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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 Oct 30. 2020

스스로 하찮다 여기지 말 것

얼마전 TV를 보다가 아주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었다.      


- ‘훌륭한 사람 되어라.’

-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JTBC <한끼줍쇼>에서 이효리 씨가 남긴 말이다. 


다 큰 성인이 된 나도 괜스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뻔한 말이 얼마나 학생들의 어깨를 짓누르는지 어른들은 모른다. 평범한 것보단 훌륭한 게 좋으니까, 인사치레로 또 축복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인 건 알겠는데. 도대체 어른들이 말하는 ‘훌륭함’의 기준이 뭐길래. 어른들의 바람대로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쳐도, 그 다음은 뭔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결국 생긴 대로 살면서 ‘아무나’ 되는 게 바람직한 거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A는 중학교 재학 시절 시험만 보면 손에 땀을 쥐었다고 한다. 학교에 가면 재미도 없고, 친구도 많지 않고, 시험 기간엔 다한증 때문에 못 견뎌 하던 A를 그의 부모 내외는 ‘이상한 애’ 취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홈 스쿨링을 하며 A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셨고, 특성화고등학교를 가겠다고 했을 때도 그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억 소리 나는 학교에 다니고, 모두가 칭찬하는 모범생 루트를 밟는 남의 집 자식을 보며 조바심이 났을 법도 한데.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자녀를 나무라지 않는 두 분을 보면서 참 좋은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A는 지금 모 중견 기업에서 매년 높은 인사고과 점수를 받으며 아재들의 칭찬을 받고 있다고 한다.     

 

만약 A가 학교 생활을 힘들어 할 때 부모가 강압적으로 대했다면 어땠을까. 어른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남들보다 뒤쳐진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존감이 뚝 떨어지지 않았을까. 남들이 주변에서 하찮다 하면, 아무리 스스로 가치를 높이려 해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너만 이상한 게 아니라,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른 거라고 인정해주는 ‘이해심’이 사람 하나를 구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반대로 취업난을 혹독하게 겪은 건 ‘문과라서 죄송한’ 나였다. 남들에게 내밀어도 부끄럽지 않은 학력과 스펙을 가지면 뭐하나, 세상에 널린 게 고학력자인 걸.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나를 맞출 줄만 알았지, 대학교 졸업 때까지 정작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주체적인 판단을 내려본 적이 없었으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엄한 데서 헤매고 있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졸업 후 몇 달 간 백수 생활과 계약직을 전전하면서 풀이 죽어 있을 때,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준 한 마디가 있었다.     

 

- ‘어딘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네 쓸모를 찾아줄 곳을 보지 말고, 네가 하고싶은 걸 찾아야지.’     


취업난이 심해질수록 젊은 청춘들은 스스로 ‘無 쓸모’라고 정의하고 자책을 일삼게 된다. 십 수년을 공부해 대학까지 나왔는데, 심혈을 기울여 쓴 자기소개서는 시원하게 폐기처분 당하고. 면접 장에서 대놓고 들러리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란. 대입이란 인생의 첫 관문을 뚫고 당당하게 세상 앞에 선 짧다면 짧은 인생을 통째로 부정 당하는 느낌이랄까? 세상이 원하는 잣대에 자신의 모습을 끼워 맞추려 애쓰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면 남도 나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지나온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테 보여지기 위한 노력을 해온 시간과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해온 시간을 비교해보면, 전자가 훨씬 길지 않나 싶어서였다. 세상에 업신여김 당하지 않으려고 애쓰면 뭐하나. 그래봐야 훌륭한 사람이 못 된 채 겨우 평범함의 기준에 턱걸이하면서 사는데. 그럴 바에는 ‘행복한 아무개’가 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찮은 사람을 자처하지 말자. 

내 가치는 남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빚어나가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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