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끼리 술을 한 바탕 마시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취한 채로 침대에 앉아 있으려니 씻기가 귀찮아서 핸드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하염없이 넘겨보고 있었다. 그러다 마주한 하나의 영상이 재생되는 중, 차오른 눈물이 이내 넘쳐서 멈출 줄 모르고 뚝뚝 떨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NfmZC0SfB-s
감동의 눈물이기도 했으나, 대체로 절망의 눈물이었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분명 좋은 일 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전략적이고 똑똑하게 사회적으로 이로운 일을 하고 있는 게 맞나?
하루 일과는 대체로 창업자의 사업 소개를 듣고,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사업이 실패할 아홉 가지 이유에 대해서 질문하고, 성공할 것 같은 이유 하나라도 보이면 이 사업이 얼마나 돈이 될 것 같은지 상급자를 설득할 궁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회사들은 내가 아니어도 투자받을 곳이 많았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내가 아니라 창업자들이었다.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나는 사회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창업자들을 사업적으로 돕고 싶어도, 사업 경험이라고는 대학 축제 때 술과 안주 팔아본 게 전부인 나로서는, 사업과 전략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짧게나마 스타트업에서 사업개발을 주도하고,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는지 더욱 깊이 깨닫고 있다. 물론 나보다 똑똑하고, 감각이, 소통 능력이 뛰어난, 창업자 이상으로 공부를 많이 한 그런 투자자도 있겠지만 부끄럽게도 그게 나는 아니었다.
반면, 코로나로 인해 당신 형편도 어려운 와중에 돈이 부족한 형제에게 치킨을 튀겨주고, 미용실에 데리고 가준 사장님은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사회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계셨다. 그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리고 부끄러워서 나는 그날 밤 좀 많이 울었다. (아아, 영상을 오랜만에 다시 본 지금도 눈물이 난다.)
물론 영상 하나로 인생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다음 날에도 출근을 했고, 많은 술자리에 나갔고, 많은 창업자의 투자 제안을 거절했다. 월급이 나오면 이곳저곳 소액의 기부를 하고, 이곳저곳 와인바와 옷가게에서 거액의 결제를 했다.
휴가 차 갔던 춘천의 한 북스테이에서 저녁에 잠깐 머무르는 다른 사람들과 치맥을 했다. 그중 결혼 이후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왔다는 여자분이 계셨는데, 남편 분께서 치킨 가게를 운영한다고 하셨다. 학교 밖 청소년이나 보육원 퇴소 청소년을 여럿 고용하고 있는데, 알고 보면 정말 착한 아이들이라고,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 어른들이 문제라고 했다. 두 분은 명절 때가 되면 아이들을 집으로 다 불러서 떡국을 해 먹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의기소침해졌다. 돈쭐난 치킨집 사장님의 영상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따뜻한 치킨집 사장님이 정말 많은가 보다.)
나의 의기소침한 마음과는 별개로 ESG는 하루가 다르게 핫한 키워드가 되어가고 있었다. 임팩트 투자도 결국 사회적, 환경적으로 가치 있는 기업들에 투자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ESG와 떼려야 뗄 수 없었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업무 모니터링을 위해 ESG 관련 뉴스를 구글에 검색할 때면 매일매일 더 많은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뉴스 헤드라인에는 누가 들어도 이름을 알 만한 기업들이 더 자주 등장했다. 기업들은 특가세일을 놓치지 않고 카트에 주워담는 우리 아빠처럼,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ESG 관련 기사를 내고, 사업부를 신설했다. 서점에 가도 ESG를 주제로 한 책들이 서점 매대에 줄지어 누워있었다.
파도를 타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 하나 틀린 게 없었다. 사회 경험이 채 3년도 안 되는 나에게 과분한 기회들이 주어졌다. 관련 행사가 하도 많다 보니 대표님, 이사님들 대신에 행사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위 '땜빵'으로 이런저런 팟캐스트에 출연하기도 했다. 진행을 맡은 인플루언서가 바로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면 그분 팬이 아닌데도 그저 신기해서 눈을 힐끔거렸다.
성장하는 것은 ESG 뿐만 아니었다. 정부가 스타트업 생태계를 계속해서, 더 큰 예산으로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크고 작은 벤처캐피털이 생겨나고, 기존에 있었던 벤처캐피털들은 더 빠르게 성장했다. 바야흐로 스타트업 전성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입사할 당시에 눈을 씻고 찾으면 겨우 한 명 보일까 말까 했던 주니어 또래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로만 커뮤니티가 생길 지경이었다. 벤처캐피털들이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일손이 부족해지고, 그래서 경력직 위주로만 채용했던 과거와 달리 신입 직원들을 뽑기 시작한 것이다.
커리어 플랫폼에 구직 신청을 올린 적도 없는데 군데군데에서 나를 찾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우와, 이런 건 돈 많이 주고 규모가 큰 외국계 대기업 직원들이나 받는 것 아니었나? 처음 경험해 보는 구직 시장 생리가 그저 신기해서 관심도 없는 기업의 구인 메시지를 여러 번 눌러보았다.
그뿐이었다. 신기함. 관심도, 욕구도 없었다. 이직을 하게 된다면 이 일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더 이상 낯선 사람들을 만나 내가 확신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척 말하고 싶지 않았다. 싫은 게 아니라 정말 모르겠는데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았다.
춘천 여행에서 돌아온 지 5개월이 지났을 때 대표님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직할 직장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