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처럼 방에 담겨 외로우면 어때
어린 나는 외로움의 낭떠러지에서 추락하곤 했다
엄마 생각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홀로 빈 집을 지키는 나!' 이러한 이미지는 유년 시절부터 사춘기까지를 관통하는 나의 자화상이다. 기형도의 '엄마 생각'을 읽을 때면 그 안에 있는 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아 그만 시를 덮어버리고 싶어 진다. 오늘 김이듬의 산문집을 읽는데 갑자기 이 시가 튀어나왔다. 겨우 한 구절.
"찬밥처럼 방에 담겨"
그러나 나의 모든 게 잠시 멈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어느 날의 일이다. 새로 이사 간 동네에서 나는 친구도 없고 늘 혼자였다. 부끄럼 많고 소심한 성격 탓에 아이들 무리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갈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었다. 옥상에 쭈그리고 앉아 골목길을 내려다보는 것만이 심심함을 달래는 전부였다. 그날, 낯선 여자아이 하나가 우리 집 담벼락 밑으로 다가왔다. 햇살에 눈이 부셨던가. 나는 흠칫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그 아이는 그런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같이 놀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황급히 옥상에서 뛰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가슴이 어찌나 쿵쾅거리는지 대답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응, 지금 갈게."라고 말을 했던가 안 했던가.
그런데 낡디 낡은 우리 집은 땅 모양도 네모가 아니었고 계단도 네모가 아니었다. 찌그러지고 들쭉날쭉한 모양의 계단들이 높이도 제각각인 상태로 울퉁불퉁 위태롭게 쌓여 있었다. 평소에도 오르고 내릴 때면 난간을 꽉 쥐어야 하는 그곳을 나는 무엇에 쓰인 듯 한달음에 뛰어내려 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두 계단을 미처 내려오기도 전에 내 몸은 이미 공중부양을 하고 있었다. 짧은 몇 초의 시간 동안 세상은 정지.
'아.. 저 아이가 나를 기다릴 텐데.. 어쩌지.... '
그리고 나는 두 다리를 허공에서 마구 휘저으며 계속해서 아래층으로 추락했다.
세상은 잠시 멈춤.
'내가 안 나가면 같이 놀자는 걸 거절한 것으로 오해할 텐데.... '
나는 온몸이 바닥으로 직행하기 직전 계단 앞에 있던 기다란 봉 하나를 기적적으로 잡아챘다. 그 구조물이 거기 왜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봉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몸의 어디 하나쯤은 못 쓰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삶에 들이닥칠 뻔한 짓궂은 운명의 장난은 그 순간 교묘히 나를 비껴갔다. 높은 곳에서부터 가속이 붙어 내려오던 나는 봉에 붙들려 정신없이 빙글 뱅글 돌았다.
돌면서도 세상은 잠시 멈춤.
'아, 이 동네에서 만난 첫 친구가 저기서 기다리는데.. 어쩌지?'
어서 빨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만 봉을 잡았던 손을 놓아버렸고, 순간 자그마한 내 몸은 붕 날아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오른쪽 무릎이 수돗가에 있던 고무 다라이(대야)에 그대로 내리 꽂혔다.
세상은 잠시 멈춤.
'아, 저 아이가 기다리다가 가버릴 텐데.....'
피가 흘렀다. 다친 곳이 아픈 건지 친구를 이렇게 아깝게 놓치게 된 것이 슬픈 건지 이유도 모르고 울었다. 방 안으로 들어와 다친 무릎을 쳐다보았다. 벌어진 살 사이로 하얀 뼈가 보였다. 엄마가 집에 있었지만 왜인지 나는 다쳤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한동안 방 안에 혼자 앉아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다리가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어린 나는 헷갈렸다.
그 다리는 오랫동안 나를 아프게 했다. 병원도 잘 다니지 않던 시절, 대충 치료한 상처가 잘 아물지를 않아서 짓무르고 덧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4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내 오른 무릎에는 그때의 흉터가 선연히 남아 있다. 자라면서 무릎 아래쯤에 있던 상처가 무릎 위쪽으로 조금 옮겨 가 있을 뿐이다.
그 여자아이는 결국 친구가 되었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친구를 떠올리면 이 무릎의 상처를 보게 되고 이 무릎의 상처를 보면 그 친구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죽을 때까지 갈 흉터이니 그때의 기억도 평생 갈 것이다. 이날 나의 유년의 외로움은 문신처럼 몸 한 곳에 새겨지고 말았다. 썩 괜찮게 살고 있음을 자위하는 날에도 무릎의 상처를 보면 그때의 진물이 다시금 살을 뚫고 나온다. 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잊을 수 없는 삶의 자국들이 있다. 이 무릎의 상처도 내겐 그러한 것들 중 하나일 거다.
외로우면 이따금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게 나란 사람이다. 이미 이때부터 그 싹이 보였던 것일까. 뭐가 그리 급하다고 거기를 뛰어 내려오다 위험천만한 사고를 당했는지 한심스러웠다. 부끄럽고 자존심도 상했다. 엄마한테 혼나면서도 왜 그렇게 뛰어 내려와야 했는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절박했던 것인가. 나란 사람은 외롭지 않기 위해서라면 자기를 자멸시키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 사람인 걸까.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나는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불구덩이를 피하기보다 스스로 몸을 던져 버리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외로움이 골수에 박힌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과다한 노력을 들일 때가 많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관계인 줄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지켜내려 한다. 상대는 이미 모든 것을 허물고 제 갈길을 가버린 뒤에도 말이다.
나는 지금도 외로운 편이다. 외로움을 느낀다기보다는 외로운 모습으로 산다는 것이 맞겠다. 그것이 내게 훨씬 잘 어울리고 편하다. 어쩌면 외로움 때문에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상처받게 될까 봐 미리 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찬밥처럼 방에 담겨,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들으며 그냥 나랑 어울리는 것이 더 좋다. 어린 시절의 나도 분명 그러했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바보처럼 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외로움이 덥석 발목을 붙드는 날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한 발이 붙들리면 자신도 모르게 발을 절고 뒤뚱거리게 된다. 뒤뚱거리며 달리다가 외로움의 낭떠러지에서 가끔은 이유도 없이 추락해 버리고 마는 날들도 있는 법이다.
혼자여서 대체로 좋은 나이지만 혼자여서 죽도록 힘든 날도 있는 게 나라는 걸 이제는 안다. 오른 무릎의 흉터를 손으로 살살 쓸어본다.
'외로움도 이렇게 훈장처럼 붙여 놓으니 제법 볼 만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