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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Dec 13. 2023

제발, 신이시여 제발!

엄마를, 그 아이를, 그리고 저를 구원해 주소서 제발!

제발

 - 간절히 바라건대.

 - 몹시 꺼리고 있음을 이르는 말.  


어린 시절엔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참 많은 것들을 빌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사소한 것들도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그때는 나의 '제발'에 담긴 소망이나 염원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내 삶의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는 것일 뿐이었다. 내가 품은 '제발'의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의 경중을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또한 누군가로부터 평가받을 필요도 없었다.


지금 곁에 있는 아홉 살 아들을 보면서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어른인 내 눈으로 보기엔 참으로 사소한 것들을 향한 아들의 '제발'. 주문한 장난감이 오늘 꼭 배송되기를 바라는 마음, 받아쓰기 시험에서 만점을 받고 싶은 마음, 보드 게임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 친구와 만나서 놀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 포켓몬 카드에서 전설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 그 밖의 모든 아들의 마음들 속엔 순수한 '제발'이 담겨 있다. 때로는 그게 부럽기도 하다. 거리낌 없이 온 마음을 다해 바라는 것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일까? 누군가 나에게 지금 마음속에 있는'제발'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제발, 신이시여 제발


이렇게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내 안에 가득하기를. 

삶의 모든 순간에 모든 걸 걸고 투신할 수 있는 '제발' 많아지기를.




며칠 전 엄마가 응급실에 들어가셨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마음속엔 저절로 '제발'이 고개를 들었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무사히 지나가길 기도했다. 엄마는 올초 심장 시술을 했지만 시술한 게 무색할 정도로 부정맥이 자주 재발해 응급실을 드나들고 있다. 그리고 매번 전기충격으로 심장을 리셋시키는 치료를 하고 있다. 나는 '전기충격'이란 것은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을 구하기 위한 응급처치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긴 투병 속에서 알게 되었다.  고장 난 기계의 전원을 다 켜듯이, 심장의 전원도 껐다 켜는 리셋이 가능하다는 것을. 엄마는 한 달 만에 전기충격을 다시 받았고 미친 듯이 빨리 뛰던 심장을 원상복구시켰다.


오랜 시간 수도 없이 같은 일을 반복해 서일까? 이젠 약간 무덤덤하기까지 다. 그리고 그런 내가 부끄럽고 소름 끼칠 때도 있다. 손과 발이 덜덜 떨릴 정도로 두려워하,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간절하던 '제발'이 이제는 많이 퇴색해 버렸다. 제발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은 있지, 한편으론 언젠가 이 치료가 엄마의 심장을 더 이상 되살리지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도 동시에 품게 되었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생사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응급실에 있다 보면 주변에 있는 환자들이 어디가 아파서 응급실에 오게 됐는지 금세 알게 다. 그날은 같은 구역에 있던 환자와 보호자들의 관심이 오직 한 환자에게로 집중되었다.  환자 정보에 적힌 나이 18세. 만 나이일 테니 고3 남학생. 온통 70대 전후의 노인들만 누워 있는 심혈관계질환 응급실에 어찌 저런 어린아이가 있는지 의아했다. 알고 보니 엄마와 똑같은 부정맥 환자였다. 그쪽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자꾸만 관심이 가고 오고 가는 이야기들도 귀담아듣게 되었다. 사정인즉슨 이미 심장 시술을 했는데 부정맥이 재발해 응급실에 온 것이아이의 심장은 무려 150~170까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런저런 처치가 소용이 없자 병원에서는 엄마가 받는 전기 충격을 해보자고 했다. 아이는 처음 받는 시술인지 벌벌 떨기까지 하면서 두려워했다. 나는 쫓아가서 그다지 위험하지 않고 전기충격으로 심장이 쉽게 되돌아오기도 한다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한참을 고통에 몸부림치던 아이는 결국 전기충격을 받기로 했다.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간호사들이 아이상태를 민감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기충격을 한 번, 두 번, 세 번 했는데도 아이의 심장은 되돌아오질 않았다. 우리는 일제히 탄식했다. 엄마도 이제 본인이 아픈 건 잊어버리고 그 아이의 상태에 함께 걱정하고 가슴 아파했다.


결국 전기충격은 효과가 없었고 아이의 심장은 여전히 허공 속에서 무의미한 뜀박질만 해대고 있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아이는 고통스러운지 계속해서 구토를 했다. 주치의가 응급실로 직접 와서 이런저런 오더를 내리며 아이를 진료했다. 그러나 나와 엄마가 퇴원할 때까지도 아이의 심장은 정상으로 되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내내 그 아이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너무나도 꽃다운 나이. 삶이 창창한 저 아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병마가 얼마나 무겁고 버거울지 생각하니 하늘이 자꾸만 발 밑으로 푹푹 꺼지것만 같았다. 그리고 곁에 있던 아이의 아버지. 그 아버지는 눈빛과 행동 하나하나로 '제발'을 끊임없이 울부짖고 있었다. 병실에 있는 모두의 가슴에 다 들릴 정도로 크고 간절하게! 아픈 심장과 함께 살아가야 할 아이의 인생이 가여워서 병원을 나오는 동안 나 역시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저 아이를 낫게 해 주세요.


'제발'이 그 빛을 발하는 순간은 나를 향한 바람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바람이 담겨 있을 때이다. 제발 엄마를 살려 주세요. 제발 남편을 도와주세요. 제발 저 아이를 구해 주세요. 제발. 제발.. 제발... 어른이 된 후, '제발'을 가슴속 가득 품지 못했던 까닭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남을 위하려 마음같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날카롭게 가슴을 긋고 지나갔다. 안에 흘러넘치던 삶과 사람에 대한 절실한 사랑 왜 이리도 많이  증발해 버린 것일?


이 글을 쓰는 동안 엄마는 하루 만에 다시 부정맥이 재발해 전기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위가 아파 응급실, 가슴이 아파 응급실.. 몇 날 며칠을 집보다 응급실에서 더 많이 보내고 있다. '이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라며 탄식하는 엄마 앞에서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대체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고 매달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제발'뿐이다.


방황하던 젊은 시절, 나는 거리를 걷다가도 눈에 띄는 성당 아무 곳에나 들어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빌곤 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울었다. 가슴이 터질 정도로 울었다. 한참을 어린애처럼 '제발'을 울부짖고 나면 신기하게도 다시 일어설 힘이 생겼다. 그땐 삶이 그리도 귀하고 절실하고 애달펐다. '제발'을 가슴 가득 품고 사느라 많이 아파해야 했지만 그랬기에 생은 눈부시게 찬란하기도 했다.


아픈 엄마와  아픈 아이를 생각하면서 나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제발'을  거세게 두드려 깨웠다. 일어나 이제 정신 차려. 누구를 위한 것이든, 무엇을 향한 것이든 다시 '제발'의 마음으로 살라고 에 대고  소리로 외쳤다. 


제발, 신이시여 제발!

엄마를

그 아이를

그리고

구원해 주소서. 제발.


청주 수암골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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