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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 Jun 04. 2020

악바리 vs 천하태평

-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가 다르게 읽혀지고 있단다. 


기존의 동화에서는 부지런하게 살자는 교훈과 함께 나태함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에 반해 요즘은 이를 한 번 더 비틀어 원하는 대로 살자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노래에 재능이 있는 베짱이가 음원 수입을 두둑하게 올려 잘 먹고 잘 살았다 거나, 개미들의 음악 교사로 취직했다 거나. 꼭 개미처럼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변형된 전개가 인터넷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하니, 세상이 참 많이 달라지긴 했다.       


- ‘욕심 많은 00이에게’     


어릴 적 초등학교 미술 선생님이 쓴 편지 글의 첫 줄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었다. 욕심쟁이는 일반적으로 나쁜 의미이지 않나. 선생님이 나를 약 올리나 싶어 서러웠는데, 선생님과 아주머니께서 앞다투어 말을 바로잡으며 달래주었다. 욕심이 있다는 건 악바리 기질로 뭐든 잘해내려는 의지가 있단 뜻이니 좋은 거라고 했다. 욕심 없는 애는 공부도 안하고 매사에 흥미도 없다고. 그 말을 듣고 더 힘을 내서 악착같이 학업에 열중했던 것 같다. 


     

- ‘넌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장래희망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문구점 아저씨가 되고 싶다던 친구가 있었다. 문구점에서 파는 팽이와 각종 카드를 맘껏 갖고 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천진난만한 대답이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도 많은 학생들이 의사, 변호사, 축구선수, 선생님 등 ‘전문직’을 꼽았었다. 그래서 그 친구의 꾸밈없는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공부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겠다는 어른들의 세속적인 세뇌가 담기지 않은 꿈이어서.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악바리 기질이 있어야 잘 산다고 하는 것도 다 옛말이다. 어린 학생들의 장래희망 중 ‘유튜버’와 ‘건물주’가 상위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십 대 중반인 내가 세대 차이를 느꼈을 정도이니. 뿐만 아니라, 랩탑 하나만 있으면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일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의 숫자도 많아지고 있다. 전통적인 교육에 순응하고,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였고, 발명가 에디슨도 머리가 나쁘다는 이유로 학교를 못 다녔다고 하는데. 하물며 그로부터 이백 년이 지난 지금은 말해 뭐할까.       



자신이 잘하는 것 하나만 찾으면 얼마든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개미를 고리타분하다고 나무라서도 안되겠지만, 천하 태평한 베짱이를 개미처럼 살아보라 독촉해서도 안되는 거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구겨 입어봐야 얼마나 오래 입을 수 있겠나. 남들 등살에 못 이겨 하기 싫은 일을 시작한다고 쳐도,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기껏해야 몇 년이다. 원치 않는 데에 허송세월을 보내느니, 주머니 사정이 좀 안 좋더라도 마음이 편안한 게 낫지 않나.       


우리 애는 생각이 없고 천하태평하다고 

공부 열심히 하는 남의 자식과 비교하는 부모님들에게,


그리고 친구는 올해 승진해서 연봉이 얼마인데 

나는 이제껏 왜 농땡이 피우고 허송세월 보냈나 자책하는 이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악바리로 살기를 너무 강요하지 마시라. 
어디로 향하는지 방향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가는 악바리는
제풀에 지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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