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이로운 Jun 01. 2019

스승의 한마디, 탱고 역사를 뒤바꾸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위인들이 참 많다. 그런데 그 이면엔 뛰어난 위인보다 더 훌륭한 스승들이 자리하고 있다. 헬렌 켈러의 교사였던 설리번 선생 역시 마찬가지다. 우린 그저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앞을 제대로 보기 힘든 시각 장애인이었다. 본인의 몸이 성치 않았음에도 헬렌 켈러의 손바닥 위에 알파벳을 쓰는 방법으로 영어를 가르쳤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었으며 심지어 헬렌 켈러가 대학에 다닐 때는 모든 강의 내용을 손바닥에 적어주며 공부를 시켰다고 한다. 우리는 장애를 딛고 일어선 헬렌 켈러만 기억하고 있지만 만약 설리번 선생이 없었더라면 헬렌 켈러는 위인으로 남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내가 할 이야기 역시 훌륭한 제자와 그보다 더 훌륭한 스승에 관한 내용이다.     


한 번쯤 피아졸라라는 이름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만약 들어보지 못했다면 지금 당장 유튜브나 음원사이트에 들어가서 <리베르 탱고>를 들어보길 바란다. 방송이나 영화에서 자주 들어봤던 멜로디일 것이다. 피아졸라는 이 곡을 작곡한 장본인인데 1992년 타계한, 나름 현대 음악가임에도 아주 옛날 사람 대하듯 탱고의 아버지, 탱고의 거장이라고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의 길거리에서 연주되던 탱고를 100단계 정도 업그레이드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렇게 불리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피아졸라가 처음부터 탱고를 한 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탱고 연주에 쓰이는 악기, 반도네온을 선물 받고 음악을 시작했는데 탱고는 그저 취미일 뿐이었고. 그의 진정한 목표는 클래식 작곡가였다. 그래서 낮에는 학교에서 클래식을 배우고 밤에는 아르헨티나의 낡은 나이트클럽에서 반도네온을 연주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장학금을 받고 프랑스로 유학 갈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디아 블랑제라는, 자신의 인생을 180도 뒤바꾼 스승을 만난다.


나디아 블랑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음악 교육자인 동시에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고 또 지휘자로도 활동할 만큼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으니 피아졸라는 기대하는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피아졸라가 나디아 블랑제를 만났을 당시, 그는 이미 서른이 넘는 만학도였고, 10년 동안이나 클래식 음악을 했기 때문에 하루빨리 학업을 마치고 음악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피아졸라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동안 자신이 작곡한 클래식 음악을 스승님 앞에서 선보였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피아졸라, 네 음악엔 개성이 졸라 없어"


진짜 이렇게 말했을 리는 없을 테지만 실제로 나디아는 음악 속에 피아졸라가 없다, 즉 너만의 색깔이 없다고 평가했다. 피아졸라는 실의에 빠졌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반도네온을 연주하며 실망한 마음을 위로받는다. 그런데 그 모습을 우연히 본 나디아는 웃으며 말한다. “바보야. 이게 피아졸라잖아!” 탱고 음악을 해보라며 권유한 것이다.     


사실 스승으로서 비주류 음악을 권유한다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 있다. 제자 입장에서 봤을 때도 클래식하려고 프랑스까지 왔는데 탱고 음악을 하라고 하면 약간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승에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일까? 아니면 탱고를 너무나도 사랑한 것일까? 피아졸라는 클래식을 때려치우고 바로 탱고 음악에 매진하게 된다.



나디아 블랑제의 선견지명은 들어맞았다. 피아졸라가 그간 갈고닦은 클래식과 어린 시절부터 연주하고 들어왔던 재즈, 그리고 탱고가 결합해 새로운 탱고 음악이 탄생했다. 그것은 ‘누에보 탱고’라고 불리며 새로운 탱고 시대를 열었다. 특히 피아졸라는 클래식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퀸텟(피아노, 반도네온, 바이올린, 베이스, 기타)을 결성해 세계 각국의 클래식 무대에서 자신이 만든 누에보 탱고를 선보인다.     


우리나라로 따진다면 국악을 약간 퓨전화 시켰다고 하는 게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 보니 탱고의 정체성을 오염시킨다는 지적도 많이 있어서 자국인 아르헨티나에선 제대로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대신 다른 나라에선 누에보 탱고를 아주 열렬히 사랑해주었다. 그래서 피아졸라는 자유롭게 자신만의 탱고 음악을 만들 수 있었고 덕분에 탱고는 비주류에서 주류 음악으로, 아르헨티나 거리 음악에서 전 세계인이 즐겨 듣는 음악의 한 장르로 재탄생했다.      



만약 나디아 블랑제의 조언이 없었다면 피아졸라는 탱고 음악을 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아니오다. 그리고 피아졸라가 만일 클래식 음악을 했다면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을 것이다. 제자가 지닌 재능을 단 번에 알아보는 나디아 블랑제 덕분에 피아졸라가 세계 음악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형 만한 아우 없고 스승보다 나은 제자는 없다. 좋은 스승이 있어야 좋은 제자도 배출되는 법이다. 내 능력이 출중하다고 거만해하기보다는 윗사람이든, 선배든, 스승이든 친구든 배울 건 배우자.! 사람은 으레 배우면서 성장하는 법이니까.!     

이전 03화 성군 세종대왕도 며느리에겐 관대하지 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