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4개월이 거의 돼가는 우리집 아이는 요즘 뒤집기 연습이 한창이다. 나는 좀 늦게, 그렇다고 아주 늦게는 말고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아이는 세상을 빨리 마주하고 싶은 모양이다.
뒤집기 시도중인 우리 아이 사진=최수진
처음에는 발만 휙 돌리던 게 허벅지가 넘어갔다. 곧 뒤집겠다 싶더니, 오늘(9월 3일)은 발 끝이 바닥에 닿도록 넘어가는 신공을 보여줬다. 발 끝이 바닥에 닿으니 허리까지는 쑥 돌아가면서 몸의 3분의 2가 넘어갔다.
마지막 관문은 머리랑 팔이다. 아이는 아직 무거운 머리를 바닥에 붙인 채 낑낑 거리며 돌려고 애를 쓴다.
'팔에 조금만 힘을 줘서 바닥에 지탱한 다음에 머리를 세우면 될 텐데.' 엄마인 나에겐 아주 쉬워 보이는 일을, 아이는 해내기 위해 온몸으로 노력한다. 아이는 다리를 조금 더 뻗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안되면 팔뚝이나 손을 촵촵 빨며 쉬기도 한다. 그러다가 머리를 조금 더 움직여보기도 하고, 몸을 앞뒤로 움직여보기도 한다. 그러다 안되면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애처롭게 신호를 보낸다.
아이는 안 되는 뒤집기를 시도 때도 없이 시도한다. 3분의 2나 돌아간 몸을 바로 돌려놓으면 또 돌아 눕는다. '불편하잖아~' 하면서 돌려놓으면 또 돌아있다. 요즘 내 할 일은 거의 다 뒤집은 아이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아이를 보면서 생명의 신비를 생각한다. 종종 어르신들이 아이를 보며 '낳아놓으면 저절로 큰다'라는 말을 한다. 그럼 나는 속으로 '네? 저절로 큰다고요?'라며 발끈한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저절로 큰다니. 안 키워보신 분이 막말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라떼는 말이야~'류와 같은 오지랖이라고 여겼다.
근데 요즘 아이를 보니, 어르신 말씀이 이해가 간다. 아이는 엄마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해서 배우는 것들이 훨씬 많았다. 요즘 아이가 계속해서 시도하는 뒤집기가 그랬고, 배고프면 우는 일도 그랬다. 본능이 시켜서 하는 일이지만, 가르쳐주지 않아도 생존을 위해 하는 일들. 아이는 순리대로 커가고 있었다. 부모인 나는 그저 그 과정을 도울뿐.
엄마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스스로 터득해 배우려는 의지. 그런 기특한 아이를 보니, 나는 삶을 허투루 살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삶을 살면서 저렇게 절박하게 무언가를 해내려고 했던 게 언제더라 싶었다. 되는대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태어나자마자 장착하는 생의 의지를 쉽게 잊어버린 건 아닐까 하면서.
우리 아이는 뒤집기를 성공하고 다시 몸을 되집을 것이다. 그리고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배밀이를 할 것이고, 앉는 힘도 기를 것이다. 그러다가 기어서 사물을 쫓기도 하다가 서서히 걷고 뛰겠지. 그렇게 엄마 품을 떠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섭섭해진다. 아이가 성장하는 일은 생의 의지에서 비롯된 당연한 것이면서, 내가 늙어가는 것임에도 나의 늙어감을 한탄할 새도 없이 아이가 엄마품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서운한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