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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Dec 16. 2023

가끔,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가끔 나는 진짜 내가 된다.

가끔

- 시간적ㆍ공간적 간격이 얼마쯤씩 있게.


'가끔'답답하고 천편일률적인 일상의 벽에 뚫어놓은 작은 숨구멍 같다. '가끔'이 없다면 삶은 얼마나 단조롭고 지루할까? 어린 시절, 초등학교 운동장 둘레의 작은 담이 생각난다. 허름하고 낮은 담이 우리에게는 참으로 높고도 단단하게만 보였다. 그런데 친구들과 담을 따라 걷다 보면 희한하게 작은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곤 했다. 누가 왜 어떻게 뚫어 놓은 건지 알 수 없는 구멍이. 우리는 그 구멍으로 학교 밖을 내다보며 신나 했다. 재빨리 학교 밖으로 달려가서 같은 구멍을 찾아 학교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거기에 번갈아가며 눈을 대고 손가락을 넣어 보기도 하면서 어린 우리들은 까르르까르르 웃어댔다. 그 구멍이 대체 뭐라고. 담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그 작은 숨구멍에도 커다란 설렘과 흥분을 느꼈다.


우리는 가끔 술을 마시고 가끔 산에 오르고 가끔 드라이브를 하고 가끔 수다를 떨기도 하면서 어제와 같은 오늘에 작지만 흥미로운 구멍을 내며 산다. 그러고 보면 나는 '가끔' 무얼 하며 살았더라? 나는 엄청나게 정적이고 규칙적인 사람이다. 회사를 가든 집에 있든 나만의 일과대로 하루를 빈틈없이 채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평화와 정을 느낀다. 가끔 카페에 들르거나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것만으로도 충분히 삶을 환기할 수 있는 편이다. 그다지 역동적인 변화가 없어도 심심하지가 않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언젠가 나의 인생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지킬 앤 하이드'에 비유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나의 이미지는 '극단적'이란 단어와는 천 리쯤은 멀어 보이며 내성적이고 소심해 보이기까지 다. 신중하며 조심성이 많고 내적 갈등이 심해 행동을 주저할 때도 많다. 문제는 가끔, 아주 가끔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어쩌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으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미쳤나?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은 좋은 쪽으로는 변화와 발전일 테고 나쁜 쪽으로는 일탈과 타락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애매하다. 모든 변화와 발전은 얼핏 보면 일탈과 타락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고, 현재의 일탈과 타락이 어떤 면에서는 변화와 발전으로 가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매일매일의 단조로운 일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끔 일어나는 역동적이고 놀라운 도발에 의해 큰 방향이 정해지는 게 아닐까?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상은 삶의 견고한 밑바탕이자 토대가 되어 준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일상만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삶에서 아무런 의미나 가치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가끔'을 꿈꾼다. 아니 '가끔'을 도발한다. 내가 살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혹은 잘 살아보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나 역시 '가끔'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경험들을 통해 삶의 굵직한 맥락들을 변화시켜 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은 나의 의지로 무언가를 바꿀 수가 없었다. 환경에 예속되어 있었고 지배당해야만 했다. 내가 그 대학교를 선택한 것은 한국에서 돈이 제일 안 드는 학교였 때문이었고, 교사가 된 것은 돈을 벌어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환경의 지배 속에서 오로지 참고 견디는 것만을 배우고 익혔다. 그런데 서른이 넘어가자 내 안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내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이게 진짜 너야? 이렇게 사는 게 최선인 거야? 차마 대답할 수 없는 가혹한 질문들을 던져대는 '낯선 나'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인생에 '가끔'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결국 나도 몰랐던 내가 학교에 사표를 던지게 고 제 발로 수녀원에 걸어 들어가게 했. 그때의 나는 분명 30여 년동안 알고 있었던 내가 아니었다. 낯설었지만 반가웠고 두려웠지만 설렜다. 솔직히 그런 내가 싫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단조로운 일상에 파묻혀 살다가도 '가끔' 튀어나오는 극단적이고 도전적인 내가 인생의 큰 방향을 뒤바꿔 버리는 일들을 반복했다. 사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조용히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던 나에게 '가끔' 나타나는 또 다른 내가 옆구리를 찔러 부추겼기 때문이다.  이제는 생의 두 번째 공무원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 보라며 자꾸만 등을 떠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휴직을 하면서 결정을 유예하고 생각할 시간을 벌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대로라면 나는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버리고 맨몸으로 다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끔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라고 멋쩍게 고백하면서....


지난 일에 대한 후회는 없다. 앞으로의 결정들에 대해서도 후회할 생각은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가끔' 일어났던 마음의 격동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놀라울 정도로 변해 버린 경험은 있을 것이다. 강렬한 욕망이나 결연한 의지가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순간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두려워도 거부할 수 없었던 '가끔'이 지닌 힘도 느껴보았을 것이다.


비단 인생의 큰 방향을 틀어버리는 묵직한 변화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가끔' 안 하던 짓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숨을  수 있다. 늘 어제 같은 오늘만 산다면 지루함과 답답함에 질식해 버리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 인생의 허무를 감당할 길이 없지 않을까? 그러니 '가끔'은 인생에서 꼭 필요한 숨구멍이나 마찬가지이다.


가끔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꿈꾼다.

그러니까 가끔, 나는 진짜 내가 되는 것이다.


가끔 나는..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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