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울증과 함께 살았다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글로 쓰면서 그동안 나는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이고 무덤덤해진 일이기에 그저 담백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나간 과거는 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고 믿고 살았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순간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속이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궁에 빠진 듯한 인생 속에서 나는 나를 속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게 아닐까?
방향감각도 균형감각도 잃어버린 채 사냥꾼 앞에 놓인 한 마리 짐승처럼 떨고 있는 남편을 나는 억지로 병원으로 끌고 갔다. 병원 말고는 우리가 기댈 곳은 아무 곳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골살이의 가장 큰 어려움은 마땅한 병원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막 이사 와서 아는 게 거의 없던 우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신과를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사람들 말론 환자가 꽤 많은 병원이라 했다. 하지만 병원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깊은 한숨부터 터져 나왔다. 시장통 2층에 있던 그 병원은 어찌나 오래되었던지 올라가는 계단이 아주 좁고 길었으며 경사도 심했다. 분명 대낮인데도 병원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노라면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캄캄했다. 불길한 예감이 드는 그곳을 심호흡을 하면서 찬찬히 걸어 올라갔다.
낡고 작은 병원 문을 열자 안쪽은 더 가관이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와서 병이 나을 수 있는 곳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음침했고 어디에선가 퀴퀴한 냄새도 풍겨 나왔다. 벽지는 누렇게 바래 있었고 가구들은 죄다 낡고 허름했다. 그래도 설마 병원인데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와 함께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수면제나 항우울제를 처방받으러 온 듯한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주름진 얼굴은 아무런 생기도 없이 굳어 있었고 짙은 우울과 허무가 굽은 등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여기에 있으면 멀쩡했던 사람도 병이 날 것만 같아.'
아니나 다를까. 의사는 나이가 많았고 만사가 귀찮다는 듯한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약을 처방해 주고 다음에 다시 오라고 했다. 처방전 없이 원내 약국에서 정체 모를 약들을 투명한 봉지에 담아 주었다. '도대체 무슨 약을 쓰는 거지?' 궁금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거기서 주는 약을 먹으며 버틸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약을 먹으면 미친 듯이 졸려했고 노상 넋이 나간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의 영혼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어딘가를 한없이 배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다시 약을 지어먹어도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그때 나는 남편의 두 번째 눈물을 보았다. 또다시 그의 눈물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그에게서 도망치거나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의 눈물 역시 나를 놓아주기 위해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나와 함께해야만 하기에 흘리는 미안함의 눈물이었다. 속으로는 화가 나고 그가 밉기도 했지만 나는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당신은 견뎌낼 수 있을 거야. 너무 힘들면 직장을 그만두든지 조금 쉬도록 하자. 당신의 몸과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을 뭐든 찾아보자."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인지 단지 동정심에서 나온 말인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막상 남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었다. 그가 긴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가는 동안 곁에서 묵묵히 아이를 키우고 흔들림 없는 눈으로 지켜봐 주는 게 다였다. 흔들리지 않는 척 연기라도 하면서....
어둠의 동굴 같았던 병원을 버리고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의료원이었다. 알아보니 그 지역의 의료원에도 정신과가 있었다. 의료원 의사는 예상했던 대로 적당히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당한 약을 지어주었다. 그래도 이전의 병원에 비하면 넓고 환하고 깨끗했다. 적어도 병원에 가는 길이 우울하고 칙칙하지는 않았으며, 우리의 삶이 영원히 잘못된 길로 들어서버린 것 같은 불안감을 주지도 않았다. 남편을 데리고 의료원에 가서 순서를 기다릴 때였다. 내 옆에는 어린 아들이 함께 있었다. 대기 중이던 한 아주머니가 안쓰러운 듯한 눈빛을 보내며 말을 걸어왔다.
"새댁, 힘들겠구먼. 그래도 자네 신랑은 참 다행이야. 이렇게 제 발로 걸어서 병원에 왔잖아. 앞으로 반드시 좋아질 거야. 내 아들은 지금 몇 년째 집 안에만 있다오. 이렇게 내가 대신 약을 지어다 주어야만 해. 새댁은 희망이 있으니 힘내."
아주머니의 눈빛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지만 나는 죄송하게도 아주머니의 말에 큰 힘을 얻었다. 누군가의 불행으로부터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자기보다 고통스러운 타인의 삶을 보며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을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만하면 다행이지 않냐고 생각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의료원 정신과마저 문을 닫아버렸다. 그 지역엔 처음의 병원을 제외하면 한 개의 병원만이 더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 가서 약을 지어먹었다. 증상이 나아지면 중단했다가 증상이 심해지면 다시 먹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제 우울증은 그냥 소화불량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 곁에 늘 함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반복되어도 절대로 익숙해지지는 않는 병이 우울증이다. 약을 먹어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을 때가 있고 약을 먹지 않아도 그럭저럭 잘 지내는 때도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스스로 몸집을 키웠다 줄였다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농락하곤 했다.
인생이 미궁 속에 빠져 있듯이 우울증 역시 미궁 속에 갇혀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