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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양 Oct 21. 2021

자세히 보니 더 사랑스러웠다

찻잎을 바라보며

강의할 때 나의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수강생 분들의 반응에서 나오는 이런 순간이다.


"아우 너무 예뻐요~"

"전 차 마시고 이렇게 내어 주실 때 너무 좋더라고요."

"어머 이것 봐, 귀엽지?"


차를 우리고 나서 꺼낸 잎들을 보고 나온 반응들이다. 만져봐도 되냐고 물으시더니, 한참을 만지작만지작하다가, 사진도 찍어보고, 먹어보기도 한다. 이런 분들을 보면 너무 사랑스럽다. 차를 정말로 좋아하시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찻잎들을 보고 저렇게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뚫어져라 쳐다볼 수 없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차로 강의를 하는 곳이면 종종 이렇게 우리고 난 잎을 내어 보여주시곤 한다. 나 역시 다 우린 잎의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고, 같이 수업을 듣는 분들께도 보여드린다. 찻잎을 보면서 좀 더 배우는 게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찻잎을 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져 함께 나누고 싶어서이다.


차를 우리고 난 잎들, 그걸 엽저라고 부른다. 사실 엽저라는 것은 '잎의 모양'이라는 뜻인데, 우리고 나서 활짝 핀 제 모습을 다시 보여준 그 잎들을 엽저라고 부르곤 한다. 우리기 전의 건조된 상태의 잎에서는 잎이 말려있기도 하고 가공 단계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모양 때문에 잎의 모양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이 엽저를 보면서 예쁘다고 하는 그 마음, 그 마음에 동감하고 같은 마음이기에 또 고마운 맘도 절로 든다. 그래서 이때는 내가 수업을 하면서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이다.


차를 막 이제 접했거나, 차에 관심이 없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미정아. 근데 왜 이파리를 늘어놓고 자꾸 예쁘다고 하는 거야? 난 솔직히 그냥 나물 무쳐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한 친구가 내게 말했었다. 사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이게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귀엽고 예뻐 보일까 싶을 수도 있다. 찻잎도 잎의 일종이다 보니 뭉쳐 놓으면 나물 무침처럼 보일 수도 있겠고, 그냥 우리고 난 찻잎들이어서 음식물 쓰레기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르다.


나태주 시인도 자신의 시 <풀꽃>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자세히 본다는 것이, 오래 본다는 것이, 그냥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을 담아 한 번 보고, 관심을 담아 한 번 또 보고, 그렇게 보고 보다 보면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차도 물론 그렇다. 나도 처음에는 그냥 찻잎으로 차를 우리고, 그걸 마신 후 버리기만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엽저를 보는 순간이 소중해졌다. 차를 마시는 것만큼 내게 조용한 기쁨을 주기도 했다. 정말 어떨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찻잎을 요리조리 만져보고 관찰하다보면 시간이 훅 가버리기도 한다.


찻잎이 왜 그렇게 사랑스러울까 생각해보았다. 우선 바짝 말라비틀어져 보이던 그 잎들이 뜨거운 물을 만나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 기특했다. 마치 물이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 마냥, 물을 만나면 기지개를 켜며 제 모습을 찾아가는 잎들이 장했다. 그렇게 살아난 찻잎들을 보면 그 역시 자연의 일부라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될까. 차나무의 일부인 찻잎을 보면서 자연스레 그 찻잎이 달려 있었을 차나무를 떠올리고, 차나무로 가득할 그 다원도 떠올리다 보면, 나의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 있었다.


차를 우리다 보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차가 사랑스럽게 보일 때이다. 차를 우리는 그 순간부터 차를 마시고, 그걸 정리하는 때까지 저절로 슬로모션 모드일 때가 있다.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것을 보며 떠나가는 시간을 잡아보고, 건잎의 향을 가득 맡으면서 시간을 가두어 본다. 차를 마실 때는 그 향과 맛으로 또 한 번 시간을 멈춘다. 뭔가 또 다른 세상이 나를 둘러싼 느낌이다. 그리고 마시고 난 후 뜨거운 물을 만나 다시 살아난 찻잎들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 시간을 좀 더 머물게 한다. 이렇게 순간순간 차의 구석구석을 바라보다 보니 차가 더 사랑스러웠다.


차가 좋아지니 정말 차에 대한 작은 조각들마저도 내겐 즐거운 순간이 되었다. 이건 비단 차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 대상이 가진 티끌만큼 작은 부분도 절로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대상과 함께 한 순간은 때론 영원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차를 그저 음료 정도로만 마실 때보다, 차의 하나하나를 세세히 바라보면서 마셨을 때, 그때야말로 진짜 차를 마시게 된 시작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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