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하는 글짓기 시간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말한다.
“엄마, 학교 도서관에서 에세이를 빌렸는데 재미있어. 엄마도 읽어봐.”
“에세이? 그래, 엄마도 보여 줘.”
아동용 에세이도 있나? 어떤 책인지 궁금하다. 아이가 들고 온 책 제목을 보니, <사춘기라 그런 게 아니라 우울해서 그런 거예요> 다. 표지 아래에 ‘십 대들의 우울한 마음을 보듬어 주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에세이’라는 설명이 부제처럼 달려있다.
“이거 너한테 어려울 거 같은데.”
“아니야, 학교에서 벌써 절반이나 읽었어. 재밌던데!”
흔치 않은 일이다. 아이는 책을 읽는다고 방에 들어가더니 삼십 분이 조금 지나 다 읽었다고 나왔다. 아이와 글쓰기를 하기로 한 요일이라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꼭지를 골라 관련 내용을 써보자고 했다.
딸아이가 올해부터 부쩍 책 읽기를 싫어한다. 코로나19로 글쓰기 학원에 등록하기도 논술 선생님을 부르기도 조심스럽다. 임시방편으로 일주일에 2번, 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됐다. 글쓰기 교육책을 보니 아이가 글쓰기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칭찬을 해줘야 한다고 해서 덮어놓고 칭찬만 하고 있다.
아이가 책에서 고른 꼭지의 제목은 ‘꼭 뭘 해야만 해요?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무기력)’였다. 제목을 보자마자 마음속에서는 ‘너처럼 한가한 4학년이 어디 있니.’란 생각이 툭 튀어나왔지만 꾹 참고 책의 내용을 읽어보았다. 그 책에서는 ‘실패는 모두 내 탓이야, 나는 항상 실패해, 실패는 앞으로도 계속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무기력을 가져온다고 했다. 실패했을 때 무조건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게 중요하고 다른 일에는 ‘이번 일은 달라. 잘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고 했다.
글쓰기 전에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에 실패한 경험이 뭐야?”
“실패? 실패가 뭔데?”
“네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노력했는데 잘되지 않은 거.”
잠시 생각하던 아이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이는 작게 속삭였다.
“수학 단원 평가 75점 맞은 거.”
앗. 몰랐던 사실이다.
“그걸 왜 실패라고 생각해?”
“100점 맞은 애들도 많았고 대부분이 다 90점대였거든. 70점대는 거의 없었어.”
“그래서 마음이 어땠어?”
“너무 창피했어. 울고 싶었는데 울면 더 창피할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척했어.”
“아이고, 힘들었겠네.”
핀잔주고 싶은 마음을 참고 한마디 했더니 아이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아이 곁으로 가 아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런 실패 후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난 뭔가 수학 공부에 대한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운 다음에 잠을 자. 그러면 기분이 나아져.”
‘어머나. 딸아. 수학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니. 그렇게 잠을 자버리면 다음에 또 같은 일을 겪을 수도 있잖아.’ 난 속으로만 생각한다. 지금은 엄마가 아니라 글쓰기 선생님이니 생각을 거르고 걸러 아이에게 말한다.
“다음에 같은 일이 안 생기게 수학 공부를 하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내가 멍청해서 그래, 난 수학을 원래 못해.’처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거야.’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아이는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그저 가만히 있다. 어쨌든 글쓰기 시간이니 글을 쓰기로 한다.
아이가 글을 다 썼다고 나에게 내민다. 자신이 창피했던 순간에 대한 느낌이 많다. 책에서는 작은 목표를 정해 성취감을 느끼며 무기력을 극복하라고 했다는데 자신은 어떤 목표를 정할지 모르겠다는 문장으로 글이 끝났다. 수학 공부에 대한 내용은 한 줄도 없다. 아이가 쓴 글에 소감을 쓴다. 난 먼저 위로의 말을 주저리주저리 쓴 다음,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진심이 삐죽 나왔다.
“엄마, 사소한 목표를 정해서 그걸 성취하는 게 좋다던데 뭘로 할까?”
“네가 할 거니까 네가 정해야지. 하고 싶은 걸로 정해.”
아이는 한참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라면 2 봉지 먹는 거?”
아이고야. 난 수학에 대한 목표를 말할 줄 알았는데. 이번엔 속마음이 걸러지지 않는다.
“그건 좀 아닌 거 같다.”
그날 우리는 끝까지 평행선이었다. 지금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엄마가 아니라 글쓰기 선생님이었다면 까르르 웃은 다음 좋은 생각이라고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