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안고 새로운 꿈을 꾼다.

그와 나는 오히려 새로워졌다.

by 소위 김하진

올해 처음으로 남편은 정신과 약을 먹지 않고 있다. 벌써 9월이니 진짜 오랜 시간 약 없이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해마다 증상이 심각할 때도 있고 가벼울 때도 있었다. 그것은 늘 유동적이었기 때문에 쉽게 예측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약을 먹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놀랍고도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나도 그도 증세가 호전된 것에 대해 호들갑을 떨며 좋아하거나 안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덤덤하게 반응하고 있다. 만약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는 게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나와 그는 이제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는다. 그가 완치될 거라는 믿음을 함부로 내 안에 키우지도 않는다. 간절한 희망과 처절한 절망은 늘 종이 한 장 차이일 때가 많았다. 절박함은 언제나 섣부름을 낳고 섣부름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터득해 왔다.


솔직히 나는 우울증에 대해 희망적이지도 절망적이지도 않다. 암과 같아서 낫기도 하지만 안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낫지 않은 채로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라고 여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까닭은 아주 조그마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하니 우울증이 확실히 좋아졌더라.'라는 사이비 교주 같은 이야기는 할 생각도 없다. 단지 '우리는 이런 식으로 견뎌왔으며 정말로 잘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나는 고통에 빠진 사람에게 내 손안에 늘 움켜쥐고 있었던 아주 작은 희망의 씨앗 하나를 건네주고 싶을 뿐이다. 작고 보잘것없을지라도 절망에 닿아 있는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찰나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수도 있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그는 증세가 조금 호전되었던 어느 날, 느닷없이 나에게 학교 밖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학교를 제때 다니지 못해 중고등학교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검정고시 공부를 가르치겠다는 소리였다. 처음에 나는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했다. 자기 몸도 제대로 간수하기 힘들 때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소리인지 의아했다. 하지만 봉사를 해보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다행히 일 년 내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검정고시를 보는 시기에 맞춰 한두 달만 바짝 강의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상태가 좋을 때에도 그다지 좋지 않을 때에도 그는 악착같이 아이들을 가르치러 나갔다.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억지로 수업을 하러 가는 날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만나고 오면 한결 가볍고 편안한 표정으로 변해 곤 했다. 아주 조금씩 그의 마음에 작은 온기가 배어들었고 철옹성 같던 어둠의 벽에도 빛이 새어들 만큼 작은 이 가기 시작했다.


우울증 환자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끝도 없이 추락해 버리는 자존감이다. 반대로 자존감이 심각하게 낮아져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쉽게 걸리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이 문제는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처럼 정답을 내긴 어렵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의 자존감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남편은 봉사활동을 지속하면서 자존감을 조금씩 회복해 나갔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 그들을 위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의 것을 내어 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 봉사는 지극히 이타적인 행동이지만 타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 결국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일이었다.


그는 독서와 상담을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어떤 사람이고 왜 이렇게 아플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했다. 그도 나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업무에 길들여져 있는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부턴가 그 안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내가 글쓰기를 통해 자아를 찾겠다고 다짐하던 시기와 맞물려 그는 '강사'로서의 삶을 새롭게 꿈꾸기 시작했다. 그의 직업은 농촌지도사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농민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 하지만 주어진 책임에 만족하는 수준이 아니라 '농촌지도사 강사'로서의 자기만의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새로운 각오를 다진 것이다. 독서에 매진하던 우리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란히 자기만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둘 다 마음 안에 아주 작은 씨앗 하나를 심었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인생의 변화는 놀라울 정도였다.


그는 강사로서의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우리가 사는 지역이 아닌 여러 다른 지역에서 강의를 해달라고 부르는 일이 잦아졌다. 그는 올해 강사로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다. 어쩌면 아플 새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자기가 사랑하는 강의를 하면서 그 희열에 빠져 있으니 우울증이 침투해 들어올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고 스스로를 전보다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세월 자기 안에 숨어 있던 능력과 재능을 모른 채로 살아왔다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전율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한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으며 서서히 내면이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이제 어두운 터널을 건너는 법을 어느 정도 익혔기에 다시 터널에 갇히더라도 예전처럼 공포에 떨지는 않을 것임을 안다. 그리고 터널의 끝에서 만나게 될 자기의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와 나는 서로를 신기해한다. 그는 글을 쓰는 내가 신기하고 나는 말을 잘하는 그가 신기하다.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우리는 오랜 세월 그 능력을 사장시킨 채로 살아왔다. 그럼 지금 우리가 이렇게 스스로의 가능성과 꿈을 깨닫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시작은 바로 남편의 우울증이었다. 그것 말고는 우리를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니 인생 참으로 묘하지 않은가? 인생은 알 수 없는 얽힘과 설킴으로 이루어져 간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있는 이곳, 나의 현재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왜 이런 모습으로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지금 현재의 모습이 의아해지는 순간들은 있다. 놀랍지만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니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고 당연한 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나의 지나온 모든 고통들에 감사하기로 한다. 그로 인해 달라진 이 모든 것들과 앞으로 달라질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그것이 고통이든 기적이든 더는 상관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출처 무아, '연필로 그리는 풍경' 중에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