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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Oct 10. 2023

백화점에 가면 거지가 된다

돈의 쓴 맛, 상대적 박탈감의 늪

돈이 있으면 좋겠다. 그것도 많이. 미치도록 격렬하게. 오늘은 돈 때문에 종일 슬펐고 심란했고 화도 났다. 이런 나는 속물인 걸까? 돈 때문에 울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날 이해할까?


어린 시절 나는 명백히 가난했다. 부서져가는 것처럼 보이는 낡은 슬래브집, 들어갔다 나오면 온몸에 똥 냄새가 배는 푸세식 화장실, 변변한 세간살이 없이 텅 빈 방. 늘 내가 사는 곳은 거기서 거기였다. 학교에 가고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와는 다른 곳에서 다르게 사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실로 충격이었다! 아무리 어렸어도 세상은 돈에 의해 구분되어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부끄러움을 처음으로 느끼게  아담과 이브처럼 나는 가난을 창피하다 여기기 시작했다. 집에 친구를 데려올 생각 같은 건 일찌감치 접어버렸고 사춘기 때까지도 나는 감춰야 할 것이 많은 아이가 되고 말았다.


가난은 몸과 마음을 모두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중3 때 나는 담임 선생님께 꽤 심각한 거짓말을 했었다. 담임은 고입을 앞두고 학부모들과 학생의 진로 상담을 해야만 했는데 끝끝내 우리 집만은 아무도 상담에 응하지 않고 말았다. 사실 그때 엄마는 집에 없었다. 나는 소풍 김밥도 내 손으로 직접 싸면서 끝끝내 모두에게 엄마의 부재를 숨겼다. 생애 첫 김밥은 엉망이었고 아이들 앞에서 나는 뚜껑을 열 수조차 없었다.


고입 시험을 보러 가는 날에도 혼자였다. 밥도 먹지 못하고 캄캄한 새벽에 혼자 시험장에 가서 벌벌 떨면서 기다렸다. 추위 때문이었는지 시험시간이 되자 미칠 듯이 배가 고팠다. 주변엔 엄마나 아빠와 시험장에 와서 난로에 몸을 녹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난 주린 배를 잡고 뱃속에서 고함치듯 울려 퍼지꼬르륵 소리를 들으며 시험을 쳤다. 주변 학생들이 소리를 들을까 봐 겁이 나서 쉬지 않고 침을 만들어 삼키고 또 삼켰다. 침이라도 먹으면 배가 덜 고플까 싶었다. 당연히 성적은 엉망이었다.


많은 것들을 가져본 적 없거나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가난했고 그 가난은 없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삶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성인이 되어서도..  근데도 황당한 것은 왜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다. 내 안엔 이미 가난이 깊이 뿌리 박혀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가난을 수용할 만큼 넉넉한 내면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생의 기본값이라 생각하고 그냥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도전이나 모험도 내겐 언감생심이었다. 그렇게 나는 열심히 살았지만 늘 그만그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출처  Pixabay


오늘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백화점에 갔다. 마침 보려는 만화영화 상영시간이  영화관이랑 맞아서였다. 영화는 통신사 할인을 받았고 영화가 끝난 뒤 팝콘을 사면 3,000원 밖에 안 하므로 아이에게 팝콘은 영화 본 후에 먹자고 했다. 여기까지는 여느 때와 같은 평범한 루틴이었다. 영화가 끝나면 나오는 즉시 우리는 주차장으로 향하곤 했는데 오늘따라 아들이 구경을  더 해보자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러자 했고 함께 층별로 슬슬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이지 여성복 코너 따위에서 마음이 흔들리진 않았다. 올해 나는 여름이 오기 전 90프로 할인한 옷 몇 벌을  것 말고는 일절 옷을 산 적이 없었다. 자칭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후로는 더욱더 관심이 없어졌다. 그런데 아이와 아동복 층에 도착했을 때였다. 유명 브랜드의 가을 겨울 들이 벌써부터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늘 아들에게 인터넷에서 이월 할인하는 옷들만 사서 입히고 있다. 어떤 브랜드는 인터넷에서조차 사기가 버거워 엄두도 못 냈다. 아들 손을 잡고 걸어가는 통로 사이로 젊은 부부들이 옷 가방 여러 개를 들고 지나갔다. 나는 전시된 옷의 가격표를 슬쩍 곁눈질쳐다봤다. 얇은 겉옷 하나가 십수 만원. 어떤 아줌마가 가장 비싼 브랜드의 옷으로 온몸을 두른 딸의 손을 잡고 한 손엔 같은 브랜드의 쇼핑백 여러 개를 한꺼번에 들고 지나갔다. 그때부터 나의 눈은 완전히 초점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다행히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이미  장난감 코너에 눈이 가 있을 뿐이었다. 오래전부터 소비 통제를 시켜온 탓에  아이는 미리 사주기로 약속했을 때를 빼곤 비싼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가게 내부를 함께 서너 바퀴 돌고 나서 아들이 고른 것은 4,900원짜리 클레이였다. 그것도 내가 사주겠다고 하니 고른 것이었다. 평소라면 아무것도 안 사줄 건데 오늘은 맘이 왠지 서글퍼서 아들에게 뭐라도 골라 보라 했다.


지하로 가니 먹을 것이 많았지만 우리가 먹을 만한 건 없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초밥은 접시당  2,500원에서 5,000원, 8,000원 많게는 만 원이 넘기도 했다. 한 접시가 아니라 초밥 한 개가 만 원이 넘는 것이었다. 그래도 자리엔 사람들이 이미 꽉 차 있었다. 나는 걸 사 먹을 수가 없고 아들에게 사줄 수도 없었다. 아들도 메뉴표를 보더니 먹잔 말도 안 꺼냈다. 거기에 더 이상 있을 수는 없겠단 생각이 들어 아들 손을 끌고 나와버렸다.


근데 백화점 통로를 걸어 나오는 동안 자꾸만 내 마음에 쩍쩍 균열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것이 머리 한가운데를 그대로 관통하고 지나가버린 듯 불쾌하고 찝찝하기 짝이 없었다. 맞벌이일 때도 나는 늘 알뜰했다. 한 사람 수입은 전부 다 저금하는 걸 철칙으로 삼았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면 간씩 모은 돈에서 헐어 쓰기도 했다. 지금은 외벌이 중이다. 이제는 모자라도 헐어 쓸 여윳돈이 없다. 그래서 더 타이트하게 소비를 통제하는 중이다. 물론 어린 시절에 비하면 내가 절대적 가난에 시달리는 상황은 아니다. 만약 집을 팔거나 저축 같은 걸 깨서 그 돈으로 소비한다면 삶이 더 넉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언가 소중한 자산을 팔거나 해약하지 않아도 넉넉하기만 한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그저 수입이 많아 충분히 소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까 만난  많은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버는 부자인 걸까? 순간 그놈의 가난이란 녀석이 여전히 내 뒷덜미를 강하게 움켜쥐고 있다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왜 나는 평생 열심히 일하며 살았어도 아직 가난한 걸까. 아무런 사치도 부리지 않았는데 왜 가난한 걸까. 지금도 나는 그다지 물욕이 없지만 아들을 보니 가난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저 아이에게 비싸고 좋은 것들을 벌벌 떨지 않고 해 주거나 사줄 날이 내게도 올까?


어쩌면 이 가난은 대물림될지도 모르겠다. 끔찍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크게 달라질 여지가 없다. 이 밤 돈도 안 되는  나부랭이를 쓰겠다고 덤비는 나를 보니 가난한 게 더 가난해지려고 용을 쓰는 것 같아 속이 쓰리다 못해 아리다. 그래서 누웠다 벌떡 일어나 글로 돈이라는 걸 버는 법을 찾아본다. 웹소설 작가에 대해 검색하고 사이트에도 들어가 본다.  무협, 판타지 다 자신이 없다. 로맨스라도 해볼까? 이리저리 궁리하다 그조차도 덮어버린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이다.


아...  나는 이래서 안 되는 것이다. 만년 가난한 것이다. 아들을 위해 조금 더 부자가 되어보자는 생각에 이를 갈다가도 금세 자포자기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런 가난뱅이 근성을 뿌리째 뽑아낼 것인가? 나의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린다.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다시는 내가 백화점에 가나 봐라.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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