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교육가, 탄생의 그 순간
한 사람이 예술교육가로 탄생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때에는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나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예배당의 뒷문이 열리더니 친구들이 걸어들어오기 시작했다. 어? 그런데 그 친구들은 나풀거리는 옷을 입 고 있었고, 손에는 나뭇가지들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내 옆을 지나가는 그들이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으로 기억된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강렬한 예술체험의 순간이다. 그 순간! 그 예배당 지하실은 다른 공간이 되었다. 그들은 나와 장난치며 수다를 떨어대던 장난꾸러기 내 친구들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존재들이었다. 바람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묘한 냄새가 나는 듯도 했다. 그 공간은 삐거덕거리는 나무 의자 소리가 나는, 침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지하의 예배당이 아니었다. 예루살렘 어느 마을까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다른 장소로 순간이동 한 듯한 느낌이었다.
이 순간의 느낌을 연극적 감수성으로 정리해보자면, 나는 상상력을 통해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마치 ~~~라면(as if)’의 순간으로 들어간 것이다. 예술체험에서 ‘마치 ~~~라면’의 순간이 왜 중요한 걸까? 연극은 행위를 하는 자(배우), 반응하는 자(관객), 행위를 하도록 하는 꺼리(희곡)라는 핵심 3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행위가 분출하는 그 현장에서의 에너지가 연극이 가지는 강력한 힘일 것이다. 행위가 분출되어 나오기 위해서는 행위를 하는 자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원동력이 된다. 그 원동력은 ‘행위를 하는 자의 ’마치 ~라면‘ 이라는 상상의 몰입으로 들어갔을 때 가능해진다. 그 상상의 원동력은 완성된 연극작품까지는 아니어도, 내 친구들이 만들어낸 장면 만들기와 그 행위로 인해 가능했다. 나는 구경꾼이면서도 동시에 그 공간에서 함께 손을 흔드는 군중이 된 듯했다. 잘 기억나지 않는 음악과 친구들의 나풀거리는 의상, 소품으로 사용된 나뭇가지도 한몫했다. 내가 다른 장소로 순간 이동한 듯한 충격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내 친구들은 분명 행위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순간의 이동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자 요소였다. 난 그 순간, 연극적 상상을 통해 순간이동의 현장으로 들어갔다. 순간이동에 대한 경험이 왜 그렇게 강렬했던 것일까? 그 강렬함은 그 순간에 대한 몰입 그 자체였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강렬함은 생생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강렬함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내 안에 잉태된 것이.
그 순간 느꼈던 또 하나의 강렬한 감정이 있었다. “왜 나는 나뭇가지를 흔들며 나풀거리는 정체불명의 옷을 입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건가? 왜 내가 저 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지 않은 거지? 왜 내 자리가 여기여야 하는가?” 자리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강렬히 날 지배했다. 이 강렬한 감정은 결국 몇 년 뒤, 중학생이 되어 나를 무대에 서게 했다. 그 무대 역시, 교회 공간이었다. 난 예수의 아버지, 요셉의 역할을 맡았다. 짧은 커트 머리에 남자아이 같아서였을까, 나는 무리 없이 요셉의 배역을 맡게 되었다. 없어진 예수를 찾는 길지 않은 장면이었다. 그런데, 난 약속되지 않은 즉흥적인 행위를 했다. 무대에서 내려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예수를 찾았다. 급기야는 목사님 앞에까지 가서 예수를 보지 못했는지 물어보았고, 그 모습에 사람들 모두 큰 소리로 웃어댔다. 난 그 당시 잠시 잠깐 교회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지금도 무대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눈빛은 모두 내게 향해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온전히 받고 있었고, 그 눈빛이 싫지 않았다. 그래서 그 눈빛 속으로 걸어 내려간 것일까? 그 연극에서 난 주인공 역할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누가 뭐래도 내가 주인공이었다. 그 공간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향해 있었고 난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 공간과 시간을 내가 주도하고 있다는 강렬한 만족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왜 나는 배우가 아닌 예술교육가가 된 것일까?
‘공간과 시간을 내가 주도하고 있다는 강렬한 만족감’은 내가 중심에 선다는 존재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느낀 존재감은 ’주인공이 된다는 것‘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의 몰입을 끌어낼 수 있는 행위 혹은 작용의 가능함을 깨달은 것이지 싶다. 이러한 깨달음이, 똑같이 사람들 앞에 서는 작업이지만, 배우가 아닌 예술교육가의 길을 걷게 한 것이 아닐까?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이어진 이 두 개의 순간들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순간이동의 강렬한 몰입이 나를 무대에 서게 했고, 결국은 내가 예술교육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이리라. 이후에도 나의 예술체험의 순간들은 축적됐다. 그러나 예술교육가의 탄생 순간을 추적해 볼 때, 그 처음은 이 기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