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도 유전이 되나요?

엄마는 아이의 우울증이 두렵다.

by 소위 김하진

내게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다. 아들이 자라면서 남몰래 혼자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우울증도 유전이 될까 하는 이다. 시어머니도 한때 극심한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다고 했다. 남편의 우울증이 어머니로부터 유전된 것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무관한 거 같지는 않다. 그는 외모부터 성격, 체질까지 어머니와 판박이처럼 닮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갓난아이일 때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먹고 자고 싸고 하는 원초적 상태의 아기에게 우울이 침투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말을 하기 시작하고 아이만의 자아가 형성되어 가자 내 마음속의 불안도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아픈 아빠의 모습을 본 기억들이 훗날 아이의 정서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내심 두려웠기 때문이다. 최대한 아빠의 병을 숨겼지만 함께 살다 보니 숨겨지지 않는 것들도 꽤 많았다. 나는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마음속으로 아무 일 없기만 기도하며 살았다.


그런데 아이가 네 살쯤 되었을 때였다. 잠자리에서 목놓아 울면서 내게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고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던 두려움과 걱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밤새 소아 우울증에 대해 검색해 보고 다음날 당장 상담사를 찾아갔다. 여러 군데 문의한 결과 아직은 어린아이이니 좀 더 지켜보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다행히 아이의 우울은 일시적인 것으로 지나갔고 죽고 싶다는 말에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나는 아이의 심리에 극도로 민감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성격이 아주 예민한 편이다. 남자아이 치고 생각도 많고 타인이 하는 말과 행동에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섬세하고 나쁘게 말하면 까칠한 것이다. 나는 아들이 동글동글 무던하기를 바란다. 그런 성격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모난 돌이 정 맞고 정 맞으면 마음에 큰 멍이 들어버릴까 봐 지레 두려운 것이다.


할머니에서부터 아빠, 아이에 이르기까지 우울증이 삼대에 걸쳐 이어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닌가? 사실 나 역시 오랜 세월 깊은 우울감에 시달리며 살아온 사람인 만큼 아들에게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를 우울 유전자가 무척이나 두렵다. 그러니 나에겐 아이의 마음을 밝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였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해야 아이를 우울증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늘 고민하고 또 고민해 왔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 지켜나가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들이었다. 우선 아이의 마음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일순위는 부모의 관계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도 지독하게 싸우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 내에서 사랑과 안정을 습득하기보다는 불안과 걱정을 체화하며 살았다. 안정된 부모 밑에서 사랑받으며 자라야 아이의 자존감도 높아지고 세상살이의 시련을 버텨나가는 힘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잘 싸우지 않는다. 마지막 싸움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을 정도이다. 우리만의 의사소통 기술을 터득했고 서로를 항상 존중하고 말을 조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불편함을 참지 못해 말다툼을 하기도 했었다. 아들이 아직 어렸기에 부모의 다툼을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리 사소한 말다툼이라도 오래도록 기억하고 마음에 상처로 담아두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걸 안 이후로는 더욱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인내심이 무척 요하는 일이다. 남편의 말이나 행동에 지금도 정말로 화가 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들을 위해 더 많이 참고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위험한 것이 지나치게 강압적이거나 권위적인 양육방식이다. 아이를 쳐다보고 있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고 교정하고 훈육하고 싶어 진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하루종일 혼내고 잔소리하는 엄마가 될 수도 있다. 시어머니의 양육방식도 통제적이고 강압적인 편이었는데 남편의 우울증과 깊은 연관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걸 깨닫게 된 후로 나는 굉장히 조심하면서 살고 있다. 물론 나도 아이를 혼낸다. 내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있으면 과하게 화를 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실수를 인정하고 재빨리 사과를 한다. 최대한 아이의 생각을 물어봐 주고 존중해 주려고 애를 쓴다.


어제는 아들이 내게 몰래 음성 메시지 하나를 녹음해서 들려줬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는 나한테 하나밖에 없어요. 엄마 같은 엄마는 세상에 아무도 없고, 모든 은하에도 없어요. 엄마 같은 엄마가 있다는 게 참 좋아요. 저도 엄마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어른이 될래요. 엄마, 사랑해요!"


이런 말을 듣다니 내 노력이 아주 헛되지는 않았나 보다. 나는 아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지 않은 어른이 되기를 소망한다.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겠지만 나는 더욱더 간절하다. 하지만 인생이 바람대로 되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들을 우울증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데에도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나머지는 아들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래도 아들이 너무 외롭고 추운 날, 엄마를 보거나 혹은 떠올리면서 아주 작은 햇살 한 조각이라도 가슴에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따스함으로 지옥 같은 하루를 견디고 어떻게든 내일을 한 번 맞이해 보자고 다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여전히 우울증이 유전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우울증으로부터 아들을 지켜낼 방법도 잘은 모른다. 그저 오늘도 내게 있는 사랑의 전부를 쏟고 또 쏟아내어 남김없이 나를 아들에게 내어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들아, 너 같은 아들은 우주를 통틀어 너 하나밖에 없단다. 네가 있다는 게 정말로 행복하다. 아들아, 사랑해!"


오늘은 나도 아들이 오기 전에 러브레터를 녹음해 두었다가 들려줘야겠다. 그러면 아들은 우주를 다 담을 만큼 커다란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하겠지?


출처 무아, '연필로 그리는 풍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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