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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Oct 03. 2023

퍼스널 컬러

나의 색깔

퍼스널 컬러를 분석해 주는 서비스를 예약했다. 백수라 소득이 없는 와중에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필수적이라고 나를 설득하고, 스스럼없이 결제를 했다.


나만의 스타일을 찾고 싶은 열망은 언제나 있었다. 시크하게도 입어보고, 참하게도 입어보고, 키치 하게도 입어보고, 힙합 스타일로도 입어봤다. 엄마는 언제나 셔츠에 슬랙스가 가장 잘 어울린다며, 제발 도전을 그만두라고 설득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 스타일이 그렇게 무난한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스타일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참한 니트에 긴치마를 입고 강남역에, 카고바지에 크롭나시를 입은 저 여자의 스타일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면 며칠 후 인터넷 쇼핑 플랫폼을 둘러보다 카고바지를 구매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사고 또 사다 보니 정말이지 입을 게 없었다. 옷을 사도사도, 옷장에는 잠옷으로 입기에는 불편하고, 외출할 때 입기에는 너무 저렴해 보이고, 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들로 가득 쌓여있었다.


이상한 옷 여러 개를 사는 행위는 그만두고, 제대로 된 옷 몇 개를 사자고 결심했다. 그게 환경에도 더 좋을 듯했다. 2층 건물만 한 높이의 의류 쓰레기 더미가 쌓여 개발도상국에 수출되고 있다는 뉴스 영상을 보고 난 며칠 후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소수의 옷만 사려면 말 그대로 “제대로” 사야 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고, 어떤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지 알아야 했다 (그 둘 사이에 접점이 있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인스타에서 퍼스널 컬러를 분석해 준다는 서비스들을 비교해 보고, 연락을 했다. 예약이 너무 차 있는 나머지 한 달 이후에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예약금을 보냈다.


거울 앞에 앉아 여러 색깔로 구성된 천 뭉치를 얼굴 아래 대고, 얼굴이 환해지는지, 어두워지는지 비교했다. 결과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가을 뮤트톤’이라고 했다. 쨍한 색깔보다는 흐린 색깔이 어울리고, 그래서 베이지색, 옅은 갈색, 옅은 버건디 색상이 어울린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주로 베이지색, 아이보리색 옷들을 산다. 나에게 무난하게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신혼집 인테리어도 전부 우드톤으로 맞췄다. 오는 사람들마다 집이 예쁘다고 칭찬해 줬다. 나도 우리 집이 예뻐서 좋다. 나는 베이지 인간이야. 언제든 나라는 사람을 꾸밀 때, 나라는 사람을 표현할 때 기댈 수 있는 색감들이 있다는 것은 안전하고도 재밌는 일이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퍼스널 컬러에서 벗어난 색깔을 사본다. 정해진 색깔 팔레트에 갇히는 느낌이 들 때면, 그냥 예뻐 보이는 색깔을 한 번씩 산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영화에서 인도 구루는 말한다. “때로는 사랑 때문에 균형을 잃어보는 게, 삶의 균형을 지켜나가는 일부”라고. 때로는 안 어울리는 색깔을 입어보는 게, 나에게 맞는 색깔을 찾아가는 일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Photo by Gustavo Boar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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