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어도 당당하다

글을 쓰면서 나는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by 소위 김하진

누군가는 남편의 우울증에 대한 내 글을 읽고 맘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극히 사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왜 사람들이 읽는 글로 남기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한다. 처음엔 나도 괜스레 주눅이 들고 위축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의 이목이 두렵고 그들의 보이지 않는 수군거림이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아 숨이 막혔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일부러 내 사정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굳이 먼저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자칫 신세타령으로 흐르면 나는 나대로 비참해지고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부담스럽고 불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알게 된 이들은 그런대로 놔두었고 모르는 이들은 모르는 대로 그냥 두었다. 그것이 나와의 친분이 두텁고 아니고에 의해 갈리는 문제도 아니었다. 친한 분 중에도 모르는 분이 있고 그다지 친하지 않아도 아는 분이 있었다. 그냥 이 문제를 내 삶의 일부인 것으로 받아들이자 모든 게 자연스러워질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놀랍게도 남편이었다. 그는 자신의 우울증을 결코 수치스러워하지 않았다. 일부러 떠벌릴 일도 아니지만 그것이 자기에게 불명예가 되는 일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아주 처절히 고통 속에 몸부림칠 때조차도 비밀로 묻어두려고 굳이 애쓰진 않았다. 처음엔 그의 담백하고 솔직한 태도가 왠지 이상하고 의아했다. 우울증이 잘못은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은 충분히 한 사람의 허점이자 약점으로 치부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당당함에 나 역시 서서히 물들어갔다. 누구에게 알리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 내 마음이 먼저 당당해져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어떤 병도 잘못은 아니며 부끄러워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내면을 직시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내면에 숨어 있던 껄끄러움과 머뭇거림을 부수기 위해 나는 조금 더 솔직한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남편만이 아니라 엄마에 대해, 자식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썼다.


그것은 거대한 돌산을 때리는 작은 도끼질에 불과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도끼질을 거듭하면 할수록 돌산은 조금씩 깎여 나갔다. 어느 날 돌산 하나가 작은 언덕배기 정도로 낮아지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의 내면을 조금은 가볍게 넘나들며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야 이 글을 쓸 용기도 생긴 것이다. 누군가는 이 글만 보고 나를 섣부르다 판단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적어도 1년 이상을 매일 같이 도끼질을 하며 벼르고 별러온 일인 것이다. 그리고 이 도끼질이 완전히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내 안엔 수많은 산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부숴야 할 벽들도 숱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나는 온전한 나 자신이 되어 글 속에서도 글 밖에서도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남편은 나의 글쓰기에 대해 언제나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다. 글을 쓰기 전에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역시나 아무 거리낌 없이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심지어 나중에 책으로 내자는 말까지 하면서 나를 격려해 주기도 하였다. 아프기 시작하면서 자존감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했던 그였다. 스스로 자기의 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당당해지기까지 얼마나 뼈를 깎는 내면의 고통을 견뎌내야 했을까? 그의 당당함은 돌밭 위에 피어난 꽃이고, 상처 위에 돋아난 생명이다. 그러므로 그가 당당하면 나도 당당하다.


글쓰기를 통한 내면의 변화는 우리가 인식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의식과 무의식을 아울러 나의 내면세계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언젠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오랜 악몽도 변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끊임없이 나 자신과 솔직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나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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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었다. 내 안에 담긴 모든 것들을 밖으로 쏟아내고 싶었고 그 과정 속에서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고 치유하고 싶었다. 지금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꿈틀거리고 있으며 이것들은 시로, 수필로, 소설로 모양을 달리하면서 끊임없이 밖으로 표출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나는 글을 쓰다가 아주 커다란 사랑에 빠져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 남편, 자식 그리고 나의 꿈을 이전보다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면 질수록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해질 수 있었다. 이것은 아주 놀랍고도 행복한 경험이었다.


남편의 우울증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결국 나는 그 아픔을 통과하면서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얻었고 그 문을 따고 들어가 보았기에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모든 것을 글로 남기면서 더욱더 그를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우울증은 당당하며 나의 글 또한 당당하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과 그의 가족 모두가 부디 숨지 말길....

출처 무아, '연필로 그리는 풍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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