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혜민 Aug 18. 2023

10년 후, 오늘, 10년 후

10년 후의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요?

10년 후의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요? 인턴 업무가 끝난 후 저녁, 공부하기 좋게 일인석을 만들어둔 카페에 앉아 아이스 라테를 마시며 예상질문에 대한 답변을 열심히 써 내려갔다. 면접에서 자주 등장하는 예상 질문들에 맞춰 답변을 써보고, 정리하고, 고치던 때였다. 취업 준비생이라면 지당 열심히 준비해야 하는 내용이었다. 여러 지원자들 사이에서 기억이 남을 개성 넘치는 답변을 하는 동시에, 지원하는 직무와 연관성이 높은 이야기를 해야 했다.


전략 컨설팅에서 압축적으로 다양한 스킬과 매니지먼트 역량을 쌓고, 이를 기반으로 영향력 있는 비영리 재단 혹은 국제기구의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깊었습니다… 어쩌고저쩌고. 실제로 있는 관심이지만 더 큰 관심처럼 보이고, 그 과정에서 전략 컨설턴트로 일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처럼 이야기를 짜 맞추기 위해서 열심히 눈을 굴렸다. 정말 10년 후에 그 모습이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다만 답변이 그럴싸하게 들리는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예상질문에 대한 촘촘한 답변을 준비하고, 각종 면접 유형에 대한 케이스들을 숙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거푸 면접에서 떨어졌다. 반발심에 분노가 차올랐다. 아니, 본인들은 당장 내년에 뭐 하고 있을지 안대? 나한테 10년 후를 왜 물어봐. 지금 당장 하반기에 무슨 회사를 다닐지도 모르고, 기후변화 때문에 10년 후에 지구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에서야 나도 몇 번 다른 사람 면접을 봐보니, 저 사람이 얼마나 커리어에 진심인지, 얼마나 장기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사는지 궁금할 뿐, 촘촘한 계획을 기대한 게 아니었을 텐데 25살에 그런 걸 알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장기적인 방향성을 세우지 않았다. 물론 극단적인 변화라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25살의 절망감은 생각보다 컸다.


그때 즈음에는 MBTI에도 계획형은 J에서 즉흥형인 P가 등장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 저녁까지의 계획을 다이어리에 적고 그걸 하나하나 그어나가는 것이 삶의 희열이었던 나였는데 말이다. 친구들은 ‘필통에 지우개 가루 치우기’ 따위의 사소한 계획까지 적혀있는 나의 다이어리를 보며 기함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가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한 유명 글로벌 전략 컨설팅 회사 면접은 결국 모두 떨어졌다. 계획해 봤자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데 계획을 뭐 하려 해. SNS에서도 ‘YOLO’라는 표현이 유행하던 즈음이었다.


이후 취직해서 돈도 생겼겠다, 직업 특성상 술자리도 많겠다, 세상의 맛있는 술을 다 먹어서 없애겠다는 기세로 술을 먹고 옷을 사고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한편으로 불안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20대는 한 번뿐인데. 인스타그램을 보면 친구들은 새벽 3시, 5시까지 일을 하고 집에 갔다. 모두들 힘들다고 하지만 SNS에 올리는 거 보니 또 불행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도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하나? 그래야 나중에 무슨 결실이라도 맺으려나? 친구들은 스포츠카를 타고 앞으로 치고 나갈 때 나 혼자 못 본 척 ‘YOLO’ 하면서 운동화 신고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또 주어진 일을 엄청 열심히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사실 그게 아니어서 모순적인 내 마음 때문에 가장 불행했다. 불안하다며. 그럼 뭐라고 해 인마! 책을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총, 균, 쇠> <사피엔스>와 같이 두께만 봐도 숨이 막혀오는 책들을 사모았다. 어쩌다 책을 피게 되면 사실은 또 재밌는 책들이라 어찌어찌 읽었지만, 읽지 않은 책들이 더 빠르게 쌓여갔다. 뉴스도 좀 봐야 할 것 같아서 경제 뉴스레터도 구독하고, 팟캐스트도 들었다. 운동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필라테스도 끊었다.


다 그때뿐이었다. 이제야 안 사실이지만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없어서였다. 책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읽었고, 뉴스도 봐야 할 것 같아서 봤다. 그즈음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낙이었던 책을 읽는 즐거움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심리상담을 받으며 검사를 통해 안 사실이지만, 나는 나태한 기질이 꽤나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고등학교 때 졸지 않겠다고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앉아 시험공부를 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전문 지표가 가리키는 나태한 기질을 보고 있자 하니, 그간의 내가 조금은 안쓰럽고 조금은 기특했다. 내가 전략 컨설팅, 투자은행 인턴을 하면서도 그토록 몰입해서 일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주어진 시간까지 결과물을 전달하지 않으면 나를 욕할 상사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상사의 존재가 사라지면 게으른 나는 치열하게 일을 할 동기를 찾지 못했다.


그나마의 동기라 하면 도태의 불안함이었다. 상담사 선생님이 물었다. 이 도태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답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오랜 시간 불안해왔기 때문이다. 혜민님은 어린 시절 어떤 사람이었나요? 어떤 가정환경이었나요? 적절한 질문이 들어오자 답변에 대한 단초들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도태’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익숙했냐면, 아버지가 그 단어를 계속 언급하면서였다. “남들만큼 하면 도태된다.” 그러니 적당히 하지 말라고 했다. 남들의 2배, 10배로 해야 남들보다 앞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되돌아보니 남들보다 왜 앞서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조차 나에게 없었다. 그 당위조차 없으면서 나는 그저 남들보다 앞서기 위한 방법과 전략을 고민해 왔으니, 실행력이 점점 소멸되어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심리 상담사는 그런 나에게 말했다. “자신의 기준을 가지세요.”


그게 뭔데요. 먹을 수 있는 건가요. 삐딱하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언제나 착한 사람이고 싶은 나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이 지난 후, 회사에서 타깃 고객을 정의하기 위한 접근 방식을 정리해보고 있었다. 타깃 고객의 우선순위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타깃 고객을 정의하는 기준들 중에서 중요한 기준을 발라내고, 거기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준이 있어야 나중에 모호한 상황이 오더라도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할 터였다. 타깃 고객 모수가 많은가? 지불 역량, 예컨대 소득 수준이 높은가? 새로운 기술 서비스에 열린 태도를 가졌는가?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사람답게 컴퓨터에 정리를 안 하고 전화 부스로 사용하는 사무실의 1인 부스에 앉아 종이를 끄적이다, 머리를 쥐어뜯다, 허공을 바라봤다.


오백 가지의 잡생각이 지나갈 때 즈음, 심리 상담사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자신의 기준을 가지세요.”


그러니까 이 기준이랑, 그 기준이랑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겠다. 내 삶의 결정들을 내리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립하기 위해 사용될 기준. 그런 기준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직을 선택할 때 나는 새로운 도전에 열린 태도를 가졌는가? 나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때 가장 몰입하는 사람인가?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의 최대치는 얼마인가? 최소 얼마 큼의 소득이 필요한가? 내가 포기할 수 있는 직장의 특징은 무엇이고 포기할 수 없는 특징은 무엇인가? 그리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내 안의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의 기준을 버리고 나만의 기준을 찾아야 했다. 나를 움직일 수 있는 나의 흥미. 나의 동기.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남의 시선이 아닌 나만의 재미와 의미였다. 지금 와서 치열하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드는 이유는, 도태될까 봐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보고 싶다는 열망이다.


뒷마당에 묻어놓은 보물상자를 꺼내듯, 거기 안에 담긴 질문들 하나하나를 꺼내 답을 해야 할 차례였다. 그날 집에 가서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노트를 펼치고 질문과 답을 써 내려갔다. 써 내려갔다고 표현하기에는 답변을 서술할 때 두 글자 썼다 정지하고, 한 문장 썼다가 정지하기를 반복했다. 너무 오랜만에 자문하는 이야기들에 이야기는커녕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할지조차 막막했다.


하루 안에 과업을 끝내지 못하고 4일에 걸쳐서 어느 날은 방안 책상에서, 어느 날은 집 앞 카페에서, 어느 날은 자주 가는 칵테일 바에서 종이를 채워나갔다. 역시 최고의 미덕은 꾸준함이라고 했던가. 언제나 텅텅 비어있을 것 같은 노트에는 펜 자국들이 채워졌다.


내 방 침대에 앉아 99번째 노트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근데 왠지 읽어야 할 것 같은 고전 문학과 자기 계발서가 너무 많아서 언제부턴가 부담스러워졌구나. 글 쓰는 재미도 잊고 살았구나. 운동처럼 안 해 버릇 하니 어느 순간 다시 시작할 엄두와 기력을 상실해서 그렇구나. 나는 누군가를 돕는 게 중요하구나. 업을 통해서 내가 공감하는 아픔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나는 의지와 끈기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겠구나.


막 태어나 색깔도 없고, 온통 흐린 세상을 보다 차츰 색깔을 보고, 물체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어린 아기처럼, 내 주변의 세상과 거울 속 형체를 보았다. 갓난아기와 다른 점이라면 당장 내일부터 내가 본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가늠이 된다는 것, 내 의지로 그것을 하기 위해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정도일 것 같았다.


10년 후의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요? 모르긴 몰라도 지금 어렴풋이 보이는 이 길을 따라 걷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 끝에서 나는 아빠도, 친구도, 눈치 보는 낯선 사람도 아닌, 나를 조금 더 보듬었으면 좋겠네요. 불안하지 않은 온전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전 08화 유레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