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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r 20. 2023

헤어지면서 살고 있다. 모든 것들과!

상실과 이별에 무뎌지다

교사를 시작하고 그만두기까지 7년 반, 편집자를 하다가 그만두기까지 5년, 다시 공무원이 되어 지금까지 9년.... 그리고 나는 며칠 후면 휴직한다. 또다시 새로운 이별을 준비하는 중이다.




나는 어딘가를 떠나거나 누군가와 헤어지거나 무엇을 그만두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이별이나 상실에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일 없는 안정과 평화를 지루해하거나 불안해하는 편이다.

'도대체 나는 왜 그럴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데 나는 왜 그렇지 않은 걸까?'

오랫동안 그 이유를 궁금해하며 살았다. 실은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학창 시절 머릿속에 떠다니던 숱한 상념들 중 하나는 '3년이면 이곳을 떠날 수 있다.'였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3년만 다니면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공간에 그다지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같은 사람도 그렇게 오래 보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이 헤어짐을 슬퍼하거나 아쉬워할 때 겉으로는 함께 울었지만 속으로는 무덤덤했다. 학교가 싫어서도 친구가 싫어서도 아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친구들과의 사이도 좋았다. 선생님께도 인정받는 우등생에 속했다. 다만 한 공간에 익숙해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속해 있던 공간이 내 존재 자체를 장악해 버리는 느낌이 들었고 그 속박이 두렵고 숨이 막혀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졌을 뿐이다.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이 불편하고 힘겨운 공간으로 바뀌는 것은 결국 익숙함 때문이었다. 내 안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며 서로를 괴롭혔다. 편안하고 익숙한 데서 오는 여유와 지루하고 답답한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권태가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고 아슬아슬하게 대립하다가 결국엔 어느 한쪽이 밀려나고 마는데 나의 삶에선 언제나 후자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임용고사를 합격하고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공립학교 교사는 사립학교와 달리 한 곳에 오래 근무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학교를 옮겨 다니다 세 번째 발령받은 학교에서 교사와 이별했다. 교사를 그만두면서 수녀원에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발을 제대로 담그지도 못한 채 황급히 도망쳤다. 무작정 상경해 출판사에 취직했다. 서류 심사와 면접을 보고 정규직으로 입사했지만 계약직처럼 짧게 근무했다. 그러다 네 번째 출판사에서 결국 편집자와도 이별했다. 잠시 프리랜서로 편집 일을 해보기도 했지만 일 자체가 반복되다 보니 그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따고 학교에서 임시직으로 진로상담을 하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며 머릿속 혈관이 터지는 고통을 감내하며 공부를 했고 다시 공무원이 되었다. 여기도 3년 안에  다른 기관으로 옮겨가게 되어 있어서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진 않았다. 지금은 임용된 후 네 번째 옮긴 기관에서 근무 중이다. 그런데 나를 괴롭혀오던 지독한 권태의 늪에 또다시 빠져들고 있다. 언젠가 늪 아래로 완전히 잠겨버리고 나면 나는 또 모든 것을 버리고 어디로 떠나야만 할까.


이력서를 써놓으면 나만큼 이상한 사람도 드물 거 같다. 자격증도 이력도 서로 연관성 없는 것들이 얽히고설켜 문어발처럼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나의 삶은 도무지 어느 하나로 집약시킬 수가 없다. 세속에서 말하는 성공으로부터 멀찌감치 벗어난 변두리 어디쯤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삶을 살아왔다.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면서 호기심만 충족해도 될 것을 매번 나는 인생 전부를 걸어 버렸고 그래서 상실도 컸다. 교사로 머물렀으면 교감이 되었을 테고, 편집자로 머물렀으면 편집장이 되었을 테고, 공무원으로 머문다면 6급 공무원이 될 테지만 왠지 모두 다 내 자리는 아닌 것만 같다.


십 년, 이십 년 한 공간에 머무르거나 한 길로 가는 것을 못 견디는 진짜 이유가 무얼까. 나란 사람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사주명리학에서 말하는 역마살 때문인가? 직업이나 직장뿐 아니라 사는 집도 그랬다.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후 나는 무수히 많은 공간들을 전전했다. 지금 사는 곳에 이르기까지 열 군데의 공간들을 거쳐왔다. 이제 곧 여기를 떠나 또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예정이니 나는 열한 번째 보금자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 곳에서 오래 살기를 원치 않는다. 계속해서 옮겨 다니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것임을 예감한다. 직접 지은 이 집을 떠나는데도 무덤덤하다. 이 공간에는 내 손길이 가지 않은 건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집인데도  버리고 떠나는 게 아무렇지 않다. 어쩔 땐 이런 내가 무섭기도 하다. 왜 나는 상실이나 이별이 이토록 대수롭지 않은 걸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상을 치르는 동안 지독한 슬픔 같은 게 휘몰아친 적은 없었다. 눈물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경황이 없어서라고 하기엔 내면의 요동이 지나치게 적었다. 미온수 같은 슬픔에 조금씩 젖어들다 말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강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별과 상실에 무디면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진짜 강한 사람인가? 아버지의 죽음처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실과 이별이 아니어도 나는 스스로 그것들을 자초하며 살아왔다. 내 의지에 의한 것이었고 기꺼이 감내하려고 했다. 스스로 반복해 온 이별과 상실 속에서 내가 얻고자 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거기에는 내 삶의 오래 묵은 물음과 답이 숨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던 아이였다. 아마도 그 심적 불안이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던 모든 굴레의 출발점이지 않을까 싶다.


"버려지기 전에 내가 먼저 버린다."

"나의 쓰임이 다 되어 쓸모 없어지기 전에 스스로 먼저 떠난다."

"누구에게도 실망을 주지 않고 누구로부터도 상처받기 이전에 모든 것을 미리 잘라내 버린다."


이런 무의식적인 프레임에 갇혀 꼭두각시처럼 비슷한 선택과 행동들을 무수히 반복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글을 쓰다 보면 이따금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그동안 지 못했던 새로운 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문이 저절로 열리는 기적 같은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내가 알고자 했든 모르고자 했든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버리 나는 그저 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지점으로부터 새롭게 출발하려고 한다. 내 삶의 뒤엉킨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가기 위해서이다. 모든 것들과 헤어지며 살아가고 있는 나! 아니 상실과 이별에 익숙하거나 혹은 무디어지도록 단련된 나에게서  상실과 이별을 지독히도 두려워했던 어린 시절의 외로운 나를 찾아 내려한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와 손잡고 삶을 찬찬히 다시 되돌아보고 싶다. 그 아이를 돕고 더 나아가 지금의 나를 돕기 위해. 끝없이 반복되어 온 헤어지는 삶과 외로웠던 날들에 이제라도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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