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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Sep 19. 2021

무인 편의점 강도 사건

"어제 산곡동 싹 털린 거 보셨어요?"


'아니요. 못 봤어요. 보지 말걸 그랬나 봐요. 그 영상을 보고 나니 잠이 안 와요. 남편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했어요. 12시부터 문 닫아놔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도둑들은 청소년이나 이제 막 사회에 나온 듯 어려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행동까지 어설프더군요. 사장님은 바보 같다고 하시면서 웃었지만 저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어요. 근데요 사장님. 다른 점주 가게 털린 게 웃을 일은 아니잖아요. 내일은 내 차례가 되려나, 정말 도둑이 들면 어떡하지, 들어있는 돈보다 금고 자체가 훨씬 비싼데 연장으로 다 뜯어놓고 가면 수리도 힘들다는데 이걸 어쩌지? 공포 영화를 보고 혼자 돌아가야 하는 어두운 골목길 초입처럼 저는 오싹했어요. 겁먹어 버렸다고요.'




무인 편의점에 도둑은 여전히 기승이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도매 물류에 갔더니 사장님이 반색하면서 영상을 보여준다. 사장님도 부업으로 나와 같은 이름의 아이스크림 할인매장을 운영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산곡동 일대의 무인 편의점이 지난밤에 세 곳 털렸단다. 도매 물류 사장님의 가게는 고신동에 있어서 그 손길을 피해 갔지만 바로 옆 동네라 마음을 쓸어내렸다는 말도 덧붙였다. 거기까지면 좋았을 걸. 내게 영상을 보여주며 한다는 말이 '털어간 놈들이 멍청하다'는 거였다.


사장님이 보여준 CCTV 화면은 해당 점주가 직접 보내준 건데 가게 안쪽 전면에 위치한 카메라 녹화본이었다. 초기에 할인점을 시작한 몇몇 사람끼리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었단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연락들이 뜸해졌는데 요 며칠 카톡방에 불이 났다고 했다.


영상은 비교적 선명하게 얼굴이 찍혀서 마스크를 했으나 특정된다면 지인들은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확연했다. 범인들은 들어와서 포스기 위에 설치된 카메라를 먼저 가리고 커다란 연장으로 자물쇠를 거뜬히 잘라낸 후에 빠루를 기계 옆면에 꽂아 벌렸다. 기계는 단숨에 열렸고 세 명의 괴한은 돈을 자루에 쓸어 넣었다. 나는 마치 바로 앞에서 일어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자료화면은 멀게 느껴지던데, 어플로 녹화된 그 화면은 왜 이리도 생생하게 느껴지는지. 스릴러 영화 속 추격전처럼 범인이 나를 쫓는 것처럼 두려웠다. 속이 메슥거렸다.


"그래서 잡았어요?"

"네. 잡았대요. 경찰이 와서 동선 파악해서 결국 잡았고 지금 경찰서에 있다네요."


그제야 얕은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에 한숨을 섞었다. 잡았다는 말이 마치 '당분간 나는 안전하다' 고 하는 것 같았다. 범인들은 세 군데를 갔지만 두 군데는 금고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돈을 챙긴 반면, 세 번째 가게는 기계를 따다가 포기했다고 했다. 세 번째 가게 점주도 우리와 같은 기계를 쓰지만 미리 자물쇠를 더 달아두었단다. 미수로 그친 기계에는 스크래치만 남겼다고. 그러면서 계속 '범인이 멍청하다', 카메라를 하나만 가리면 뭘 하냐', '안되면 빨리 포기하지 그랬냐'는 둥의 리뷰를 늘어놓았다. 그 사장님은 이 사건들을 재밌어하는 눈치였다. 아니, 본인도 할인점을 운영하면서 어떻게 저리 태평하지?



처음에 가게를 오픈할 때 남편이 기계에 자물쇠가 하나라서 불안하다면서 사람을 불러 더 달면 어떻냐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사뿐히 무시하며 보기에 너무 우악스러워 보인다고 이거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런데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날 동영상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내 포스기는 처음의 그 모습을 유지했겠지만 보지 않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바엔 할 수 없다. 결국 사람을 불렀다.



아주 커다란 자물쇠를 네 개나 더 달았다. 열쇠를 가진 내가 평소에 이 문을 따는데 1분이 걸렸다면 지금은 5분도 더 걸린다. 그리하여 달려 있는 쇠를 열기 위한 구멍은 모두 여섯 개! 여섯 개를 고스란히 따지 않으면 우리 가게 포스기에서 돈을 꺼낼 수 없게 되었다. 포스기 무게는 상당하지만 행여 들고 갈까 테이블에 고정까지 확실하게 시켰다. 이젠 무적이다.




최근에 기사 하나를 보고 상처 받았다. 어떤 무인 편의점에서 학생이 물건을 훔쳤다가 잡혔다. 점주는 아이 부모를 불러 이미 가게 곳곳에 고지해 둔 바와 같이 30배에 달하는 금액을 물렸고, 그 엄마는 순순히 금액을 주었단다.


평화롭게 해결된 줄 알았는데 이 엄마가 억울하다면서 국민청원을 올렸다. '무인 편의점이 도둑을 키우고 있다'라고 말이다. 댓글에는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가정에서 도둑을 기르는 건 아닌지 점검하라는 식의 비난도 있었다. 차라리 '30배는 과하지 않나요?'였다면 이해의 여지가 있는데 무인가게가 도둑을 양산한다는 말은 상당히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데다가 아무리 들어도 이치에 맞지 않았다. 집에서 문 열고 식사하는데 누가 몰래 들어와서 내 살림살이를 훔쳐간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주인이 없다고 가져가는 것이 정당하단 말인가.


누군가는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별 일이 다 있으므로 이만하면 일도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이 작은 가게에 사활을 건 사람에게는 이슈 되는 모든 일이 예민할 수밖에 없다. 내가 운영하는 가게가 범죄를 양산하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자 너무 불편해지면서 서러웠다.


아, 몰라서 그러는구나. 생각해보니 나도 '견물'과 '생심' 중에 '생심'을 마음에 두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나도 지지하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그게 보인다. 내가 맞닿아서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과 관련 없는 이슈에는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말한다. 그 말이 틀렸을 때 즉시 수정하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해당자들은 상처를 입는다. 실제 일어난 사건이 나와 물리적으로는 관계가 없지만 심정적으로는 연결 지어져 있었나 보다. 왜 이렇게 가게 하나 하는 게 이렇게 힘들지?


"저 그냥 장사만 하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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