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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 Feb 14. 2020

고독한 Somebody vs 행복한 Nobody

‘혹시, 우리 애 천재 아니야?’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흔한 착각이다. 다른 집 애들보다 언어 구사도 잘하는 것 같고, 리듬감이나 암기력이 남다른 것 같아 기대를 품고 교육하다보면 배신감을 느끼는 날도 온다. 아, 우리 애는 지극히 정상적이구나. 그때부터 불행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일명 ‘엄마 친구 아들’과의 비교가 시작되고 아이는 자라면서 ‘질투’‘열등감’이란 감정을 배운다. 자신이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하는 ‘Nobody(노바디)’는 천재를 부러워하지만, 화려한 ‘Somebody(썸바디)’가 그보다 행복한 삶을 사는지는 미지수다. 



예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은 당대에 큰 인정을 받지 못했거나, 불운한 삶을 살았다.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던 고흐, 청력을 잃고도 작곡을 이어 나갔던 베토벤 뿐만 아니다. 천재적인 예술가로 단연 첫번째로 손꼽히는 모차르트도 생애 말기에 생활고로 녹록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일까? 엄청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나 세계적인 인물이 일생을 유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하면 오히려 더 어색하게 느껴지곤 한다. 


- 오히려 그들의 불행하고 순탄치 못한 생애 때문에 타고난 talent(달란트)가 더 드라마틱해 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라는 노래 가사처럼, 어릴 땐 막연하게 유명인사가 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무대에서 박수 받는 직업을 가지면 삶이 풍요로워질 거라 생각했던 거다. 친구가 최연소 CPA 합격자라며 신문 기사에 나왔을 때, 고등학교 동기가 디지털 싱글을 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그리고 건너건너 아는 사람이 출시한 이모티콘이 대박이 나서 인터뷰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이에 비해 빠른 성공을 맛보거나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이들이 부러워 솔직히 배가 아팠다. 왜 저들은 저렇게 쉽게 살면서도 잘나가는데 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에 머물러 있나, 내 인생엔 볕들 날이 언제 오나 하고 바보 같은 푸념을 했었다. 


- 하지만 쉽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옷이 날개이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썸바디’의 삶도 나름의 고충이 많다는 것을 비교적 최근에야 깨달아 가고 있다. 상사가 승진을 하고 나서 직급 하나를 더 달았다고 임원진 눈치를 더 많이 보고, 옷차림에 전보다 더 신경을 쓰는 걸 보면서 이 세상에서 높아지고 알려진다는 것이 결코 기쁘기만 한 일은 아니란 걸 피부로 느끼는 중이다. 잘 나가봐야 겨우 한 울타리 안인 회사에서도 ‘썸바디’로 살기가 힘든데, 하물며 공인의 삶은 얼마나 더 신경 쓸 일 투성이일지.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유명세를 치르는 등 불편한 점이 많을 게 눈에 훤하다. 일등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해야 하고, 스타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며 안줏거리가 되기 마련이니.


그럼에도 미디어에서 떠들썩하게 ‘뛰어난 신예’라거나 ‘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 나타났다는 평을 내놓으면 괜스레 무미건조한 내 삶이 초라하고 슬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원래 남의 떡은 커 보이고, 남의 불행은 티끌같이 보여도, 내 고통은 산더미로 보이는 게 지극히 정상적인 거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게 나쁜 것은 아닌데, 어른들의 잔소리나 미디어의 영향으로 알게 모르게 우리들의 마음은 얼룩져 왔다. 어린 시절부터 형제나 친구와 비교 당하기 일쑤였던 평범하거나 평범 보다 조금 못 미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그래서 ‘아무나’여도 괜찮다는 위로가 필요하다. 요즘 들어 ‘행복한 노바디’로 살기를 권장하는 스토리가 큰 인기를 끄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김수현 작가의 베스트셀러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그런 의미에서 큰 울림을 준다. 작가는 ‘아무런 잘못 없이 스스로를 질책해야 했던 나와 닮은 누군가에게’ 말한다. ‘나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도 된다고’ 말이다. 한국 뮤지컬 어워즈 작품상 수상작 <레드북>도 사람들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야한 소설을 쓰는 주인공 안나를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나’를 말하는 사람이 되라고. 

‘우주대스타’를 꿈꾸는 ‘노바디’가 한 순간에 자족하고 행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내 삶엔 왜 빅 이벤트가 없는 걸까? 로또 당첨 같은 대운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나는 진짜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태어난 걸까? 그런 무익한 생각들로 스스로를 갉아먹을 것만 같을 땐 고3 수험생 시절을 생각하며 메모장에 짤막한 플랜들을 작성하고 있다. 학창 시절 스터디 플래너를 쓰면서 공부하던 걸 떠올리며, 내가 이번 달에 완성하고 싶은 것, 또 상반기에 해내고 싶은 것들을 적어놓고 시간이 지나면 O, X 로 정리해두는 식이다. 인생이 짜놓은 플랜대로 움직여지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도 않으니 오늘도 어김없이 한숨을 내쉬게 되겠지만. 


<나 혼자 산다> 속 보건 교사 분이 그랬다. 하루 금연 못했다고 X 표시에 망했다며 좌절하지 말라고. 다음 날부터 다시 O를 만들면 되는 거라며. 지금 당장 파란만장한 삶을 누리는 ‘썸바디’가 될 수는 없어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좀 더 행복한,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 누구보다 행복한 오늘을 사는 내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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