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쉬고 서울로 올라가던 어느 날, 유난히 서해안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있었다. 분명 점심시간까지 고려하여 버스를 탔는데 점심은커녕 미용실 예약에 늦게 생겼다. 약속 시간을 어기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나의 시선은 자꾸 휴대폰 화면으로 향했다.
사건은 역에 도착하기 직전 신호대기 중에 일어났다. 아직 터미널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안전벨트를 풀고 나와 기사님 옆 복도에 쪼그리고 앉는 것이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자리로 돌아가라는 기사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아주머니가 미적거리자 기사님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주머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자리로 돌아갔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아주머니는 기사님께 반격을 했다.
“기사님 왜 그렇게 사람 기분 나쁘게 말을 해요. 명령하지 말고 좋게 말하면 되잖아요.”
앞서 자리로 돌아가는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고 2차전을 예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아마 시간이 지연되어 마음이 급한데 호통까지 들으니 기분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다.
“아줌마 넘어지면 또 기사한테 책임 물 거 아니에요! 정차도 안 했는데 왜 일어나냐고. 빨리 내려요 길 막지 말고.”
생각해 보니 기사님 입장에선 여간 예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버스가 급출발하거나 급정거할 때 버스의 무게로 인해 발생한 관성은 사람이 버티기 쉽지 않다. 혹여나 자기가 몰던 버스에서 부상자가 나온다면 기사님에게 책임이 간다. 실제로 최근 있었던 버스 급정거 사망 사고에서 법원은 당시 운전하던 기사님의 책임이라고 결론을 내었다.
“아줌마가 잘못해 놓고 왜 기사님한테 난리야?”
소란으로 인해 안 그래도 늦어진 버스의 하차가 더욱 지연되자 승객 중 한 분이 참전했다. 결국 기사님과 아주머니의 기싸움은 승객과 아주머니의 다툼까지 번졌다. 험한 욕설이 오가자 오히려 기사님이 중재를 한다. 결국 아주머니가 멍멍이를 외치고 하차하면서 싸움은 막을 내렸다.
원인 제공은 아주머니가 먼저 했다. 굳이 정차 전 미리 일어설 필요가 없었다. 기사님은 굳이 그렇게 사람 기분 나쁘게 소리칠 필요까진 없었다. 다른 승객은 괜히 참전하여 아주머니를 몰아세울 필요가 없었다.
모두 입장 차이가 있었다. 아주머니께서 기사님의 입장을 조금만 헤아렸다면, 기사님이 아주머니의 행동이 비상식적이었다고 해도 친절하게 대응했다면, 다른 승객이 굳이 오지랖을 부리지 않았다면, 모두의 일상은 잔잔하게 흘러갔을 텐데.
넓은 시공간을 나아가던 세 삶은 오늘 내가 탄 좁은 버스에서 마주쳤다. 그 삶의 가닥들이 얽히고설킬지, 질서 있게 각자의 길을 나아갈지는 정말 한 순간에 결정되는 듯싶다. 세상은 드넓지만 그만큼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에 내 입장만을 따라간다면 분명 언젠가 다른 사람과 충돌하는 상황이 오기 마련이다. 그 순간을 유려하게 해결하는 현명함은 타인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위한 것이 아닐까. 한 번 얽힌 실타래는 풀기 쉽지 않고 더욱 꼬이며 감정의 골을 남기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의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며 하차했다. 왠지 모를 씁쓸함에 헤픈 나의 감사는 방향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