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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양 Oct 17. 2021

찻잔에 담긴 우리의 순간

그래서 더 좋다, 차가!

종종 형님댁 가족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곤 한다. 바쁘신 아주버님은 자주 오시진 못하셨지만, 형님과 두 조카들이 오면 우리 집안도 분위기가 들뜨곤 한다. 조카들이 참 귀엽고 예쁜데 그중 큰 조카가 요즘 차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하루는 우리 집에 와서 내게 이것저것을 묻는다.


"외숙모, 차로 일한다고 했죠? 혹시 라벤더랑 로즈힙 있어요? 전 페퍼민트도 궁금해요."


'어라? 이런 걸 어떻게 알았지?' 싶었다가 그 질문이 너무 반가웠다. 내가 차를 한다고 해서 내게 차에 대해 묻는 가족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 동생들이 차를 좋아하긴 하지만, 각자 취향에 따라 알아서 마시기 때문에 별 이야기가 없었고, 그 외 다른 사람들은 내게 물은 적이 없었다. 가끔 우리 남편이 효능 정도를 물어볼 뿐이지 그렇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게 다가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내가 더 들떴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집에 있던 허브차를 꺼내 소분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그 아이는 아직 내겐 아주 귀여운 꼬마였는데, 피부미용에 좋으니 히비스커스도 마셔보고 싶고, 잠에 잘 든다니 라벤더랑 카모마일도 마시고 싶단다. 심지어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허브들도 오밀조밀하게 이야기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저 어린 꼬마가 아니라 점점 자라나고 있는 꼬마숙녀였다. 


그 아이들이 오늘 또다시 놀러 우리 집을 찾았다. 


"외숙모, 저 잠이 잘 안 왔는데 라벤더를 마시니 정말 잠이 잘 오더라고요! 저 또 차 마시고 싶어요."


차가 담긴 나의 수납장 문은 자동으로 열렸다. 차도 다시 리필해주고, 이번에는 새로 가져가는 차의 맛도 궁금하다길래 하나씩 우려 주기 시작했다. 조카는 수납장에서 맘에 드는 찻잔 6개를 골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차의 종류대로 하나씩 비교해볼 참이었다. 차를 하나둘씩 우려 함께 마시고 나니 꼬마숙녀의 솔직한 피드백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향이 과일 같았는데 생각보다 떫네요"

"이건 고소하니 맛있는 것 같아요"


한참을 마시고 있었더니, 더 작은 꼬마숙녀가 와서 말했다.


"난 장미를 좋아하니까 장미차가 마시고 싶어!"


장미꽃차를 우려 주니 둘째 조카의 더욱더 솔직한 피드백이 돌아왔다.


"이건, 음~ 코코아랑 고소한 녹차가 섞인 맛이야!"


엥? 코코아랑 녹차라니! 너무 귀여워서 속으로 푸핫하고 웃었다. 장미를 이 세상 꽃 중에서 제일 좋아한다는 둘째가 마신 장미꽃차는 달콤한 코코아가 연상될 만큼 장미 그 자체가 너무 좋았던 거다.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순수하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좋아해 준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면 그 행복은 더 커지곤 한다. 아이들과 소꿉놀이하듯 찻잎의 향을 맡고, 차를 우려 함께 마시고, 차의 맛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참 소소하지만 즐겁고 그 순간들이 소중했다. 


하루는 친정집에서 이모랑 엄마랑 같이 홍차를 우려 마시고 있었다. 엄마 집에는 동생이 스리랑카에서 사다 놓은 홍차들이 많아, 늘 갈 때마다 홍차를 우려 마시곤 하는데 그날 이모가 우리 집에 와 함께 티타임에 합류했다. 물을 끓이고, 차를 내려 이모 한 잔, 엄마 한 잔, 그리고 나도 한 잔 따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맞아, 언니. 이 맛이었어. 우리 어렸을 때 여기에 설탕 엄청 타서 마셨었잖아!"


갑자기 어릴 적의 추억 한 조각을 찾은 이모가 엄마에게 밝게 미소를 띠며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했다. 

홍차를 그렇게 마신 적이 있었는지 몰랐던 나는 이모에게 홍차가 그때 그렇게 자주 마시던 음료였는지 물었다.


"그럼! 어렸을 때 엄마랑 많이 마셨지! 그때는 어렸으니까 설탕을 많이 타서 그 맛에 마셨지."


그때 마신 브랜드나 어디에서 어떻게 구매하셨었는지가 궁금해 여쭈었지만 자세하게 기억하진 못하셨다. 하지만, 이모는 그 시절 언니와 함께 나눈 그 따뜻한 순간을 회상하며 즐거워하셨다. 그런 이모와 엄마를 보니 나도 왠지 흐뭇해졌다. 


그렇게 내 가족들과 차를 함께 나누고 나니 차가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이와 시대에 상관없이 함께 나눈 차로 그 순간이 기억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더 두근댄달까. 더 좋은 차를 찾고 싶고 더 맛있는 차를 찾아 내 사람들과 더 자주 나누어야겠다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홍차를 나누었던 이모와 엄마와 함께 한 그 순간이 이미 나에겐 홍차의 향기로 남았고, 여러 가지 허브와 꽃차에 눈을 반짝이던 조카들의 모습은 나에게 허브의 향기로 남은 것처럼, 앞으로 순간들이 차 한 잔과 함께 더 소중하게 기억될 수 있도록!


아직 어린 우린 아가가 크면 더 자주 티타임을 가지고 싶고, 차의 맛을 아직 잘 모르겠다는 우리 남편과도 더 차를 마셔보고, 커피만 드시는 우리 아빠와도 함께 차 마실 기회를 만들어야겠단 생각에 마음이 더 부풀어 올랐다. 차를 마신 그 순간들이 우리에게 더 소중하게 기억될 것을 알기에 말이다.


마침 날씨도 쌀쌀해지고 완연한 가을이 찾아온 요즘, 저녁에 차 마시기 딱 좋으니 우리의 순간을 나누기엔 더할 나위 없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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