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위 Jan 17. 2024

하마터면, 놓칠 뻔했잖아!

얼마나 다행하고 감사한지 몰라.

하마터면

 - 조금만 잘못하였더라면. 위험한 상황을 겨우 벗어났을 때에 쓰는 말이다.


'하마터면' 내가 살면서 놓칠 뻔한 것들이 무엇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살다 보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할 일들은 쉼 없이 일어난다. 그런데 '하마터면'을 붙일 수 있는 상황은 보통 불행이나 비극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다. 불행의 목전에서 아슬아슬하게 피해 갔거나 비극이 될 뻔한 순간을 기적처럼 벗어났을 때, 우리는 '하마터면'이라며 탄식한다. 그리고 '하마터면'을 입 밖으로 말하는 순간, 마음 밑바닥에선 '안도와 감사'의 마음도 부표처럼 떠오른다. '하마터면' 그럴 뻔했는 그러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하고 감사한 일인가?


이 개구리 사진은 시골학교에 근무할 때 찍은 것이다. 방학이면 텅 빈 학교에 직원 서너 명만 나와서 근무하곤 했다. 그럴 때면 누구든 학교에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이 문을 열고 시건장치도 해제했다. 그날도 나는 세콤을 해제하기 위해 무심코 현관 앞으로 갔다. 그런데 눈앞에 이 개구리가 있는 게 아닌가? 세콤 기계 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그만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엄지손가락만큼이나 작은 개구리였다. 어떻게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온 것인지 의아했다. 사람 키에 맞추어 설치한 세콤 기계는 녀석에겐 우주만큼이나 멀고도 아득한 거리였을 것이다. 넋을 놓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던 내게 녀석은 냅 소리를 질렀.


마터면, 놓칠 뻔했잖아!




그날 내가 개구리를 땅에 내려주었는지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이 사진을 수년 동안 휴대전화에 담아 두고 이따금 한 번씩 꺼내보았을 따름이다. 개구리는 과연 올라가고 있던 중이었을까?  떨어지던 중이었을까? 어찌 보면 떨어지기 직전의 긴박한 위기상황인 것고, 어찌 보면 거의 다 올라가 기쁨을 만끽하기 직전의 극적 순간인 것 같기도 한 저 찰나! 저 오묘한 장면을 보면서 나는 '하마터면'을 떠올렸다. 수많은 위기나 실패, 불행의 순간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갈 때, 나는 그것을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 '하마터면'에 담긴 불길함의 그림자를 등에 지고 감사와 안도가 비추는 따스한 햇살 쪽으로 한 발짝만 걸어 나온다면, 알 수 없는 인생도 조금은 덜 두려워질 것 같다.


'하마터면'이란 부사는 내게 아들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딩크족이었던 우리가 뒤늦은 나이에 아들을 임신하게 된 것, 임신하자마자 하혈을 해 위험 선고를 받은 것, 임신 초기 아찔한 교통사고를 당한 것,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옥상에서 굴러 떨어진 것. 그 모든 비극이 될 뻔한 순간들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온 것이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너를 놓칠 뻔했잖아!' 나는 아들에게 닥쳤던 위험들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순간들은 아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이자 기적이었다. 신의 가호가 없었더라면 지금 나와 아들의 삶은 상상할 수도 없이 달라져 있지 않을까?


중학생 때였다. 키보다도 낮은 난간에 올라가 친구들과 평균대 놀이를 하고 있었다. 양팔을 비행기처럼 벌리고 누가 더 멀리까지 균형을 잡고 걸어가는지 내기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일등이야.'라고 웃으며 소리치던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원에 누워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삶은 생과 로 갈라져 있었다. 새하얗게 공포에 질린 부모님과 친구들은 나를 보며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별로 높지도 않은 곳이었지만 떨어지면서 내 다리가 난간의 복잡한 틈 사이로 끼어 들어갔고 온몸의 무게를 실은 머리가 아스팔트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던 것이다. 나는 정신을 잃은 채, 눈을 하얗게 뒤집고 몸을 떨며 입에 거품까지 무는 괴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다행히 역 앞이었던지라 지나가던 택시 운전사가 급히 나를 응급실로 송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날의 일은 지금까지도 백지로 남아 있다.


눈을 뜨자마자 미칠 듯이 고통스러운 두통에 시달렸다. 방학 내내 입원생활이 지속되었고 여러 번 반복해서 머리 검사를 받았다. 차라리 머리 한 부분이 찢어져서 피가 나왔더라면 덜 위험할 거라고 했다. 나는 뇌진탕 증세를 겪었고, 머리에 물이 차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마터면 죽거나 평생 장애를 가지게 될 뻔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퇴원했고 머리를 크게 다친 것치고는 학습능력에 지장이 없었고 (바보였는데 천재가 거라는 친구들의 놀림을 한동안 받아야 했지만) 사고를 잊을 만큼 건강도 회복하였다. 그날의 사고는 내게 아주 운수 없는 일 중 하나로 각인되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을 장소에서 누구보다도 심하게 다친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참으로 기적이지 않은가? 죽을 수도 장애를 가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아들을 비껴간 수많은 '하마터면'처럼 그 순간만큼은 내게 신의 축복과 가호가 함께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는 개구리를 보며 생각한다. 저 개구리는 분명 정상을 정복하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안도와 감사의 마음으로 '하마터면'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놓칠 뻔했으나 놓치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인생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최고의 순간인 것이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잖아!

얼마나 다행하고 감사한지 몰라.



#하마터면

#부사

#공감에세이

#기적

#축복

#감사와 안도




 


이전 16화 너무, 미안해하지는 않을 거야. 아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