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읽어준 동화 한 편, 어머니가 불러준 노래 한 곡조, 어머니가 꽂아준 꽃 한 송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갖지 못한 이처럼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살면서 애써 떠올리지 않았고 그리하여 망각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기억이 가닿는 어느 날 아침, 어머니는 짐 보따리 몇 개를 주섬주섬 챙겨 트럭 한 대에 몸을 싣고 집을 나와버렸다. 나는 여느 날과 똑같이 TV를 보고 앉아 있다가 엉겁결에 거친 손에 끌려 나왔고 그 길로 어머니와 함께 길을 나섰다. 그날이 적어도 내겐 '집'이라는 곳과 이별하는 첫 순간이었다. 40년도 더 지난 일이라 그 시절의 기억들은 죄다 희미하고 뿌옇기만 하다. 하지만 너무나 느닷없었던 그날만은 어제 일처럼 생생히 각인되어 있다. 그날 이후로 내 어린 시절은 동강 나 버렸다. 나는 두려움을 가득 품은 채,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늘 떠밀려 다니듯 살아야 했다.
무작정 집을 나온 여자가 갈 곳은 없었다. 여자의 사정을 들은 트럭 운전사는 집도 절도 없이 짐 꾸러미와 어린 딸내미를 데리고 나온 여자가 한심했는지 안쓰러웠는지 해가 넘도록 트럭을 끌고 다니며 빈 방을 알아봐 주었다. 막무가내의 여자는 어둠이 온 세상을 다 집어삼킬 시간이 되어서야 허름한 단칸방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세간살이 하나 없는 단칸방에 병든 어미와 어린 딸내미가 가난한 둥지를 틀었다. 병든 어미는 앓았고 돈도, 먹을 것도 없었다. 물에 만 밥과 시어 빠진 김치만이 배고픔을 달래주었다. 병든 어미와 어린 딸내미의 방에는 가난과 추위가 똬리를 틀었고 둘은 각기 혼자, 캄캄했다.
아버지 없는 가난하고 초라한 여자애. 그게 나였다. 어머니는 그녀만의 발악으로 삶을 간신히 견뎌내었고 나 또한 곁에서 조그만 발악을 보태어 생을 버텼다. 그렇게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었던가 싶다. 어머니가 읽어준 동화 한 편, 어머니가 불러준 노래 한 곡조, 어머니가 꽃아 준 꽃 한 송이의 기억 같은 건 전혀 없다. 그저 나는 혼자였다. 어머니는 존재했지만 내겐 늘 부재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나는 그 시절을 사랑하지 않았기에 생각하지 않았고 급기야 망각해 버린 것이다. 이따금 가슴에 맺혀 있던 상흔들이 덩어리가 되어 목까지 차오르면 목이 메고 눈가가 젖어들 뿐이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없다. 누구라도 그렇게 살 수 있는 70년대, 80년대였으니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을 고민하기에는 혼란스럽고 척박한 결핍과 혼돈의 시절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했고 그 사랑을 붙들고 싶어 애쓰는 아이였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어느 날 하루아침에 떠났듯 언제든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어머니의 불행을 다 내 잘못이라고 여겼다. '금쪽같은 내 새끼'의 오은영 박사는 갈등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부모의 불화를 자신의 탓으로 여겨 내면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나 역시 오랜 시간 어머니의 삶에 빚을 졌다는 부채감을 안고 살았다. 어머니의 삶은 단지 어머니가 선택한 것이고 어머니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결핍과 자책을 오래 겪은 사람은 아주 큰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영혼까지 옥죄는 우울과 불안, 자존감의 결여가 무엇보다 큰 상처일 것이다. 따뜻한 땅에 뿌리내리는 경험을 하지 못한 영혼은 언제나 부유하듯 삶 위를 떠돌았다. 부모에게 환영받지 못한 나는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버림받기 전에 먼저 도망쳐버리는 도피의 삶을 살았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것만이 부모가 할 일은 아니다. 아이가 건강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내적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부모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부모의 단단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살면서 부딪히는 고난을 극복해 내는 강한 회복탄력성을 가지게 된다. 마치 거름을 잘 주어 비옥하게 가꾼 토양처럼 말이다. 태풍이 불어와 꽃을 다 꺾어버린다 해도 기름진 토양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환한 꽃을 피운다. 부모는 아이의 마음에 거름을 주는 일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이의 마음 밭에 사랑이 담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정성스럽게 심어 주어야 한다.
나의 어린 시절이 가난하고 불행했다고 해서 부모님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그분들도 나름의 생을 힘겹게 견디고 살아냈음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정신적 유산이 한 사람의 생애를 얼마나 크게 좌우하는지 깨달았기에, 나는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태어난 것이 죄가 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래서 나는 아팠다.
나는 내 아이에게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을 물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슴에 잔잔하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따사로운 한 줄기 햇살에 살포시 미소 지을 수 있게 하고 싶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외로움도 슬픔도 절망도 툭툭 털어낼 수 있는 힘이 생겨나게 되길 빈다. 나는 아이를 곧게 세우는 단단한 뿌리이자 언제든 되돌아와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고 싶다. 내가 그러한 부모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