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이다

[에필로그] 불안은 영원한 나의 스토커!

by 소위 김하진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입니다. 네? 아니 뭐 별건 아니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제 삶이 딱히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삶은 멀리서 보면 늘 제자리걸음일 뿐이니까요. 근데 말이죠? 이게 참 그렇습니다. 마음이 많이 힘듭니다. 네, 그래요.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실은 더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하하, 지금요?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하면 괜찮아지는 게 마음 아니겠습니까? 엄밀히 말해 제가 아니고 남편이 아픈 거니까요. 아무래도 당사자가 제일 힘들지 않을까요? 네? 그럼요, 저는 의연해져야죠. 그러려고요. 아니 몇 번을 말했어요. 이미 그러고 있다니까요!"


출처 무아


남편은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웃음기를 완전히 잃어버리곤 했다. 그런 후엔 어김없이 몸의 어딘가가 아프기 시작했다. 대상포진, 급성 장염, A형 독감 등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졌음을 알려주는 질병들이 그의 몸을 덮쳐 왔다. 병을 앓고 나면 더욱더 힘은 없어졌고 한층 더 의기소침해졌다. 일반인들이라면 몸이 회복되고 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남편에겐 가장 심각한 마지막 단계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그건 바로 우울증이 재발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은 지금까지 꽤 여러 번 반복되어 온 익숙한 패턴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고 있지만 실은 매번 똑같이 안절부절못했고 미치도록 불안했었다. '제발 이번만은'이라는 생각을 바보처럼 붙들고 놓지를 못했다. 병에 걸린 그도 그를 바라보는 나도 더이상 추락할 수 없는 나락까지 처박히고 나서야 완전히 백기를 들고 항복하곤 했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이번만은 아니길.' 하고 기도하거나 '이번엔 아닐 거야.'라고 외면하면서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또다시 같은 일들이 반복된다 해도 나는 또 기대하고 어김없이 실망할 것이다.


지금도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남편을 지켜보며 살고 있다. 누구도 알지 못하고 누구도 공감할 수 없으며 누구도 함께 해 주지 못하는 나만의 불안이다. 그 불안 속에서 조용히 쭈그리고 앉아서 신도 없는 혼자만의 기도를 한다. 제발 이번만은 무사히 지나갈 수 있기를...


남편의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섣부른 희망도 성급한 절망도 품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말했었다. 그것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의 말이기도 했다. 희망은 마약 같아서 희망하는 순간의 달콤함이 너무나도 강렬하다. 희망이 절망에게 자리를 내주어야만 할 때 그 끔찍함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그러니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시소를 타면서 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내가 터득한 최선의 현실 극복 방법이었다. 지금까지 쓴 남편의 우울증에 대한 글들이 어떤 부분에선 절망적이고 어떤 부분에선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진실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고 싶지 않다. 그것은 결국 거짓말이 되어버리고 말 테니까!


휴직하고 글을 쓰니 글 쓰는 게 너무 좋아서 작가가 되고 싶었다.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몇 년 열심히 글만 써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알뜰해서 남편이 번 돈으로 어떻게든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꿈을 향해 도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마구 뛰고 설렜다. 남편도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올해는 남편의 우울증도 재발하고 있지 않아서 왠지 우리 삶이 달라질 것만 같은 예감도 들었다. 하지만 방심하는 사이 섣부른 희망이 어느새 나를 잠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얼마 전부터 아침에 잘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전형적인 우울증 증상 중 하나이다. 불과 며칠 사이에 희망은 절망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조용히 자리를 뜬다.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먼 산을 바라보며 얼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

'남편이 언제 주저앉을지 모르니 나라도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남편이 많이 아프면 내가 가장이 되어야 하는데 그까짓 꿈 따위가 뭐가 중요해? 아직 퇴사를 한 게 아니니 천만다행이야. 그냥 모든 걸 접고 일터로 되돌아가 돈이나 벌자.'


엊그제 쓴 글 하나가 소위 흥행을 하면서 조회수도 늘고 구독자도 늘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저기 올라가는 걸까 하며 부러워했던 '구독자 급등 작가'에도 내 이름이 올랐다. 구독자 급등 작가, 브런치스토리 인기글, 에디터픽 최신글까지 모든 곳에 내가 올라갔다. 하루아침에 삼관왕을 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본 남편의 얼굴은 내게 강력히 경고하고 있었다. 나는 글을 쓰며 살아갈 수만은 없는 운명이라는 걸.... 거짓말처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게 인생인데 알면서도 매번 속고 실망하다니 한심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를 쓴 전문우 님은 말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가 절대 아니라고. 이런 말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더 실망하고 좌절하게 할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맞는 말이다. 우울증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굉장히 듣기 괴로운 말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감기에 수십 번 걸려도 우울증에 한 번 걸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나는 평생 동안 감기 때문에 삶이 이토록 휘청거렸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상태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기고 한낱 감기처럼 쉽게 회복할 것인지, 불치의 병이 되어 끝도 없는 나락으로 추락해 버릴 것인지 말이다. 미래가 어떻든 불안이란 녀석은 언제나 내 곁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끔찍하게 싫지만 떼어낼 수 없는 스토커가 되어서.


그럼 나는 지금 절망하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수도 없이 나 자신에게 말해 왔듯 섣부른 희망도 성급한 절망도 금물이다. 나는 눈앞에 쏟아지는 빛과 어둠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도저도 아닌 회색지대 어디쯤을 찾아들어가 나만의 가난한 평안을 찾는다. 그것만이 내가 살 길이다. 불안은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지만 느닷없지 않아서 이젠 두렵지도 않다. 불안의 손을 잡고 오늘도 빛과 어둠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환하지도 어둡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춥지도 않은 곳으로... 그리고 삶은 이렇게 지속될 것이다. 그가 아프든 안 아프든, 내가 글을 쓰든 못 쓰든 우리는 또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우울증을 앓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달콤한 희망만을 이야기하지 못해 송구하다. 하지만 나의 글들이 위로가 되지는 못했더라도 공감은 주었을 거라고 믿는다. 인생은 우울증이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다. 그러니 오늘도 이대로 나를 믿고 살아가면 된다.


그럭저럭 잘....


출처 무아 '연필로 그리는 풍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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