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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양 Oct 09. 2021

비가 내리니 밀크티나 만들어볼까

비 내리는 날엔 무조건 밀크티

완연한 가을이 된 요즘, 10월, 전보다 비도 자주 내리고 궂은날도 많은 편이다. 창밖으로 그런 날씨를 바라볼 때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비가 내리니 밀크티나 만들어볼까?'


계절마다 생각나는 차가 있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달라지는 날씨를 바라보면 그때마다 어울리는 차가 생각난다. 일부로 어울리는 차를 찾는다기 보다는, 그때그때마다 저절로 생각나는 차가 있는데 보통은 상황마다 자주 찾게 되는 차가 있기 마련이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거나, 비를 내리려고 온갖 구름을 다 모아다 빛을 요리조리 차단해 밝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날이라면 꼭 밀크티가 생각난다. 


비가 아직 내리지 않고, 곧 내릴 것만 같은 날이면 영국식 밀크티가 마시고 싶어 진다. 끄물끄물한 날씨가 런던에 있었을 때를 연상시키는지 꼭 영국식에 손이 간다. 이때는 무조건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고르고, 우유는 미리 꺼내 놓는다. 완전 영국식으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로 브런치까지 먹고 싶지만 그건 냉장고 상황과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패스. 영국식 밀크티라고 해서 뭐 거창할 게 없는 것이, 홍차를 우리고 내 기호에 맞춰 우유를 넣어 주면 된다. 거기에 원한다면 설탕도 더해본다. 


영국에서의 밀크티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거의 이렇게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로열 밀크티나 버블티의 영향으로 우유와 함께 끓여 만든 밀크티를 이야기하지만 영국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원하는 만큼 우유를 넣는 것이 포인트인 것이다. 나는 보통 이렇게 마실 때, 홍차의 양을 한 잔 정도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 팟을 준비하는 편이다. 한두 잔은 스트레이트로 홍차만 마셔보고, 그다음에는 우유를 넣어 마신다. 처음에 이 영국식 밀크티를 접했을 때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그리고 그 맛은 더 당황스러웠다. 뭔가 밍밍하면서도 이상한 게, 가끔은 괜히 이렇게 먹었나 싶을 정도였다. 심지어 영국의 몇몇 티룸에서는 우유를 상온이 아닌 차가운 그대로 줘서 더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다 내가 우유의 양을 잘못 조절한 탓이었다. 더불어 나의 취향을 몰라서 그랬던 것이었다. 나는 홍차의 맛이 더 진하게 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우유는 아주 조금만 넣는 것이 좋은데, 우유를 쪼르륵 쪼르륵 그렇게 넣어버렸으니, 내 입맛에는 꽝이었던 거다.  영국식 밀크티의 포인트는 홍차 특유의 쌉쌀함을 적당한 우유가 부드러움으로 변화시키는 그 순간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홍차가 우유를 만나는 그 순간의 시각적인 즐거움도 빠질 수 없다. 우유를 따를 때마다 그 순간을 늘 슬로모션으로 보고 싶은 맘이 가득해진다. 홍차 속에 우유가 점점 퍼지는 그 모습은 봐도 봐도 참 질리지가 않는다. 눈이 즐거었던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입으로 즐거움을 느낄 차례이다. 쌉쌀하지만 상쾌하고 묵직했던 그 홍차의 맛을 보다가, 우유와 함께 하고 있는 홍차를 마시면 그 부드러움은 배가되어 입은 더 즐거워진다. 그렇게 흐린 날이면 밀크티와 함께 즐기는 게 좋아, 쨍쨍한 날을 좋아했던 내가 이제는 흐린 날도 좋아졌다.


비가 내린다면 단연코 밀크티이다. 그럼 홍차를 우선 골라본다. 우유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할 테니 다른 차들보다는 좀 더 진하고 묵직한 향미가 낫겠다 싶어 살펴본다. 인도의 아쌈도 괜찮고, 스리랑카의 루후나도 좋겠다. 케냐나 르완다의 차도 괜찮다. 바로 밀크티를 만들어내고 싶으니, 잎의 모양이 그대로 있는 차보다는 분쇄형인 CTC나 티백도 좋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으론 좀 덜 달게 만들어 디저트와 함께 하는 것을 선호한다. 디저트가 없다면 좀 더 달아도 괜찮지만, 그래도 나를 위한 밀크티에는 설탕은 조금만 넣어 만든다. 가끔 꿀을 넣으면 어떻겠냐고 질문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이것 역시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설탕을 선호한다. 설탕도 하얀 설탕을 좀 더 선호하는 편이다. 홍차와 우유의 향미를 온전히 느끼고 싶은 탓이다. (설탕도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 선호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꿀은 그 특유의 향과 맛이 있어 그게 진한 꿀일수록 차의 맛을 해치는 경우가 있다. 


평소 우리는 양보다 2~3배의 차를 적은 양의 물에 우려 놓고, 우유를 준비한다. 다 우린 진한 찻물과 우유를 섞어 함께 끓인다. 이때 원하는 양의 설탕을 넣는다. 우유는 너무 끓이면 막이 생겨버리기 때문에, 밀크팬 가장자리가 보글보글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때가 불을 끌 때이다. 다 끓여낸 밀크티를 거름망으로 서너 번 낙차를 이용해 옮겨담으며 스리랑카식 밀크티를 만들어본다. 밀크티를 맛보는 순간 잔잔하게 올라온 거품에 기분이 참 좋아진다. 기분 좋은 빗소리와 함께 즐기기 참 좋은 차이다. 여기에 달달한 디저트도 한 두 조각 있다면 그날은 참으로 달콤한 날이 된다.


비가 아주 많이 내릴 때,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그냥 밀크티 말고 짜이가 생각난다. 마음까지 심란할 정도로 밖에선 빗소리가 요란해지면, 온갖 향신료 향이 가득한 짜이가 그렇게 마시고 싶어 진다. 밀크티를 준비하는 것과 비슷한데, 짜이는 좀 더 만들기 쉽다. 다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향신료 향을 좀 더 깊이 내고 싶다면 향신료를 으깨어 넣으면 된다. 생강, 후추, 시나몬, 정향, 팔각 등을 넣는데, 생강과 후추, 시나몬과 정향은 꼭 넣는 편이다. 그렇게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불을 줄였다가, 또 한가득 끓어오르기를 기다렸다 또 줄이 고를 서너 번 반복하면 된다. 그렇게 다 끓인 짜이를 거름망으로 찻잎과 향신료를 걸러낸 후, 찻잔에 담는다. 아직 인도에 한 번도 가보진 못했지만, 이런 날 짜이를 마시면 밖에서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요란한 빗소리가 마치 인도의 한 거리의 소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곳에 있을 나를 즐겁게 상상해보면서 말이다.                


밀크티 하면 주로 티룸이나 카페, 아니면 편의점에서 사 먹다 보니 밀크티 만드는 것이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 역시 나는 밀크티 수업은 하지만, 밀크티로 티룸을 운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시판 밀크티를 판매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이렇게 저렇게 만들다 보니 내 입맛에 맛는 밀크티 레시피를 찾았을 뿐이다. 차도 이것저것 골라 넣어보고, 차의 양도, 우유의 양도 조절해 보면서 말이다. 비 오늘날이면 이 글을 보는 당신도 한 번쯤은 밀크티를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단 바람을 가져본다. 홍차의 향기로움과 우유의 보드라움이 잘 어우러진 밀크티가 당신의 비 오는 날을 더 근사하게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에!

  

하아, 내일도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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