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린 커 나가겠지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참 많이도 울고 있는 것 같다.
아기는 그래도 이유가 적고 명확하기나 하지, 나는 툭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기는 배고프거나, 졸리거나, 기저귀가 축축할 때, 가끔은 심심해서 우는 것 같기도 했으나 나는 이유도 참 많았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 울기도 하고, 해도 해도 줄지 않는 집안일에 울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해 울기도 하고, 차 한자는 커녕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해 서러워 울기도 하고, 남편이 내 맘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할 때면 서러워 울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나보다도 육아를 버거워하는 남편과 함께 하는 육아가 막막해 눈물이 나는 날이 많다.
어릴 때는 나보다 키만 크면 다 어른인 것 같았다.
학교를 다니다 보니 대학만 가도 어른이 되는 것 같았다.
대학을 다니니 서른이 되고 직장을 다니면 어른이 되는 것 같았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어른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겪고 나니 어른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나는 어른이 아닌 것 같고, 남들이 다 어른이라고 하는 어른이 되어서도 서툰 것투성이고 자신 있게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몇 가지 없을뿐더러, 내가 꼭 해야 하는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어른은 자신의 일을 잘 해내고,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을 잘 이끌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심지어 아이가 둘이나 있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긍정적인 답변을 한 번에 내놓기에는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이런 상황... 그러니 나는 아직 어른이 된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육아를 하면서 부모와 아이들은 함께 큰다고들 한다. 함께 울면서 크는 것인가 보다. 함께 울어야 크는 것 같기도 하다. 더 세차고 우렁차게 울어야 어른도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 걸까 생각해 본다.
우리 남편이 육아 스트레스는 받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자유가 없어지고 아이들이 우는 것, 바로 이 두 가지였다. 남편은 원래 소리에 민감한 사람인건지 아님 이전에 울음과 관련해 안 좋은 추억이 있었던 건지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아주 많이 민감했다.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다가도 한 아이라도 울면 남편은 그 소리에 바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이들에게 울지 말란 소리도 자주 했다. 아니, 아이들이 울면서 크는 것이지 어떻게 울지 말란 소리를 그렇게나 할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른들도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되면 눈물이 나기 마련인데, 우리가 아이들에게 울지 말라고 할 수나 있을까.
눈물과 울음에 대해 생각해 보다 문득 우리 남편도 갓난아이처럼 한껏 울어야 괜찮아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의 이 빛나는 시기를 힘들어도 더 빛나도록 함께 해 주고픈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하는지 우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힘들어만 하는 남편과 함께 하는 나 역시도 좀 더 한껏 울어야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가끔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순간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기도 한다. 더 잘해주고픈 마음에 사랑과 사랑을 더하다 보면 눈물이 나고, 미안한 마음들이 겹치면 눈물은 연이어 흐르기도 한다.
아이들도 나도, 울어야지 자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