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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 Jan 13. 2020

미래의 고기? 문제는 맛이야.

가짜 고기의 전쟁의 핵심은 맛, 누가 이기게 될까?

2019년 미국의 푸드테크 스타트업 저스트의 조쉬 테트릭 창업자가 한국을 찾았다. 저스트는 식물성 계란으로 유명해진 회사다. 녹두를 사용해 계란의 색과 맛을 재현한 액상형 제품을 판다. 한국에 온 것은 추가 투자를 받기 위한 설명회를 열기 위해서였다.


설명회를 앞두고 약 1시간 정도 테트릭 대표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식물성 계란에 대한 소개가 대부분의 내용을 차지했지만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에게 '식물성 고기'와 '실험실 고기' 간의 경쟁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조쉬 테트릭 대표 @한경DB

그는 실험실 고기의 손을 들어줬다. "고기를 먹을 때는 제품이 좀 더 고기다워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조쉬 테트릭 대표는 이같은 인식을 기반으로 대체육류 개발에 뛰어들면서 식물성 옵션을 포기했다. 식물성 계란을 만들면서 식물성 원료에 대한 전문성을 쌓았지만 고기만큼은 더 원본에 가까운 맛을 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고기 맛의 차이는 지방에서 나온다.

얼마 전 전남 무안 몽탄면에 있는 정은농장에서 흑돼지를 키우는 정영호 대표를 만났다. 자연 방목을 추구하는 정 대표에게 일반 돼지고기에 비해 맛의 특징이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정 대표는 "고기 맛의 핵심은 지방"이라고 말했다. 살코기의 맛 자체는 사육방식이나 사료를 바꾸더라도 크게 변하지 않지만 지방은 극명하게 바뀐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돼지고기에서는 느끼하지 않은 고소한 맛이 나는데, 그것 역시 지방의 풍미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기를 굽고나서 불판에 기름이 남아있어도 3~4일 정도는 하얗게 굳지 않고 투명하게 남아있는 것도 특징이란다.

정영호 대표와 몽탄 정은농장의 돼지들 @정영호 대표, 한돈 자조금 제공


실험실 고기 생산자들이 자신의 우세를 점치는 것도 결국은 맛에 있다. 퓨쳐미트의 야코프 나미아스 교수는 직접적으로 '지방'을 거론한다. 나미아스 교수는 "지방이 고기의 맛을 결정한다"는 데 동의한다. 지방의 풍미(아로마)가 고기의 특성 중 핵심적인 역할을 만들어 내는데, 임파서블 푸드나 비욘드 미트의 식물성 고기에는 지방을 재현할만한 성분이 빠져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나미아스 교수는 살코기부분의 세포와 지방부분의 세포를 각각 배양하는 접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실험실 살코기와 실험실 지방을 섞어 고기 제품을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만들어진 지방을 식물성 고기에 넣는 것까지 고려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퓨쳐미트의 제작 과정 @퓨쳐미트

식물성 고기와 실험실 지방을 섞으면 값비싼 실험실 고기의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실험실고기를 연구하는 멤피스 미트, 알프 팜스, 하이어 스테이크, 모사 미트 등은 항상 가격의 벽에 부딪쳤다. 실험실에서 세포 증식을 통해 고기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높은 가격 때문에 슈퍼마켓 판매대에 제품을 진열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퓨처미트는 2021년 실험실 고기를 파운드당 10달러 선에서 생산할 계획인데, 만약 식물성 고기 회사와 협업을 할 수 있다면 생산비용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렇게 되면 생산비가 파운드당 3~4달러까지도 낮아지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나미아스 교수의 설명이다. 



식물성 고기의 과제 1.콩 맛을 극복할 수 있을까?

식물성 고기는 원료의 맛을 어떻게 고기처럼 바꿀 것인지가 당면 과제다. 최대한 비슷함을 넘어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몇차례 관련 제품들을 먹어보면서 이런 생각이 강해졌다.


조쉬 테트릭 대표가 한국에 왔을 때 관계자들은 함께 저스트에그를 먹어봤다. 저스트에그를 활용한 오믈렛이었다. 첫번째 버전은 저스트의 셰프가 자신의 레시피대로 만든 요리였다. 저스트 에그를 쏟아붓고 휘휘 저으며 계란의 형태가 갖춰졌다. 셰프는 잘게 썰어놓은 채소와 함께 소금과 후추를 넣었다. 몇분 후 만들어진 오믈렛은 조식 뷔페 등 식당에서 먹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스트 행사에 참석한 조쉬 테트릭 대표(좌)와 셰프들 @직접 촬영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국인 셰프가 한번 자신이 테스트해보고 싶다며 프라이팬 앞에 섰다. 그는 본연의 맛이 궁금하다며 채소와 향신료를 배제한 채 저스트 에그만 가지고 기본 형태의 오믈렛을 만들었다. 다시 한입. 이번에는 계란의 맛을 찾기 쉽지 않았다. 익숙한 두부의 맛에 가까웠다. 저스트에그의 원 재료는 녹두다. 서양인들에겐 그 맛이 익숙하지 않아 그나마 비슷한 계란의 맛을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녹두와 아주 친근한 한국사람의 입장에서는 바로 콩 맛이 느껴졌달까. 기존의 레시피에서 왜 후추와 소금이 많이 들어갔는지 이제 이해가 됐다.


그러고보니 임파서블미트가 사용된 햄버거를 먹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당시 마카오의 한 호텔에서 먹었던 햄버거도 강력한 소스와 함께였다. 패티에서는 고소한 맛이 났지만 고기의 육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채소나 콩에서 나는 고소함에 가까웠다. 이들이 육즙이라고 부르는 '쥬시'한 느낌이 나긴 했지만 역시 고기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완두콩과 고기 @젠미트

완두콩을 활용해 식물성 돼지고기를 개발한 중국 젠미트의 빈스 루 대표는 "기존 육류 제품과 비교해 맛은 70~80% 수준"이라고 인정했다. 이 회사의 제품을 먹어본 소비자는 "시즈닝 맛만 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식물성 고기의 생산자들은 채식 옵션이 아니라 고기 애호가들의 식탁을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곤 한다. 현재의 모습은 아직 '우수한 채식 옵션'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호가들이 좋아하기는 아직 힘든 상태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식물성 고기의 과제 2. 근데 왜 고기 맛이 나야해?

식물성 고기 생산업체들은 대부분 고기를 그대로 모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품에서는 고기 같은 맛이 나며, 그래서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제품을 즐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식물성 고기 조감도 @임파서블푸드

하지만 한편에서는 식물성 단백질에서 왜 고기 맛이 나야하는가? 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식물 소재의 향과 맛을 즐기면서 먹으면 됐지 왜 굳이 고기의 맛을 내려고 하는지 의문을 품는 입장이다. 콩으로 대체 단백질을 만들었으면 콩 맛이 나면되고, 식물성 계란에서 두부 맛이 난다면 그걸로 맛있게 즐기면 된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주로 유럽의 소비자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에겐 가구 브랜드로 익숙한 스웨덴의 이케아에서 제안한 미래 푸드 트렌드를 살펴보면 이같은 모습이 잘 드러난다. 이케아의 연구소 '스페이스10'이 공개한 미래 식량을 살펴보자.

미래 핫도그 @이케아 스페이스10

이케아는 조류인 스피룰리나와 미니 당근으로 만든 핫도그를 공개했다. 미니당근을 말려 식물성 소시지를 만들고, 비트와 딸기로 만든 케첩, 겨자와 강황으로 만든 머스타드 소스를 뿌리는 식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녹색 빵은 조류인 스피룰리나다. 기존의 빵 색깔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추가하는 대신 그냥 원재료의 느낌을 살렸다. 

미래의 햄버거와 미트볼 @이케아 스페이스10

비트와 파스닙, 감자, 곤충이 들어간 패티도 있다. 이들은 비트의 붉은 색을 감추고 고기의 선홍빛을 내세우지 않는다. 햄버거에는 그냥 비트색 패티가 들어있고, 미트볼도 그냥 검붉은 색이다.




넓은 시장을 얻기 위해선 잠재 소비자가 많아야한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인공 고기 회사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잠재 소비자는 특정 계층이 아니라 '전 인류'다. 실험실에서 고기를 배양하든, 식물성 원료를 찾아 고기를 재현하든 메시지는 같다. "우리는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육류 애호가들을 위한 제품을 만듭니다."


고기 먹기를 꺼려하는 소비자들 뿐 아니라 고기를 먹는 일반 소비자들까지도 자신들의 고객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환경이슈 같은 거창한 것에 관심이 별로 없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입의 즐거움, 맛이다.


일반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선 결국 맛이 중요하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기의 식감과 육즙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그전에 고기의 맛을 선호하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장치들로 고기의 여러 특성을 재현해낸다고 할지라도 오리지널의 맛을 내지 못한다면 넓은 시장을 잡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실험실고기와 식물성고기가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면 결국엔 맛을 잡는 쪽에서 패권을 가져갈 것이다. 식물성 고기가 고기와 비슷한 맛을 낸다는 점을 강조하고, 실험실 고기는 진짜 고기라는 점을 강조한다고 점을 고려하면 맛은 실험실 고기가 앞설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실험실 고기는 아직 상상 속의 식품이기 때문에 뭐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비슷한 것은 똑같은 것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실험실 고기의 맛이 진짜 고기와 완전히 같다면, 식물성 고기 쪽에선 우수한 채식 옵션이라는 점을 더 강조하는 전략을 펴는 것도 좋아보인다. 채식인구는 분명 늘어나고 있고, 이들은 채식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흐름처럼 햄버거나 미트볼을 먹더라도 비트 맛이 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난다면 회사들이 굳이 고기 맛을 비슷하게 만든 것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


by Jo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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