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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Aug 23. 2022

유레카

찾아내었다. 문제의 해답.

운전대를 잡은 손가락 사이사이 땀이 배어있다. 곱씹어볼수록 기분이 불쾌해졌다. 늦은 일요일 오후 서울을 향하는 양양고속도로는 엉금엉금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왜? 내 입장은 생각도 안 하나? 걔네가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막국수 집에서 30초 정도 이어진 짧은 대화가 계속 떠올랐다. 대학생 애들 사이에서 나보고 인터뷰 준비를 하라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제 사회생활 4년 차인데 취업 인터뷰 준비나 하고 있는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하지만 아쉬운 입장이라 그 자리에서 거절하기는커녕 달갑게 좋다고 대답한 내가 더 싫었다. 옆에 앉은 재희는 네가 무슨 인터뷰 준비냐며, 그냥 해도 잘할 것이라 위로해줬지만 며칠 전에 받은 인터뷰 탈락 전화를 떠올리면 그 말에 현혹되기 어려웠다.


막힌 도로 때문에 6시가 넘어 집에 도착해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바로 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 정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막국수 집에서의 대화를 그에게 이야기해줬을 때, 찰랑이던 불쾌감이 순식간에 파도 같은 속상함, 억울함, 자기혐오로 변모해있었다. 정수의 목소리와 말은 항상 나의 가장 연약한 마음이 드러나게 했다. 그래도 될 것 같이 보듬어주는 사람이니까. 한 번 울컥하자 어디 가있다 나타난지도 모를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왜 나는 나에게 온 기회 하나를 제대로 못 잡고 바보 같은 인터뷰를 봐서. 내가 뭐 그렇게 못났다고 나를 인터뷰에 탈락시켜서. 그깟 케이스 인터뷰가 뭔데 그걸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해서. 평온함, 자존감, 자기신뢰, 온갖 돈과 시간을 들여 연습해온 건강한 마음이 하나도 소용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매일 채소를 먹고, 세 시간씩 운동을 하고, 영양제를 챙겨 먹는 사람이 감기에 걸렸을 때의 기분이지 않을까 가늠해보았다.


하루가 지나고  하루가 지나도 의문문은 깊이 잠든 새벽 귀 주변을 맴도는  모기처럼 속에서 왱왱거렸다. 나는  항상 2차에서 떨어지지? 진짜 2 트라우마가 진짜인가? 왜지? 모기를 잡고 싶어도 어딘지 보이지가 않아서 속이 답답했다. 분초마다 자존감을 깎아내리면서 필라테스 학원을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는 순간  가지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나 못하나 보다.


한 두 차례 반복되면 운일 수 있지만 세 차례, 네 차례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논리를 되짚어보아도 결론이 하나였다. 나는 못하는 거였다. 인터뷰 면접관이랑 인연이 안 맞아서, 나는 호불호가 갈려서. 이것들이 물론 타당한 가설일 수 있지만 핵심 가설이기 어려웠다. 운이 작용하려면 패턴이 없어야 하는데 이쯤이면 패턴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래 인정. 그 인정이 인터뷰만큼, 아니 인터뷰보다 만 배는 더 어려워서 못했을 뿐. 문제를 인지했으니 나는 못하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문제를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만큼 미련하고 지질해 보이는 것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못하니까 잘하고 똑똑한 후배들 사이에서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보다 못할 수도 있고 그것은 죄가 아니었다. 오히려 애매하게 잘하는 척, 내가 못하는 것을 모르는 척, 부끄럽지 않은 척하는 것이 더 제 무덤을 파는 일일 테다. 오히려 내 매력에 집중해야지. 케이스 인터뷰 그깟 거 좀 못 본다고 해서 나는 별로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과시해야지. 나는 타고나길 키도 큰 데다가 최근 운동도 열심히 해서 옷발도 점점 더 잘 받고, 나에게 맞는 스타일링을 찾아가는 중이라 스타일도 점점 멋있어지고 있고, 최근에 책과 팟캐스트, 교양 예능을 섭렵한 덕에 아는 것도 많아진, 잘하는 것도, 타고난 것도 정말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단순히 케이스 못한다는 부끄러움 뒤에 숨겨두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못하는 것을 잘 해내기 위해서 노력해야지. 내가 사람 만나는 게 극도로 싫고 불편했음에도 이만큼 자연스러워진 것처럼. 정면 승부하면 내가 못할 게 없다. 단지 애매하게 잘하는 줄 착각하고 있던 과거의 상태가 문제였던 거다. 죽을 때까지 할 케이스 공부는 다 한다고 생각하고 임하기로 했다. 나는 못하는 것을 인정할 줄 알고, 잘하는 것을 인지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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