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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 Jan 28. 2020

하고 싶은 것 vs 해야하는 것

하고 싶은 것 vs 해야 하는 것


이른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를 듣는데, 한 청취자가 세계지리 퀴즈를 연이어 맞추며 어릴 적 꿈이 지리학자였다고 수줍게 밝혔다. 그리곤 DJ가 지금은 꿈이 뭐냐고 되묻자, ‘돈 열심히 벌어야죠’ 하고 짤막하게 응수했다. 청취자 분의 목소리나 말투로 추정해봤을 때에 연령대는 삼십 대 초반 정도, 하고 싶은 것보단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나이였다. 


밥벌이해서 집도 마련하고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참석하고, 때로는 부모님 용돈도 드려야 할, 그런 책임감이 가득한 ‘나이’.



문득 얼마 전 바이어와의 미팅 자리에서 들은 한 마디가 생각났다. ‘공부 잘하는 애가 회사원 될 확률이 높지, 기껏해야 회사원’. 그래서 자식에겐 공부 잘하라는 말보단 하고 싶고 잘하는 것 하나를 찾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던 말이 무척이나 슬프지만 공감되었다. 어릴 땐 어른들이 바라는 대로 말썽 부리지 않고, 묵묵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면 인생만사가 편해질 줄 알지만, 어른들 말을 따라 ‘해야 하는 것’만 하다간 평생을 인생의 숙제 속에 갇혀 살게 된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미친 척하고 한 번쯤 하고 싶은 대로 살자고 다짐해봤자다. 작심삼일이라고, 반 오십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는데, 사람이 하고 싶은 게 있다 한들 그렇게 쉽게 내 맘대로 살아지지가 않는다.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을 찾는 게 그렇게 쉬웠다면, 우리의 위 세대 어른들은 왜 아직도 쳇바퀴 같은 현실에 짓눌려 살고 있겠나. 


미친 척하고 내 멋대로 살아봐?


수동적인 삶을 탈피해 내 멋대로 사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TV에는 그 기적 같은 신화가 참 많이 등장한다. 연기가 좋아서 생업을 때려 치고 소규모 극단 생활을 전전하며 힘겹게 생계를 이어간 이야기, 좋은 학교를 자퇴하고 창업해 성공한 이야기 등. 그런 성공 실화를 보면 혹해서 이따금씩 정신이 회까닥하기도 한다. 


‘늦었다 생각할 때가 제일 이른 거라고, 나도 저 사람처럼 노래 좀 해봐?’ ‘제 2의 인생을 살아봐?’ 하고 객기를 부리는 건 찰나의 순간일 뿐. ‘그래서 저 사람만큼 눈에 띄는 재능은 있어?’ ‘성공할 때까지 버틸 깡은 있고?’ ‘당장 뭐 먹고 살 건데?’ 하고 현실적인 질문들을 되뇌면 바로 눈앞이 캄캄해진다. 


하고 싶은 걸 찾는 것도 어렵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건 더 어렵다. 우리는 대개 ‘해야 하는 것’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호기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 아닌 예술가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노래하고 글 쓰는 게 내 직업이 되었다면 좀더 일상이 즐거웠을까. 막연한 상상을 해보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스스로가 작아 보이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한 분야의 탑을 찍은 연예인들을 보면 괜히 샘도 나서 결국엔 밑도 끝도 없이 ‘엄마 탓’을 한다. 엄마가 날 ‘에프엠’으로 가르쳤기 때문이야 하고. 그리곤 뼈 때리는 직언으로 정수리를 가격 당한다. 


- 그게 왜 내 탓이니? 간절하지 않은 네 탓이지. 


그렇다, 모두 다 말처럼 간절하지 못한 내 탓이다. 행동은 않고 입버릇으로만 ‘작가님 되고 싶다’ ‘배우님 되고 싶다’고 한들 누가 돌아봐주겠나. 아무런 미래도 보장되지 않는 무모한 도전을 할 만큼 간절하지 않았다. 혹여 간절하다 한들, 지금 누리는 순탄하고 안정적인 삶을 내던지고 밑바닥부터 시작할 용기가 부족한 탓일 거다.

 

 - 그런데 과연 그 용기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능력 있는 프리랜서’는 만인의 꿈이다. 그럼에도 대다수가 남들처럼 살기 위해 아등바등 하는 인생을 사는 건 ‘간절함’‘용기’ 결여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남들처럼 사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데, 남들과 다르게 사는 건 더욱이 어렵다는 걸 굳이 경험해보지 않아도 아는 ‘지혜’라고 할 수도 있겠다. ‘공부가 제일 쉽다’고 하는 어른들의 말이 허투루 하는 소리는 아닌 것처럼. 

                             - 그럼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둘 중에 무얼 해야 할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만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양자택일이다. 선택이 어려워 둘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 현명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대다수는 후자를 택해 ‘해야 하는 것’을 하며 ‘인내하는 삶’을 오늘도 살아내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사람을 질투하고 선망하며, 언젠가는 원하는 대로 사는 인생을 꿈꾸면서. 


후자를 택해 내가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해야 할 일을 감당하는 것이 때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또,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펼치지 못하는 환경을 탓하다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기도 한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 그 시간이 결코 헛되지는 않지만, 그 고민도 끝을 내야 하는 시기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자와 후자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곧 유의미한 일이라는 것을. 지금 당장은 쓸데없어 보이고 답답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가운데에서 나름의 배움을 얻고 채워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그런 사소한 삶의 ‘지혜’가 생기는 ‘나이테’가 만들어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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