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래빗 Feb 05. 2020

What보다 How를 고민할 것

feat. 물만난 물고기

설 연휴를 앞둔 마지막 근무일 이었다. 모처럼 조기 퇴근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엉덩이가 들썩였는데, 동료가 부친상을 당했단다. 장례식장에 향하면서 아버지뻘 되는 회사 어른들이 ‘있을 때 잘하라’ ‘가는 데엔 순서 없다’고 하는데 이유를 모르게 그토록 마음이 아팠다. ‘명절 스트레스’ ‘명절 빌런’이라는 단어가 죄송할 정도로 이 명절을 누구보다 기다렸지만, 함께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많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명절이 정말 싫었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을 내어 찾아 뵈면 ‘소파에 털썩 주저앉지 마라 복 달아난다’ ‘옷은 가지런히 모아서 앉아라’ ‘젓가락질 그렇게 못하면 나중에 시집 가서 엄마 아빠 흉 보인다’ 하며 일부터 백까지 잔소리를 늘어놓는 할머니가 얄미웠다. 요즘이 어느 땐데 언제적 예절을 가르치시나 싶고, 사대주의적인 마인드는 후딱 갖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특히나,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예절을 못 배워서 그렇다며 건드려서는 안될 부분까지 건드린 이후, 할머니는 내 인생에서 한동안 완전히 ‘아웃’이었다. 바깥세상에서도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들은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말을 집안에서까지 듣고 싶지 않았고, 눈앞에 놓인 당장의 숙제들이 인생의 전부였던 한때였다. 



설날 당일, 할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을 방문했다. 올해로 만 팔십 팔세, 6인 병실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셨지만 제일 정정하셨다. 할머니 옆에는 코에 영양주사를 꽂은 채 무의식인 분, 사십 세부터 알츠하이머에 걸려 만 십 년째 병실에 상주하시는 분 등 갖가지 기구한 사연을 가진 분들이 계셨다. 할머니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사춘기 때부터 데면데면했던 사이가 갑자기 좋아질 리 만무했다. 옆에서 고요함을 참지 못하겠던지 간병인이 어색한 적막을 깼다. 


- 그래도 여기 와서 훨씬 밝아지셨다면서요? 

- 그럼 밝아져야지. 이 사람들 중에 내 형편이 가장 나은데. 


무엇을 먹고 살까, 지금 있는 회사가 싫은데 뭘 하고 살아야 할까 하는 배부른 고민들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맘껏 움직이시지도 못하고 병실 신세이신 할머니의 삶에도 감사가 있는데, 나는 무엇을 바라보느라 온종일 인상을 펴지 못하고 있는지. 그때 할머니가 비어있는 오른편 침상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저 양반이 나보다도 정정했었는데.’


케케묵은 미움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뀌는 시간이었다. 그날 할머니를 아주 오랜만에 온전히 마주했다. 함께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병실의 풍경을 눈에 담으면서 할머니의 삶도 변화한 듯 했다. 그래도 오늘을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게 웃어 보이는 것. 무엇을 먹고 마시는 것보다 훨씬 값진 삶의 노하우를 몸소 배운 하루였다. 



세계적인 석학 이어령 선생은 최근 인터뷰에서 ‘탄생 속에 죽음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역설적이지만 죽음을 앞두고 삶이 가장 농밀해지고 있다는 그의 표현이 할머니를 보며 더욱 와 닿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 우리는 인생의 많은 시간 동안 배를 불리며 먹고 살 걱정을 하고 살지만, 그 ‘무엇’을 먹고 살까에 대한 고민보다 값진 것이 어떤 건지 되돌아보는 노력은 잘 기울이지 않는다. 보다 나은 삶, 인생을 사는 방법에 대한 성찰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미생들에겐 너무 거창하고 고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화제가 된 AKMU(악동뮤지션) 이찬혁 군의 소설 <물만난 물고기>도 주인공 해야가 물을 만나게 되는 '죽음'을 곧 새로운 생명력으로 표현해낸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소설 속 선이는 '자신이 표현한 것이 곧 자신이 되는 사람'이 예술가라고 정의하며, 이에 반하는 '가짜'들이 너무 많다고 표현했다. '무엇'이 목적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과 모방, 모함 등 갖가지 술수를 써야할까 고민에 빠지곤 한다. 또, 한 번 도덕적 해이에 빠지고 나면 이후로는 양심의 가책따위 느끼지 않고 같은 실수를 거듭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어떤' 세계를 갈망하고 동경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뜬구름 잡는 배부른 얘기라고 치부하고. 


그러나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인생 선배들을 보며 다짐해본다. 쉽지는 않겠지만 인생의 ‘What’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찬 머릿속을 비워내고,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은지를 생각해보는 ‘How’를 늘려보겠노라고. 조금은 고리타분해 보일지라도 생의 마지막 순간을 바라보는 ‘어르신’ 마인드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가 지났다. 

모래시계를 거꾸로 세워놓고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짧다면 짧은 주어진 시간 속에 사라져버릴 '무엇(What)'을 위해 힘쓰기 보다 '어떠한(How)' 모습과 기억으로 남고 싶은지를 좀더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이전 11화 악바리 vs 천하태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