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와 미니멀라이프는 상통한다.
잡식성 독서를 하는 와중에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책들을 여러 권 읽게 되었다. 깊이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내겐 간결하고 단정한 삶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스트들의 삶을 보고 배우면서 나도 삶 자체에만 오롯이 집중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뼈에 가까운 삶이 가장 달콤하다.'라고 말했다. 자연이 내어준 최소한의 것들로 최대한의 삶을 살고자 한 소로우야말로 진정한 미니멀리스트가 아니었을까? 비단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어수선한 환경 속에 있으면 누구나 마음까지 심란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집안을 최대한 깔끔하고 간결하게 정리하는 것이 나와 남편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거란 판단을 했다.
용기를 내어 작은 것들부터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부터 버리지 못한 채 끌고 다니던 짐들이 어마어마했다. 가장 큰 부담을 느꼈던 것은 역시나 책이었다. 대학 시절 전공서적부터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던 책들까지 나는 무슨 전리품이라도 되는 듯 고이고이 책장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책을 위한 방이 한 개가 더 필요할 지경이 되도록 끊임없이 책을 모으기만 하고 있었다. 책장에 책을 전시해 두는 것은 '내가 이만큼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을 자랑하고픈 허세와 지적 허영, 내가 이루어 놓은 과거에 대한 집착'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뜨끔했다.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대부분 십 년이 넘도록 다시 꺼내어 펼쳐보지도 않은 책들이 태반이었다. 만약 다시 읽고 싶다면 도서관에 가서 빌려보면 그만일 터였다. 나의 책들은 그야말로 수집용이자 전시용이었다.
단호하게 결심한 나는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던 책들을 누군가에게 주거나 중고 혹은 고물로 팔기 시작했다. 대형 책장들은 무료 나눔을 했다. 방 하나를 완전히 비우고도 거실엔 여전히 책이 남아 있었다. 거기서도 마음에 드는 책들 위주로 추려내고 나머지는 정리했다. 정리하는 동안 느꼈던 고통은 정리가 끝나고 나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미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부질없는 미련을 먼지 구더기 속에 참으로 오랫동안 붙잡아두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버린 책이 무엇인지 다 기억하지도 못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숱한 인연들처럼 책도 우리 곁에 왔다 떠나가는 존재들일 뿐이다. 그중에 극히 일부만이 평생을 곁에 머무는 소중한 인연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제는 책의 수를 더 이상 늘리지 않으려 한다. 새 책이 들어오면 있던 책은 처분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책의 총량을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십 년이 넘은 옷들도 이사 갈 때마다 늘 싸가지고 다녔다. 버리기는 아깝고 언젠가 한 번쯤은 입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그랬다. 그 또한 싹 다 처분했다. 마음이 그토록 가벼워질 수가 없었다.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한 지 몇 개월이 지나자 우리 집은 한결 가볍고 청결한 상태가 되었다. 눈에 보이는 장소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의 짐들을 정리해도 효과는 같았다. 마음이 깨끗하게 비워지고 집안의 공기가 막힘 없이 골고루 순환하니 실제로도 숨 쉬기가 훨씬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나의 지향은 이렇다. 미래의 언젠가 아들이 독립하면(아들은 맥시멈리스트고 내 마음대로 짐을 정리할 수가 없다.) 우리는 가방 몇 개만 가지고 가볍게 이사를 다녀도 되는 상태가 되면 좋겠다. '나는 미니멀 유목민입니다'의 저자는 자기의 모든 짐을 가방 하나에 들어갈 정도로 줄였다고 했다. 나는 그 경지에까지 이르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이삿짐센터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면서 쓸데없는 짐을 싸짊어 지고 다니는 삶에서는 벗어나고 싶다.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책과 함께 풍수지리에 관한 책들도 읽었다. 둘 다 내가 사는 공간을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읽은 것이었다. 그런데 절묘하게도 둘은 상통하는 바가 정말 많았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인테리어가 미니멀리스트가 지향하는 집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깔끔하고 간결하며 군더더기 없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집안에 먼지 가득한 짐을 쌓아 두는 것은 아주 부정적으로 보았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에 도움이 되는 풍수지리를 찾아보면서 나는 집안을 조금씩 재정비해 나갔다.
현관 앞이 지저분하면 안 된다 하여 먼지가 없이 닦았고 침대의 방향이나 가구의 위치 등을 바꿔갔다. 집안에 있는 가구들 중 가장 아끼던 것은 신혼 때 사들인 대리석이 깔린 화장대였다. 그 화장대에는 커다란 거울이 달려 있었는데 침실에 온몸이 비칠 정도로 큰 거울이 있으면 영혼이 쉬지 못해 혼란스럽다고 했다. 그 길로 당장 나는 아끼던 화장대를 무료 나눔 해 버렸다. 그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화장대를 치우고 나니 안방이 훨씬 넓어졌고 막혀 있던 통로가 확 뚫리면서 공기가 막힘없이 흐르게 되었다. 예전보다 안방에서 자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풍수지리는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었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최대한 쾌적하고 깨끗하게 만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을 어디에 배치하고 무엇은 놓으면 안 되고 하는 등의 사소한 것들이 꽤 많았는데 모든 걸 다 따르기에는 무리가 있더라도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지키려고 노력했다. 주부들이 좋아하는 그릇이나 접시 같은 것들도 예전처럼 예쁘다고 덜컥 사는 일은 없어졌다. 패브릭도 마찬가지였다. 이불도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건 버렸고 계절이 바뀌었다고 이불을 사는 일은 없어졌다. 많이 사면 많이 쌓아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집에는 테이블과 침대, 책장 이외에는 가구랄 것이 없다.
사실 내가 집안을 바꾸려 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우울증에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우리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개척하고 싶어서였다. 남편은 우울증 증상이 심해지기 직전에 예민함이 극에 달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유 없이 짜증을 내고 극도로 화를 내거나 참지 못하는 상태가 되곤 했는데,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의기소침해지고 침울해하면서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살면서 그의 예민함을 건드리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지저분한 짐들이었다. 이따금 예민함이 폭발하면 눈에 보이는 어떤 것들도 참지 못했고 모든 짐을 필요와 불필요를 따지지도 않고 버려 버렸다. 그렇게 멀쩡한 신발이나 가습기, 아이스박스 등 기억조차 하지 못할 많은 물건들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내가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하고 집안을 이 잡듯 뒤져 정리하기 시작하자 남편의 그런 예민함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나중엔 그가 말릴 정도로 내가 나서서 집안 곳곳을 비워버릴 지경이었으니 더이상 그의 눈에 거슬릴 무엇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미니멀라이프와 풍수지리를 삶 속에 실천하려고 한 나의 노력은 그의 증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자신한다. 깔끔하고 정돈된 환경이 그의 마음에 평온과 안정을 가져다 주었을 테니까 말이다. 누군가는 '우울증 때문에 이런 거까지 해야 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독서에 매진한 것과 미니멀리스트가 된 것은 나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면서 덩달아 남편의 치유에도 도움을 준 최고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꽉 막혀 있는 것만 같은 삶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자신 있게 권하는 것들이다.
첫째, 책을 읽는다. 무조건 많이!
둘째, 집안을 정리한다. 과감하게!
무조건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