죄 없는 흑인들은 백인 여성들에게 말을 걸 수 조차 없었다.
빌리 홀리데이 Strange fruit(이상한 열매)라는 곡이 탄생된 배경 역시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죄를 뒤집어쓴 두 명의 흑인 청년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1930년, 미국 인디애나 매리건에서 메리 볼이라는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혐의로 흑인 청년 토머스과 아브람이 체포된다. 백인들은 두 사람이 갇힌 감옥에까지 난입해 흑인 청년들을 나무에 목매달고 그것도 모자라 죽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재미 삼아 구경하기까지 했다. 나중에서야 이 청년들이 백인 여성을 강간하지 않았다는 혐의가 밝혀지긴 했지만 이미 그들은 세상을 떠난 뒤였다.
백인 사진기사가 당시 상황을 찍은 이 사진은 한 장당 50센트의 가격으로 수만 장이 팔려 나갔다. 우연히 이 사진을 보게 된 시인, 아벨 미어로폴은 아무런 죄의식 없는 백인들과 그 앞에서 죽어가는 흑인 청년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이상한 열매라는, 시 한 편을 쓴다.
한 여류 시인에 의해 쓰인 이 시는 2년 후 새로운 멜로디를 입고 노래로 재탄생된다. 당시 뉴욕에서 성공한 재즈 여가수였던 빌리 홀리데이는 이 노래를 불러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쉽게 허락할 순 없었다. 흑인으로서, 흑인의 아픔이 담긴 노래를 부르는 건 분명 가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행여나 백인들이 자신의 노래를 듣고 찾아와 해를 가하진 않을까 두려웠다. 게다가 그녀는 어린 시절, 백인으로부터 성폭행까지 당했던 경험까지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백인이라는 존재는 공포 그 자체였다. 망설이던 빌리 홀리데이는 그녀의 아버지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폐렴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자 이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하고, 어렵사리 세상에 발표된 이 곡은 억압된 생활을 하던 수많은 흑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eb007rzSOI
Strange fruit(이상한 열매)이 발표된 지 어느덧 80년, 이 노래는 재즈의 역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명곡이 되었다.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노래로 선정되기도 했다. 빌리 홀리데이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하고, 돈 한 푼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데 그래도 다행인 건 이 노래가 발표된 이후로 미국 사회에 인종차별에 대한 반성이 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빌리 홀리데이가 이 노래를 발표하고 타임지에 사진이 실린 최초의 흑인이 되었다는 것도 이 노래가 당시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막대했다는 걸 의미한다.
빌리 홀리데이의 용기가 없었다면 이 노래는 노래가 아닌 그저 무명 시인이 남긴 하나의 시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흑인 남성들은 백인을 성폭행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흑인에 대한 탄압과 차별이 극심하던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 빌리 홀리데이에게 늦었지만 이제라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