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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Sep 04. 2021

무인 편의점 절도는 어쩔 수 없다고요?

요즘 무인 편의점 털이범이 기승이다. 남편은 수시로 내게 그런 사건 동영상을 보여준다. 어떤 날은 보여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언짢은 마음에 한마디 툭 던진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지 말라고?"


이왕지사 열심히 하고 있는 아내에게  그렇게 초치는 말을 해야겠냐며 날을 세우지만 기실 화가 나는 것은 남편이 내게 영상을 보여줬기 때문이 아니라 내게도 그런 일이 닥칠까  두려워서다. 유흥가나 어두운 골목상권에 비해 비교적 치안이 안전한 동네 같아 '나는 아닐 거야' 하면서도 솔직히 자신 없다. 누가 그런  따지고 오겠는가. 예전에 어디서 들은 우스갯소리인데 도둑이 잠금장치를  따서 들지 않는  아니라 그저 우리 집은 차례가 안됐을 뿐이란다.  말에 상당히 동의한다.  생각하는데 현관문도 도어록 그냥 잘라내면 얼만든지 들어올  있는 아주 연약한 시스템이다. (끔찍하니 그만 이야기하자)




무인 편의점은 셀프 계산이 가능한 기계와 CCTV가 주인장을 대신하는 셈인데 알다시피 CCTV는 아주 작은 예방과 큰 증거는 될 수 있지만 그 자리에서 검거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인 편의점이기 때문에 주인은 매장에 상주할 수가 없고, 보고 달려간다고 한들 당연히 범인은 사라지고 만다. 24시간 내내 감시하는 것도 어렵고. 물건 몇 개 가져가는 거야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거지 솔직히 잡을 방법이 없어서 업주들은 인건비보다 도둑맞는 물건 값이 싸다며 억울함을 달랜다.


셀프 계산이 가능한 기계를 우리는 쉽게 포스기라고 부른다. 포스기는 판매를 기록하고, 카드나 현금을 넣었을 때 결제가 진행되는 아주 똑똑한 기계다. 그 안에는 현금이 들어있는데 거스름돈을 포함해 그날 수익금을 다 합친대도 30만 원이 안된다.  물레방아가 물을 돌리듯 들어있는 것이 돌고 돌아서 다시 나오고 들어가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 거의 카드 쓴다. 어린애들도 카드 들고 다니는 세상인데. 하지만 도둑들은 그 안에 엄청난 돈이 있다고 생각하고 기계 개폐구에 빠루라는 이름도 희한한 기구를 꽂아 넣는다. 남의 장사도 망치고, 자기 인생도 망치고. 바보 같은 짓이다. 업주들은 환장할 노릇이다. 포스기를 다시 사려면 적어도 5백만 원은 줘야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30만 원을 주고 말지, 포스기를 빠루로 뜯어버리면 창업비용의 상당 부분이 그냥 날아가는 거다. 제발 부탁인데 빠루 사서 무인 포스기 좀 뜯지 말아 주라. 돈 별로 없어요 거기!!


아무튼 우리 가게에도 도둑이 도착하였다. 이런 상황을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는 내가 싫지만 고맙게도 나의 도둑은  연장을 들고 들이닥친 무장강도가 아니라 아직 어린아이였다.



개업 초기 매장에는 손님과 소통하기 위한 게시판이 마련돼 있었다. 접착 종이와 펜을 비치해두었더니 손님들이 메모를 남겼다.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이름을 직접 언급하고 판매해달라고 부탁하는가 하면, 불편한 점도 기재해주니 매장을 운영하는데 도움이 됐다. 때로는 응원의 글도 있어서 고마웠고,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쓴 것 같이 삐뚤빼뚤한 글자도 있었다. 모두 감동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다음에 낼게요'라는 메모가 적히기 시작했다. CCTV로 돌려보고 싶어도 시간대를 특정할 수가 없고, 장난인지 진짠지 알 길이 없어서 그저 두었는데 청소하러 갈 때마다 있는 그 메모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흘겨쓰고서는 아무렇게나 붙이고 가는 통에 바닥에 떨어진 걸 줍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초등 여학생이었다.


"여기 어떤 애가 '다음에 낼게요'라고 쓰고 도망갔어요."


이때다 싶어 녹화 화면을 돌려봤다. 열 살 정도 돼 보이는 작고 마른 아이였다. 성큼성큼 들어와서는 원하는 것을 탁 집어서 메모지에 무언가 쓰고 벽에 탁 붙이고 떠났다.



충격을 받았다. 아무도 없을 때 몰래 한 일이 아니라 다른 손님도 있는데 당당하게 돈 대신 메모지를 붙이고 물건을 챙겨 사라지는 아이를 보니 저 아이가 이 일을 많이 해왔으며 이것이 범죄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구나 싶었다. 안타깝기도 했지만 약이 올랐다. 쟤를 어떻게 잡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데.


우리 가게에서 자유게시판은 철거되었다. 접착 메모지를 따 떼고 큰 종이에 써 붙였다. 이 게시판이 소통의 창구였지만 악용 사례가 있어서 철거하겠노라고. 그리고 '다음에 낼게요'라는 쪽지만 수북하게 붙여두었다. 보면 전화해 달라고도 적었다. 얼굴이 찍힌 화면은 게시하지 않았다.

전화는 당연히 없었고, 3주가 넘어갔다. 그 사이 나는 몇 번이고 CCTV를 들여다봤다. 남편은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이제 그냥 잊어버리라고 했다. 아니면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게 어떻냐고도 했다. 아무 아이나 의심하기 싫어서, 또는 바빠서 그렇게 하지는 않으면서도 내내 마음이 상한 채로 여러 날을 보냈다.


그날은 좀 늦게 가게에 들렀다. 걸레를 빨러 가려고 입구를 탁 나서는데 정말 CCTV 속 그 아이랑 똑같은 옷을 입은 아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상하의는 물론 사선으로 맨 작은 가방까지 같았다. 역시 범인은 현장에 다시 나타나는 법이군.


"어, 너! 너구나?"

"네? 뭐가요?"

"아줌마 이 편의점 사장인데 잠깐 들어와서 이야기 좀 할까?"


아이는 선선히 들어왔다. 들어와서는 당당하게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너 이 메모지 다 네가 쓴 거지?"

"네."


'네'라는 말이 저리도 힘찬 말이구나. 갑자기 기분이 서늘해졌다. 이름을 묻고 학년을 물었다. 내 예상대로 3학년이었다. 엄마 번호를 물었다. 아이는 내게 자기가 먹은 게 얼마냐고 되물었다. 몰라 이 새끼야. 욕을 한마디 해주고 싶은데 꾹 참았다. 고작 3학년이었기 때문이다.


아들 하미가 2학년 때 블럭방에 데려간 적이 있다. 데려갔다기보다 거기에 두고 나는 하미 친구 엄마랑 놀러 나갔다. 하미는 레고를 정말 좋아했다. 사고 싶다는 시리즈는 거의 다 사주었다. 다만 특정한 날에만 선물을 주는 우리 집 특성상 아무 때나 사주진 않았고, 생일, 명절, 어린이날 등을 이용해 하미가 원하는 건 모두 사주려고 애를 썼다. 해외배송으로 시켜서 20일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남편은 내게 극성이라고 했지만 나는 '레고는 섞어서도 놀 수 있고, 나중에 팔아먹을 수도 있다'며 짐짓 으스댔다.


아이들은 두 시간을 문제없이 놀았고, 엄마들도 수다를 맘껏 떨고 헤어졌다. 집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전화가 왔다.


"하미 어머니 되시죠? 여기 블럭방입니다."


요지는 하미가 피겨를 두 개 가져갔다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손이 발발 떨렸다. 도둑질이라니 내 아들이? 평소에 얼마나 정직에 대해 가르쳤는데, 남의 물건을 탐내지 말라고 얼마나 말해주었는데! 하미에게 물으니 너무 가지고 싶은 피겨라서 가져왔다고 했다. 나는 블럭방 사장님께 정중하게 사과하고 당장 돌려드리러 가겠다고 했다. 돌려주러 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불쾌한 마음과 분노, 미안함, 창피함이 도처에서 날아와 내 눈알에 달라붙은 기분이었다. 눈에 열이 펄펄 났다. 블럭방 사장님은 아이들이 가끔 그러기도 한다며 찾았으니 됐고, 아이가 인정했으니 너무 혼내지 말라는 말을 했다. 잘못한 건 내 아이인데 오히려 미안해하고 있었다.


꼬마 도둑의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전화를 받았다. 여기로 와줄 수 있냐는 물음에 왜냐고 묻지도 않고 '금방 갈게요'라고 말했다. 엄마가 오는 동안 아이에게 가게 한편에 서 있으라고 말하고 걸레를 빨러 갔다. 수도에 물이 차오르면 걸레를 넣고 비벼 빨아야 하는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만약에 엄마가 와서 증거 있냐고 하면 어떡하지? 내가 화면을 들이밀어도 캡처 화면일 뿐인데 오히려 더 큰소리로 소란을 피우면 어떡하지? 그럼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남편이라도 같이 왔어야 하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수도를 끄고 다시 가게로 돌아갔다. 아이는 서성거리다가 내게 톡 쏘는 말투로 '우리 엄마 언제 와요?'라고 물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이는 처음에 보이던 죄송한 낯빛을 점차로 잃어갔다. 10분여 흘렀을 뿐인데 보무도 당당하게 서성이다 엄마는 왜 안 오냐면서 내게 따졌다. 화가 났다. 그렇지만 아이를 혼낼 수가 없었다. 나는 저 아이를 혼내려고 있는 게 아니다. 훈육은 제 엄마가 시키는 것이다.


아이 엄마가 도착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이 엄마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서 말했다.

이런 일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용돈도 넉넉하게 주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가게 벽에는 계산하지 않고 가져가거나 먹다가 적발되면 50배로 배상금을 물린다는 말이 적혀있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가져간 물건은 천 원 남짓. 1천 원으로 스무 번이면 2만 원이다. 50 배면 100만 원. 동네 장사에서 그렇게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창백한 낯빛인데 벌겋게 충혈된 아이 엄마의 눈에서 수년 전 내 얼굴을 보았다.


필요한 것은 다 해준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어딘가 부족할지 모른다. 제대로 된 가정에서 올바로 교육시키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부모의 착각일지도. 아이들은 부지불식간에 때가 묻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어떻게 잡아줘야 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그것조차 잡지 못하고 두둔하거나, 지나치게 체벌하면 오히려 역효과다. 하미를 키우면서 여러 번 경험했다.


"저는 이 친구가 끝까지 잡아떼지 않고 자기라고 솔직하게 밝힌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쯤에서 멈출 수 있는 것도 다행인 것 같아요. 돈은 추산한 물건 값만 받겠습니다."


일을 마무리 짓고도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마음에 알 수 없는 괴로움이 둥지를 틀었다. 말 그대로 찝찝했다. 어떤 날은 약이 올라서 잠이 안 왔다. 잡기만 하면 발 뻗고 잘 줄 알았다. 잡았는데 시원하기보단 괜히 마음이 쓰였다. 그 엄마에게도 미안했다. 계속해서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무인 편의점을 하는 동안 계속 그런 아이들을 만날 것 같았다. 견물생심이라 하지 않나. 자꾸만 어떤 아이를 도둑으로 만들면 어떡하지? 못 잡으면 못 잡은대로 속을 끓이고, 잡아서 엄마에게 인계하면 또 그대로 마음이 안 좋다. 나 이거 계속해도 될까?

나의 걱정에 다른 점포 사장님이 답답하단 듯이 이야기했다.


"아, 사장님. 그건 약괍니다. 포스기도 다 뜯어놓고 가는 마당에 애들 장난은 귀엽죠. 사람이 없는데 훔쳐가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요즘 우후죽순 늘어가는 무인가게들은 비단 유행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우리는 점점 상업 자동화에 발맞춰 살아가야 한다. 몸이 편안해지는 자동화를 넘어 자율적 도덕성을 바탕으로 하는 자동화에 편입된 만큼 알아서 정직을 지켜야 한다. 시스템의 변화보다 교육이 한참 느리다. 셀프 시스템의 증가는 또 다른 정서적 교육을 필요로 한다. 무인이니까 도둑맞는 것 정도는 감수하라고? 천만의 말씀. 무인이라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샘솟은 게 아니라 필요한 대로 척척 안겨지던 시스템에서 부도덕이라는 에러가 일어난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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