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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이로운 고작가 May 09. 2020

아들을 죽인 남자

조선의 21대 왕, 영조는 평소 행실이 바르지 못한 데다 공부를 게을리하는 세자를 못마땅히 여겼다.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부합하려 세자 역시 나름 열심히 노력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눈빛과 꾸지람뿐이었다. 대리청정을 맡게 되면서 밉보인 것을 만회하려고도 해보았지만 영조는 세자의 결정에 "왜 네 마음대로 하냐"라며 혼을 내었고, 반대로 세자가 어떻게 할지 물을 땐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한다"라며 타박을 주었다고 한다.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영화 <사도>의 대사처럼 세자가 바랐던 건 아버지의 애정이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꾸지람만 듣게 되자 그는 결국 별 이유 없이 내관을 죽이거나 기생, 승려들과 밤낮으로 음란한 짓을 일삼으며 삐딱선을 타고 만다. 가뜩이나 미워 죽겠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세자를 본 영조는 마흔이 넘어 얻은 귀한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여버린다.


당시 사도세자의 나이 27살인 데다 훗날 정조로 즉위하는 세손까지 있었는데도 말이다.


영화 <사도> 中


아무리 아들이 밉다고 한들, 자식을 죽이는 아버지가 과연 있을까?

사실 이해는 잘 가지 않는다만 영조가 아들인 세자를 죽인 것에는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영조의 아버지는 왕실의 피를 이어받은 왕이었던데 반해 어머니는 천한 무수리 출신의 후궁이었다. 전통적으로 조선의 왕위는 본처, 즉 중전의 맏아들이 이어받는 게 마땅해 원칙적으로는 왕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숙종에 이어 왕위를 물려받은 경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뜨게 되자 후궁 소생의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이다.


셋째 아들로 왕위에 오른 세종대왕이 적장자가 아닌 것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꼈던 것처럼 영조 역시 자신이 왕의 큰아들이 아닌 데다 어머니가 천한 출신인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특히 그는 형인 경종을 독살해 왕위에 올랐다는 소문 때문에 즉위 당시, 신하들 사이에서 평판이 그리 좋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논란을 잠재우고 왕권을 강화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당파싸움이 문제였다. 오늘날, 야당과 여당이 허구한 날 물고 뜯는 것처럼 그때 당시엔 노론과 서론의 갈등이 심했다. 영조가 중재에 나서 화해를 시키려고도 했지만 왕권 초기인지라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자가 소론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노론의 미움을 사게 된다. 노론은 만약 세자가 왕위를 물려받게 될 경우 자신들의 세력이 약해지고 소론이 더욱 강해질까 염려해 영조와 세자의 사이를 이간질시키기 시작한다.


재밌는 사실은 노론 세력 중 사도세자의 아내인 혜경궁 홍 씨와 장인인 홍봉한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자가 뒤주가 갇혀 죽을 때 적극적으로 막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방조했다고 한다. 또한 세자의 새엄마라고 할 수 있는 영조의 정비, 정순왕후 역시 노론 세력이라 세자가 비행을 저지를 때마다 이를 과장해 영조에게 일러바쳤다고 한다. 이 외에도 노론 세력들이 영조에게 세자의 비행을 고자질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하니 세자의 죽음은 노론 세력의 철저한 음모에 의해 벌어진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영화 <사도>에서는 영조가 자신의 아들인 세자를 못마땅하게 여겨 죽인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정치적인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게 사실이다. 영조가 세자에게 조금만 더 자비를 베풀고, 노론들의 이간질에 현혹되지만 않았더라도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비참은 역사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사도세자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비행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영조의 처사가 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든다. 아들이 그토록 미웠으면 세자 자리에서 내쫓고 유배를 보내거나, 벌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죽이기까지 하다니.... 영조는 진짜 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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