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했던 이유들
금요일입니다. 오늘 아침의 날씨는 화창합니다. 햇빛도 쨍쨍하고 따뜻합니다. 바람은 포근하고, 하늘은 푸릅니다. 똑같은 모습의 건물들 사이로 보이지 않던 빛이 새어 나옵니다. 적당히 일찍 나와 출근하는 사람들은 목적지 전에 미리 내려 걷는 건 어떨까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어제와 다른 순간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제는 힘들었습니다. 인류애의 고갈을 느꼈습니다. 마음이 식고 닫혔습니다. 집에 가려고 올랐던 버스는 한결 같이 지친 모습의 어른들 잔치였습니다. 저들과 나의 모습이 다르지 않아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기도 했지만, 밤에 피어나는 우리의 우울도 버스에서 만개했습니다. 살아 있기는 한 걸까요. 게임과 영상에 빠져 시름을 잊는 것도 공통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사람과 콘텐츠를 잇는 플랫폼은 수익만 내는 것이 아니라 어른의 입에 호흡기를 물리고 있었습니다.
무적의 초등학생들이 버스에 올라탑니다. 아랑곳 않고, 떠들기 시작합니다. 핸드폰에서는 외계어처럼 들리는 말에 무슨 채널인지도 모를 내용이 흘러나옵니다. 이어폰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남들을 신경 쓰지 않는 걸까요? 버릇없는 아이들, 귀찮고 짜증 난 표정으로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죽은 척하는 어른들. 그 사이에 끼어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내 모습이 절묘하게 고요를 만듭니다. 사람에 지치고 정적에 물든 밤입니다.
늘 이런 일만 있는 것도 아닌데 부쩍 예민하게 굴었습니다. 나만 있는 공간도 아니고, 만 번도 넘게 겪은 것 같은데 또 이럽니다. 통제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그나마 통제가 가능한 내 마음을 고쳐 먹는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을 바꾸니 머릿속을 채우는 장면들이 달라집니다.
다시, 머릿속이 활발해지고 감사함에 흠뻑 젖게 만드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말보다 행동으로, 위트와 따뜻함으로 거칠었던 나를 돌봐 주었던 정년퇴직을 앞둔 부장님이 계셨습니다. 직장에서의 나이로는 노년에 접어든, 힘을 잃은 아저씨를 무시하고, 멀리 했던 직원들도 있었지만 나의 젊음과 그의 성숙은 꽤 근사한 만남이었습니다. 항상 본인의 업적과 자랑거리를 말할 때면 입꼬리가 천장에 닿을 만큼 즐거워하셨던 부장님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빵집을 하시는 사모님께 허락을 받아 이따금씩 가지고 오셨던 바삭한 소보로 빵이 생각납니다.
지금도 가끔 안부를 물어 주시는 차장님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성실하셨고, 가족과 일에 늘 최선이었습니다. 사람을 미워하거나 의심하기보다는 다정하고 친절하게 바라봐주셨던 그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정제된 언어와 예의 바른 행동이 습관처럼 보이는 그분의 모습에서 인격이 아름답다는 건 어떠한 것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배우자를 따라 외국으로 떠나셨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다시 복직을 하고, 회사 생활을 계속하고 계신 것 같은데, 언제나 응원의 마음입니다.
이제는 매일 볼 수 없지만, 같이 야근하며 동고동락했던 나의 팀장님도 등장합니다.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았던 우리는 팀장과 차석의 관계를 넘어 꽤 괜찮은 관계로 이어졌습니다. 내가 일에 허덕일 때마다 앞에서 이끌어 주셨고, 뒤에서도 밀어주셨습니다. 그분이 어딜 가든 따라가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나의 개성과 다양성과 그 사이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각자의 장점을 살려 어려운 과업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분이었습니다. 양보와 배려를 받은 쪽은 언제나 저였습니다.
이제 형이라도 불러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형이란 호칭이 주는 약간의 가벼움과 팀장님이란 호칭에 깃든 무게감에 오락가락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선배님이나 형님이라 부르고 싶지만, 그것 역시 입에 잘 붙지 않아 여전히 팀장님이라 부릅니다. 팀장님, 고생하신 만큼 다 돌려받으셨으면 합니다. 어디서든 지금보다 더 잘 되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팀장님 덕분에 무슨 일을 하든 경쾌한 리듬을 잃지 않고, 클래식 같은 BGM을 마음에 품으며 일을 합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내가 더 다가가면 언제든 닿을 수 있는 관계였는데 이제는 망설이고, 주춤하는 시간만 가득히 남아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건 인류애를 향한 갈구가 아니었습니다. 울림을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그리움 같은 것입니다. 덕분에 오늘 하루가 활짝 펴지는 느낌입니다. 한참 비가 오는 축축한 날에 건조기에 돌렸던 빨래물이 뽀송뽀송 따뜻한 모습으로 나의 품에 안기는 기분입니다. 하나씩 개고 정리하며, 내일은 무엇을 입을지 또 상상할 수 있게 만듭니다.
고맙습니다, 나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