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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Aug 02. 2023

혜민, 편안함에 이르렀나?

10년 후 나에게 보내는 편지

“편안함에 이르렀나?”


어디선가 보았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대사이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삶을 살아내던 젊은 ‘지안’에게, 어려운 시간을 지나 편안함에 이르렀는지 물어보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묻고 싶다. 39살의 혜민. 젊은 시절을 지나 “편안함에 이르렀나?”


드라마 속 여주인공 ‘지안’처럼 돈 없고, 무시당하는 삶은 아니었을지 언정, 편안함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20대였다. 20살에는 노는 게 대학생의 신분이라고 해서 열심히 놀았고, 21살에는 다양한 사람과 넓게 친구를 맺어야 한다고 해서 다양한 인연들에게 매달렸고, 22살에는 세상을 넓게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해서 다양한 세상을 경험했다. 23살에는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고 해서 가장 돈을 잘 벌면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직장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24살에는 그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요건들을 열심히 채워나갔다. 요건이 부족했는지, 그 직장에 들어가지 못한 25살, 업계 4위 회사를 가느니 나는 나만의 길을 걷겠다며 돌연 예상하지 못했던 커리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6살 때는 일을 못하는 내가 너무 싫어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엎어질 때면 베개에 얼굴을 처박고 엉엉 울었고, 27살 때는 우는 것보다 노는 게 나을 듯싶어서 다시 20살이 된 것처럼 열심히 놀아제꼈다. 28살 때는 큰 마음먹고 첫 직장을 그만뒀다. 더 이상 매일 아침 불행하지 않아도 되는 사실은 좋았으나, 내 미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불투명한 탓에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29살이 되었다.


되돌아보니 지독한 자기혐오를 어떻게 마주하고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근육도 없이 비실비실대는 날들이었다. 남들이 그러라고 해서, 중요하다고 하니까, 불안해서, 내린 선택들이 쌓여서 하루를 만들고, 한 달을 만들고, 일 년을 만들었다.


아직도 생각하면 어이없는 날이 있는데, 서울 가는 버스 예약을 잘못해서 약속을 파투 낸 날이었다. 당시 인천에 학교가 있어서, 서울을 가려면 버스를 학교 홈페이지에서 따로 예매했어야 했다. 지금보다 10배는 더 덜렁거리던 21살의 나는 어김없이 또 버스 예약을 잘못했다. 다른 날 버스를 예매한 건지, 돌아오는 버스를 예매한 건지, 뭘 잘못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약속 시간 직전에 버스를 타지 못해서 약속을 파투내야 했던 기억은 난다. 멍청한 실수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친 나 자신이 저주스러웠던 나는. 말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지만. 학교 길바닥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나는 왜 항상 이런 식인지, 왜 이렇게 별로인지,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는 와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었다.


이건 좀 극단적인 날이었지만, 그 외에도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절망과 분노, 혐오감에 찌든 채 자주 울었다. 동아리 부회장이 되어서 대량 인쇄한 포스터에 오타가 있었을 때, 지하철을 잘못 타서 약속에 1시간 가까이 늦었을 때, 누가 보면 그냥 짜증 내고 말았을 상황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서 나를 비난하고, 그런 나에게 상처받아 울고 또 울었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무능한 나 자신이 너무 싫어서,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이 너무 싫어서 자주 울었다. 남들에게는 정말 당연해 보이는 일이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아서, 막연해서 울었고,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또 일이 엎어져서 서러워서 울었다.


그러니까, 손톱 밑에 끼인 미세한 가시 같은 콤플렉스가 항상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내가 도달하지 못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감과 함께. 나는 내가 누가 되고 싶은지만 알았지, 내가 누구인지는 전혀 몰랐다. 


한 번은 일이 엎어졌다고 이렇게까지 서럽고 절망스러울 일일까 싶어서, 엉엉 우는 와중에 핸드폰으로 심리상담 어플을 깔아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2년째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인정할 만큼 성과가 안 났으며, 나아지고 있는 기미가 별로 안 보이는 게 너무너무 괴롭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잘한다고 아무리 인정하고 칭찬해 줘도 업계 사람들 대비 못하는 게 절망스럽다고 했다. 그렇게 절망스러울 거면 죽을 만큼 열심히 해봐야 하는데 그럴 의지와 실행력은 없어서 더 절망스럽다는 말과 함께. 일을 어떻게 해나가야 더 잘할 수 있는지 길이 안 보일 때면 불 없는 밤바다 한 중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기분이고,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지 못했을 때 한심하다고.


나는 편견은 없지만 의견이 있고, 회사에서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해서 인정을 받고, 패션 센스가 있으며, 자기 관리가 철저해서 피부도 몸매도 좋은, 그러면서 인문학과 시사에 밝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이 물었다. “그런 사람이 있나요?” 모르겠지만 그래도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매일 그렇게 되지 못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거울 속의 나를 저주하고 미워했다. 명상과 요가에 집착했다. 인센스를 피우고서 “나만 모른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걸”과 같은 종류의 에세이를 읽고 또 읽었다. 이렇게 하면 편안함에 이를까 싶어서. 


얼마 전 엄마로부터 카톡이 왔다. 이기듯 살지 말고, 재미있게 살라는 말을 했다. 퇴사를 고민하는 내가 괴로워 보여 걱정 끝에 보낸 메시지인 듯 했다. 핸드폰 화면에 띄워진 말 풍선을 보고 있자니, 지난 20대의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구나, 나는 이기듯 살아왔구나. 그래서 내가 어려운 상황을 대면했을 때 이겨내지 못하면 그건 패배라고 줄곧 이름을 붙여왔구나. 전쟁에 패배한 국가의 원수처럼 나를 한심해하고 책망해 왔구나.


이제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려고 들였던 시간과 에너지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데 쓰고 있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나는 이럴 때 기쁘구나. 나는 이런 상황에서는 자기 관리를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면 조금 더 열심히 하는구나. 나에 대해 아는 것이 한 줄 더 늘어갈 때마다 나를 조금 덜 미워하는 방법을 배운다.


놀아야 해서, 얻어야 해서, 배워야 해서, 해야 해서 하는 그런 것들 말고,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좋아서 하는 따위의 것들. 이제 그런 것들로 나의 아침부터 저녁을 채워가고 싶다.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불행과 행복을 오갈 수 있는, 그런 근육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20대를 마무리 해가는 지금, 이후 10년은 이기듯 살지 않고, 재미있게 살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니 묻고 싶다. 39살의 혜민. 편안함에 이르렀나?


Photo by guille pozz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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