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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 Oct 28. 2020

선의의 거짓말 vs 악의적 솔직함


-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이가 말을 떼기 시작할 무렵 맞이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양쪽에서 침을 꼴깍 삼키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지켜보는 어른들을 번갈아 보던 경험, 누구나 살면서 한번 쯤 해봤을 거다. 둘 다 좋다고 하면 그만인데 그렇게 짓궂게 굴어야 어른들 직성이 풀리는 건가. 아님 아이에게 선의의 거짓말을 가르치고자 하는 깊은 뜻이 있는 건가. 우리는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거짓말의 미덕과 솔직함에 대한 경계심을 배운다.      


‘거짓말쟁이는 나쁘다’고 하지만 이처럼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는 거짓말은 자주 허용되곤 한다. 소히 말하는 연예인들의 '주접 멘트'가 바로 그 예이다. ‘결혼해 달라’ 청혼을 하거나 ‘잘생김이 묻었다’는 등 팬들의 애정 가득한 멘트에 응해주면 더 많은 팬들의 ‘입덕’을 부르는 것처럼. 때론 거짓말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는 장치가 되어준다. 농담을 진지하게 받거나 정색하고 솔직하게 응대하는 건 오히려 관계를 망칠 위험이 있기에.     


그래서 선의의 거짓말은 일종의 센스로 통한다.      


그럼에도 솔직함이 과연 미덕인가. 

우리는 어디까지 솔직해야할까. 

넘어서는 안 되는 그 선을 무자비하게 넘어버리는 

예의없는 사람들에겐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 ‘얼굴만 보면 날씬한데 하체 보면 절대 아니지’ 

- ‘생긴 건 삼십 대인데 하는 짓 보면 확실히 아직 어린 애야’     


상대방 기분을 해치는 건 솔직함이 아닌 무례함인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또, 몰라서 하는 실수도 있지만 지위와 관계를 악용해 직설 화법을 사용하기도 하더라. 솔직함이란 당당한 무기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 똑같이 맞받아친다고 해서 분이 풀릴까. 그럴 리 없다. 그리고 대다수는 이 사회의 서열 체계에 굴복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가 바쁜 일상을 지난다. 사소한 상처는 잊게 된다. 말대꾸해서 대놓고 선전포고를 하느니 그 편이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      


이처럼 거짓말과 가식이 어느 정도는 필수인 사회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겐 ‘직딩체’라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고 하지 않나. ‘혹시’, ‘다름이 아니라’, ‘양해를 부탁’ 등을 직역하여 표기한 글이 한때 온라인에서 큰 화제였다. 말은 곱게 건네지만 실상은 ‘닥치고 그냥 해’ 라는 뜻이라며. 거짓된 언행이 사회생활 속 예의를 갖추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본다면, 그다지 나쁘게 볼 이유도 없는 거다.      


물론 거짓말이 이 사회에서 허용된다고 해서 거짓된 사람이 되어선 안될거다. 일을 그르쳐놓고 내 일 아니라고 모르쇠하거나,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간다거나, 확실치도 않은 루머를 부풀려서 남을 모함하는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많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 자신 또한 기억에 없다고 그런 거짓된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다. 털어서 가루 하나 안 나올 사람이 어디 있겠나. 모두가 부족하고 모난 점 투성이인 사람일 뿐인데. 


진실하게 살면서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 때와 장소에 맞는 선의의 거짓말로 상대와의 대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 또한 삶의 지혜다. 타고나기를 처세에 능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평생 안고 살아갈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함과 진실함은 다르다. 
진실한 사람은 타인을 공격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말이라는 무기로, 한 번 내뱉고 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생각 없이 총구를 겨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미워하고 복수하려 들기 전에 나부터 돌아보면 어떨까. 내 솔직한 말 한 마디에 부들부들 떨고 있을 사람은 어디에 없는지. 혹 뒤늦게라도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면 다음부터라도 조심하는 계기로 삼으면 되니.      


선한 거짓말쟁이로 거듭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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