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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Feb 26. 2022

아무것도 선택 않을 수 없는 세상

내 아이 백신 맞추기

연일 터지는 감염 소식에 이제는 차례를 기다리는 것 같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아냐, 우리 차례는 오지 않을 거야' 장담했지만 어제 아침 딸이 목이 아프다고 하자 갑자기 자신감이 확 사라졌다. 물론 집에만 있었던 아이가 오미크론 일리 없어서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아침에 건조해서 목이 컬컬했다가도 수분 섭취 후 곧 괜찮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예상대로 딸은 곧 괜찮아졌다.


그래도 이제는 집에 진단키트를 사다 두는 것이 좋겠다는 싶어 근처 약국에 갔다. 처음에 간 곳은 품절이었고 두 번째 간 곳은 있었다. 내가 운전해서 갔는데 차를 댈 만한 곳이 없어서 남편더러 갔다 오라고 했다. 낱개로 6천 원인데 몇 개를 사냐고 묻기에 가족 수대로 사라고 했다.


5분가량 차에서 기다리니 남편이 왔다. 사온 키트를 뒷좌석에 팩 던지더니 볼멘소리로 말했다.


 "당신 때문에 나 기피당했어."


뭔 소린고 하니 남편이 들어가서 진단키트를 달라고 하자 약사가 계산대에 키트를 밀듯이 두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더란다. 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꽂고 영수증도 혼자 떼가라고 했단다. 원래 방침인데 기피까진 착각 아니냐고 묻자 절대 아니란다. 마치 코로나 환자인 듯 취급당했다며 이게 다 나 때문이라고 투덜대는 남편이 웃겨서 껄껄 웃었다.


설마 약사가 진짜로 손님을 기피하면서 그렇게 행동했을까 싶다가도 그럴 수도 있고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데믹 이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일이 늘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급격하게 변하여 평소에 인지하고 있는 관념을 벗어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감염의 우려가 높을수록 덜 인간적이어도 이해해야 되는 민감한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견뎌내야 하는 것들 중에 법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이 더 많다. 청소년 백신 접종도 마찬가지였다.


기어이 아이들의 백신 접종을 결정하였다. 부부는 진작에 맞았지만 아이들은 너무도 불안했다. 아파도 내가 아픈 게 낫고 부작용이 있어도 내가 감수하는 게 나았다. 감사하게도 남편은 일시적인 발열과 근육통을 제외하고 괜찮았지만 나는 월경이 불순해지고 접종 전에 비해 생리 전후 통증이 극심했다. 주변에서는 생리를 두 달 내내 하는 친구들이 생겼고, 한 친구는 아예 두 달 동안 월경 자체가 없어서 병원에 다닌다고도 했다. 내가 진짜로 걱정하는 것은 딸이었다.


아직 초경도 안 하는 어린 딸이 혹시라도 자궁 쪽으로 부작용을 겪을까 봐 염려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이가 다 자랐거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죄다 '모두에게 부작용이 있는 건 아니다, 아무개네 집 누구누구는 이상 없다더라' 하면서 백신 접종을 두려워하는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안다. 나도 따르고 싶다. 방역지침도 따르고 싶고, 온 국민의 집단 면역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싶다. 하지만 아픈 사람이 하필 내 딸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학원을 못 가게 한다면 안 가면 된다. 방역지침을 어기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다. 불편한 것은 결국 우리 쪽이 될 것이다. 모든 불편을 감내하고 건강을 우려한다. 이런 불안은 존중받을 길은 없는 걸까?


그래도 내 애들 또래이거나 또래보다 어린 엄마들은 좀 더 내 마음과 비슷했다.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 어른들도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는데 왜 마스크도 잘 쓰고 감염률도 낮은 아이들에게 백신 접종을 종용하는가. 백신의 효과도 절대적이지 않지 않나.'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불안을 경험할 때 가장 힘든 게 외로움인데 같이 불안해해 주는 사람이 많으니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요즘엔 평소에 잘 가지도 않는 맘 카페에 몇 번 방문했다. 근데 같이 흥분해주는 엄마들을 보아하니 애들이 아주 어리다.(회원의 분포가 어린아이 엄마들이 많아서인 것도 있지만) 청소년 방역 패스 날짜가 정해진 만큼 포기한 엄마들이 많아진 걸까.


이제 개학도 얼마 남지 않았고 더군다나 상급학교로 진학해 한 반에 사람들이 더 많아진 만큼 감염률도 높아져 울며 겨자 먹기로 백신을 예약했다. 부작용이 하필 내 아이일까 우려된다면 반대로 백신의 효과가 잘 나타나 혹여 감염되더라도 잘 이겨낼 확률이 또 우리 아이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히 순간적인 변화였다. 방역 패스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심한 결과였다.


우선 백신의 효과를 경험했다. 딸 애 친구가 초등 저학년 동생이 감염되면서 같이 코로나에 걸렸다. 2주 격리하는 동안 미접종자인 두 동생은 많이 아파서 오래 고생했고, 딸의 친구는 접종자라 별로 아프지 않고 넘어갔다고 했다. 친구로 임상실험을 한 건 아니지만 그 소식은 갈팡질팡 하는 내게 약간의 위안을 주었다.


매년 의심 없이 독감주사를 맞혀왔다. 부작용이라 하면 무슨 주사든 있을 수 있다. 부작용이 두려워 아이가 끝내 접종을 않고 학교에 다니다가 만약이라도 바이러스가 옮았을 경우 난 더 후회할지도 모른다. 결국 무엇이 됐든 부모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이왕이면 멋진 선택을 하고 싶다.


고맙게도 딸아이는 건강하다. 기저질환도 약 부작용도 없었다. 그러니 코로나 균도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믿는 것 외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어제 뉴스를 보니 이제 자가격리도 필요 없다고 한다. 오미크론도 코로나도 이제 독감처럼 취급하려는 모양이다. 이렇게 오는 데까지 사람들은 온갖 차별과 혐오를 경험했다. 소신을 말하다가 반대되는 생각의 사람을 만나면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난받기 일쑤였다. 정반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 어쨌든 선택을 해야 하는 시대. 그 시대에 엄마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절감한다.


가뜩이나 해내기 힘든 엄마라는 자리. 과연 미성년인 아이를 대신해 내가 내려야 하는 결론이 옳을까? 엄마력이 부족해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에게 누군가가 제대로 된 답변을 주면 좋겠다. 하지만 어떤 답을 준들 그 책임이 나와 내 아이에게 오롯이 있다는 게 서글프다.


우린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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